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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의 방중을 사흘 앞두고 다음달부터 반도체 재료인 갈륨·게르마늄의 수출 통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국가 안보’를 이유로 첨단 반도체와 반도체 장비의 대중 수출을 사실상 금지한 미국에 중국 역시 똑같은 명분을 내세우며 맞불을 놓은 모양새다.
중국 상무부와 해관총서(관세청)는 3일 오후 누리집을 통해 갈륨·게르마늄과 그 화합물을 중국 정부의 허가 없이 수출할 수 없게 하는 ‘출구 관리’(수출 통제) 조처를 다음달 1일부터 실시한다고 밝혔다. 앞으로 이 물질을 수출하려면, 중국 상무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수출업자들은 외국 구매자에 대해 자세히 보고해야 한다. 유럽연합(EU) 연구를 보면, 중국은 세계에 공급되는 갈륨과 게르마늄의 각각 94%, 83%를 장악하고 있다. 중국이 실제 두 물질의 수출을 금지하면, 전세계적인 공급망 대란이 발생할 수 있다.
미 상무부는 앞선 지난해 10월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첨단 반도체와 반도체 장비의 대중 수출을 사실상 금지하는 수출 통제 조처를 실시했다. 미국은 이후 자신들이 추구하는 대중 정책은 국가 안보를 위한 ‘디리스킹’(위험 완화)이지 ‘디커플링’(관계 단절)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자 중국 상무부도 이날 반도체와 첨단 전자제품의 재료 수출 통제를 강화하며 “국가 안보와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반도체·배터리 분야의 ‘공급망 재편’을 시도하는 미국에 대한 대항 조처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미국이 첨단 반도체 등의 수출을 막았으니, 중국은 그 재료를 통제하겠다는 전술적 의도도 읽을 수 있다. 중국은 전략물자에 대한 수출관리를 강화하는 ‘출구관제법’(수출관리·통제법)을 2020년 10월 제정해 그해 12월 시행했다.
이날 발표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발표 시점이다. 중국 재무부는 3일 오전 누리집을 통해 미-중 고위급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옐런 장관이 6~9일 중국을 방문한다고 밝혔다. 이후 반나절 만에 상무부는 사실상 미국을 타깃으로 한 대항 조처를 공개했다. 사흘 뒤 열리는 미-중 대화에서 협상력을 강화하기 위해 쓸 수 있는 카드를 먼저 뽑아 든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중국은 지난달 중순 이뤄진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의 방중을 한달 가까이 앞둔 지난 5월21일에도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의 중국 내 판매를 제한하는 조처를 내놨었다.
이번 조처는 한국에도 불똥이 튈 가능성이 있다. 관세청 누리집의 수출입 무역 통계를 보면, 2019~2023년 5년 동안 한국의 전체 갈륨 수입량은 54.2t(수입액 1327만달러)이었고, 이 가운데 중국에서 수입한 양은 절반 이상(52.0%)인 28.2t(642만달러)이었다. 게르마늄은 같은 기간 총수입량 13.6t(1178만달러) 가운데 절대다수(87.5%)인 11.9t(980만 달러)을 중국에서 수입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산업공급망 점검회의’를 열고 “갈륨·게르마늄의 단기간 수급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했다. 갈륨은 미래 반도체 개발을 위한 연구용으로 사용 중이어서 직접 영향이 적고, 반도체 공정용 가스 생산 등에 사용되는 게르마늄은 대체 가스를 사용 중이고 수입처 다변화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청한 국내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질화갈륨은 고전압, 대용량 전류, 고주파수를 제어하는 데 사용하는 전력 반도체 주재료”라며 “아직 우리 기업들이 이를 본격 생산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다만, “이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고 있어 중장기적 영향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베이징/최현준 특파원, 옥기원 기자
haoju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