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남부 지중해 연안 도시 니스에서 2일(현지시각) 경찰의 총에 맞아 10대 청년이 숨진 사태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니스/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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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현지시각) 북아프리카계 프랑스 10대 청소년 나엘 메르주크(17)가 경찰의 총격으로 사망한 뒤 프랑스 전국에서 내전을 방불케 하는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사태의 직접 원인은 이주민에게 가혹한 경찰의 폭력적 대응이지만, 본질적 원인은 프랑스 사회에 뿌리 내린 이주민들에 대한 차별과 이를 선동하는 극우 세력의 움직임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그로 인해 이주민 출신 젊은이들이 ‘자유·평등·박애’라는 프랑스의 국가 정신을 뿌리부터 불신하게 됐다는 것이다.
나엘이 숨진 낭테르는 프랑스 수도인 파리 주변 교외 지역(방리유)에 속한다. 주로 가난한 이주민들인 이곳 주민들은 오래전부터 경찰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안고 살아왔다. 주민 벨라이디(38)는 <로이터> 통신에 “경찰은 ‘평화의 수호자’가 아니다. 그들은 질서를 유지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무질서를 촉발한다”고 말했다.
나엘을 어렸을 때부터 봐왔다는 주민 모하메드 자쿠비도 소수 민족 공동체에 대한 경찰의 폭력이 이어지면서 분노가 이미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신물이 날 지경이다. 우리도 프랑스인이다. 우리는 폭력에 반대한다. 우리는 인간 쓰레기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프랑스 정부가 2017년 법 개정으로 경찰의 총기 사용 범위를 확대한 것도 이번 사태를 불러온 큰 원인이 됐다. 그 이후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지는 이들이 크게 늘었다. 지난해에는 경찰의 단속 과정에서 숨진 이가 13명이나 됐다. 숨진 이들 대부분은 흑인이나 아랍계다.
방리유 지역은 오랜 시간 동안 정부 정책에서 소외되어왔다. 프랑스 정부는 2000년대 이후 방리유 지역을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주기적으로 내놨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도 이런 상황을 의식해 지난 2016년 11월 방리유에 속하는 센생드니에서 대선 출마 선언을 하며 방리유 재건을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그에 따라 집권 2년째였던 2018년 방리유 개선을 위한 새로운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상황은 별로 개선되지 못했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낡은 고층 아파트를 허물고 작은 건물들을 새로 지으며 주거 환경이 많이 개선됐지만, 가난한 주민들이 느끼는 불만을 해소해주지는 못했다고 짚었다.
신문은 이 지역의 공공 서비스 질 또한 여전히 다른 지역에 뒤처져 있다고 덧붙였다. 마크롱 정부의 개선 계획 마련을 이끌었던 은퇴 정치인 장루이 보를로는 “거주민 규모를 고려할 때 프랑스 정부가 이 지역에 투입한 자원은 다른 지역의 4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러는 사이 극우 정치 세력들은 ‘반 이주민 정서’를 끝없이 확대·재생산 했다. 영국 역사학자 앤드루 허시는 2일 영국 일요판 신문 <옵저버> 기고 글에서 마린 르펜, 에릭 제무르 등 극우 정치인들이 그동안 ‘내전’을 경고해왔다며, 그로 인해 이제 경찰과 주민들도 ‘내전’이라는 말을 쓰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허시는 그로 인해 경찰 폭력에 항의하는 시위대의 공격 대상이 ‘프랑스를 상징하는 모든 것’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짚었다. 그는 주변부로 밀려난 방리유 주민 다수는 ‘자유·평등·박애’라는 프랑스 민주주의의 이상이 “자신들에게는 적용되지 않거나 그저 거짓말에 불과하다고 느끼고 있다”고 풀이했다.
혼란이 전국으로 번지면서 ‘방리유의 분노’는 ‘프랑스의 분노’로 바뀌고 있다. <르몽드>는 “젊은이들이 공화국의 평등을 어떻게 믿게 할 것인지, 도시 지역의 차별과 경찰의 차별적 대응에 시달리는 10대들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사회 통합의 약속을 어떻게 만들어낼지”가 향후 프랑스가 풀어가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