지난 2013년 7월7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국제해양방위쇼에서 기능을 선보이고 있는 러시아 전투기 수호이(Su)-27. 미군 무인기는 14일 흑해 상공에서 이 전투기와 대치하다가, 추락했다. EPA 연합뉴스
흑해 상공에서 미군 무인기가 러시아 전투기와 각축하다가 추락한 사건으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과 러시아는 가장 어려운 시간에 봉착했다. 이번 사건이 단순한 사고인지, 아니면 의도된 도발인지에 따라 양국의 대응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의도된 도발이라면, 양국은 어려운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존 커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은 최근 몇주 동안에도 러시아 전투기의 그런 “가로막기”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특별하다”고 말했다. 이는 양국의 전투기 대치와 각축은 흔히 있는 일이나, 추락까지 이른 사태는 특별하다는 의미이다. 사고와 도발 모두를 배제하지 않는 뉘앙스이다. 국방부의 팻 라이더 공보담당관은 “러시아 조종사들의 행위에 기초해 보면, 불안전하고, 비전문적이었다는 것은 명확하다”며 “나는 그 행위들이 스스로 말해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의도된 행위 쪽에 무게를 둔 것이다.
하지만, 미국 관리들은 러시아 전투기도 손상을 입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하고 있어, 이 충돌이 의도적인 것은 아님을 시사하고 있다. 러시아 쪽은 충돌은 없었고, 미 무인기가 급격한 기동을 해서 추락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더 우려되는 측면은 미-러 양국 사이에 위기대응 채널이 없었다는 것이다. 미 국방부에 따르면, 사건은 약 30~40분 동안 진행됐다. 이 시간 동안 양국 군 사이에는 직접적인 소통이 없었다고 라이더 공보담당관은 밝혔다. 대신에, 그는 “국무부가 이 사건에 관련해 러시아 정부에 직접 우리의 우려를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사후에 외교 채널을 통해 미국의 우려가 제기됐다는 것이다.
이번 사건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군사 정보를 제공하고, 러시아가 이를 견제하려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미국은 일단 물러날 의사가 없음을 확실히 하고 있다.
커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전략소통조정관은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서 “만약 그들이 흑해 국제 공역에서 우리의 비행이나 작전을 막거나 못하게 하려는 메시지라면, 그런 메시지는 실패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미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뒤 우크라이나에 무기뿐만 아니라 정보를 제공해 러시아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공격을 돕고 있다. 특히, 실시간 군사정보 제공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우크라이나의 반격과 점령지 탈환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우크라이나는 미국으로부터 지원받은 중거리 정밀 무기에다 미국이 전달한 적군 위치 정보 제공으로 러시아군을 타격해 동·남부의 점령지를 탈환했다. 현재도 우크라이나 사회기반시설을 폭격하려는 러시아의 공습을 막고 반격하는데도 우크라이나는 미군의 정보 제공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러시아의 공세가 강화될수록 미국의 정찰 활동도 강화되고, 정보 제공도 늘어나는 구조다. 이번 사건에서 미국이 주장하는 대로 러시아 전투기가 미 무인기에 연료를 뿌리는 등의 행위를 처음 했다며, 러시아도 그만큼 미군의 정찰 활동에 신경이 곤두서 있음을 말해준다.
이번 사건에서 양국은 분명 무력을 사용하는 대응을 피하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정보정찰 활동을 지속하고, 러시아도 이를 견제하려 할 것이다.
추락한 무인기를 둔 양국의 다툼도 이번 사건의 파장에 우선적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쪽은 러시아 해군이 추락한 무인기를 찾아내려고 하는지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소셜미디어에서는 무인기를 찾으려는 것 같은 러시아의 작전을 시사하는 음성 녹음들이 나돌고 있다. 만약 러시아가 이 무인기를 확보한다면, 미국으로서도 대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