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겨울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에너지 시설 집중 공격으로 파괴된 중부 지역의 고압 변전소. 최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에너지 시설 공격에 다시 집중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중부/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군이 주요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의 원자력발전소 주변 지역을 나흘째 연속 공습했다. 지난해와 같이 겨울을 앞두고 전력 공급을 줄이기 위해 에너지 시설을 집중 공격하는 모습이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국경에서 200㎞ 정도 떨어진 흐멜니츠키 원전 주변 지역을 25일(현지시각)까지 나흘 연속 드론 등으로 공격했다고 에이피(AP) 통신이 보도했다. 우크라이나 에너지부는 이날 원전을 공격한 드론을 격추시키는 과정에서 파편이 주변에 떨어져 원전 내 행정 건물과 실험실의 유리창이 깨졌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1800곳 이상에 대한 전력 공급도 끊겼다. 다만, 원전 안전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당국은 러시아군의 공습이 이어지면서 나흘 동안 16명이 다쳤다고 밝혔다.
흐멜니츠키 원전은 옛 소련 시절인 1981년 건설을 시작해 1987년 가동했다. 1000메가와트(㎿)의 발전 용량을 갖춘 러시아형 가압수형 원자로 2기가 있다. 우크라이나에는 이 원전을 포함해 4개 원전이 있으며, 최대 규모인 자포리자 원전은 개전 초기인 지난해 3월부터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다.
러시아군이 전선에서 멀리 떨어진 이 원전 주변 공격을 강화하면서 지난해 겨울철에 벌였던 에너지 시설 파괴 작전에 다시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군의 방공망이 겨울철 에너지 시설 공습에 대비하고 있다면서 “이번에는 방어만 하는 게 아니라 대응에도 나설 것이다. 적들도 이를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싱크탱크 전쟁연구소(ISW)도 겨울철을 앞두고 러시아군이 “핵심 기반 시설들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고 공격 수단도 드론·미사일·유도폭탄 등으로 다양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또 “러시아가 기반 시설을 공격하면서 (이란제) 샤헤드 드론 외에 자국에서 생산된 값싸고 더 가벼운 드론을 보충하고 있는 듯 하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언론들은 최근 비행거리가 200㎞ 수준인 ‘이탈마스’ 드론과 비행거리를 늘린 ‘란세트’ 드론 개량형 등을 언급했다. 러시아군이 드론을 추가 확보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겨울철로 접어들어 전장이 진흙탕으로 바뀌면 지상 전투보다는 드론 등을 이용한 장거리 공격의 중요성이 커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편, 러시아군이 동부 도네츠크주와 남부 헤르손주에서 공격을 강화하면서 우크라이나 정부가 전선 인근 지역 어린이들을 대피시키기 시작했다고 영국 비비시(BBC) 방송이 전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두 지역에서 어린이 1천명에 대한 대피 작업을 시작했으며 북동부 지역인 하르키우주에서도 10개 마을의 어린이 275명 대피를 준비하고 있다.
정부 관리들은 많은 어린이들이 폭격이 지속되는 지역에 살고 있으며 계속 집에 머무는 것은 너무나 위험하다고 대피 작전의 배경을 설명했다. 현지 관리들은 경찰과 협력해 대피를 꺼리는 주민들에 대한 설득 작업도 벌이고 있다.
신기섭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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