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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미군 돌아온 수비크·다윈…미-중 ‘패권경쟁’ 한복판으로

등록 2012-09-09 21:19수정 2012-09-09 22:12

미-중의 충돌 뉴 그레이트 게임
③ 호주·필리핀…미국의 귀환
 #1  “어? 저게 뭐야.”

 엄청난 폭우로 필리핀 전역이 물난리를 치르던 지난 8월8일 수비크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마닐라에서 불과 3시간 거리였지만, 도로가 침수되는 바람에 18시간이나 걸렸다. 갖은 고생 끝에 도착한 수비크만에는 시커먼 잠수함 한대가 떠 있었다. 미 해군의 핵잠수함 루이빌호였다. 택시기사에게 저 잠수함이 언제부터 있었냐고 물었더니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잠수함이 자주 오는 게 아닌데…저게 왜 여기 있지?”

 

 #2  지난 6월말 호주 북단 다윈의 작은 무역항 다윈항에선 육중한 컨테이너선이 선적에 한창이었다. 사실상 호주의 대아시아 국경지대인 다윈의 이 항구를 드나드는 대부분의 배는 호주에서 생산된 철광석을 중국으로 실어 나른다. 2009~2010년 다윈항의 전체 수출량 339만6264t 가운데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83%였다. 중국을 최대 교역국으로 둔 호주의 현주소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4월 다윈엔 2차대전 이후 최초로 미군의 상설 주둔이 시작됐다. 미 해병대 250여명이 로버트슨 베릭 육군기지에서 6개월 단위로 순환 근무를 시작했으며, 2016년 정원은 2500명까지 늘어난다.

 

필리핀, 중국과 남중국해 등 갈등
미군 핵잠수함 출입 허용해 ‘견제’
헌법으로 재주둔 금지하고 있지만
미국의 개입 확대될라 우려 목소리

 미군이 아시아로 돌아오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지난해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 11월호에 “정치의 미래는 아프가니스탄도, 이라크도 아닌 아시아에서 결정될 것이며 미국은 그 중심에 있을 것이다”라는 내용의 기고를 한 뒤로 이른바 ‘아시아로의 회귀’는 미국의 중심 외교전략이 됐다. 호주 다윈의 해병대 주둔과 필리핀 수비크만의 이용 등은 그 직접적인 증거다. 그리고 그 전략이 노리는 대상은 명약관화하다. 바로 중국이다.

필리핀 수비크만에서 한 주민이 낚시를 하고 있는 뒤로 미국의 핵잠수함 루이빌호의 함교가 보인다.
수비크/이형섭 기자
필리핀 수비크만에서 한 주민이 낚시를 하고 있는 뒤로 미국의 핵잠수함 루이빌호의 함교가 보인다. 수비크/이형섭 기자
 필리핀은 미국과 중국이 부딪치는 최전선이다. 지난 4월 스카버러섬(중국명 황옌다오)에서 어업을 하던 중국 어선을 필리핀 해군이 단속하면서 시작된 양쪽의 영토분쟁은 필리핀에서 반중 시위가 거세게 일어나고 중국이 필리핀 여행중단 명령을 내리면서 점점 거세졌다. 스카보로섬과 스플래틀리군도(중국명 난사군도) 문제까지 포함한 영토분쟁은 남중국해를 현재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바다로 만들고 있다. 중국의 해군 구축함 둥관호가 지난 7월11일 이 해역에서 좌초하는 등 크고작은 사건도 끊이지 않고 있다.

 수비크만은 1992년까지 미군이 주둔하던 기지였다. 항구지역은 현재 말끔한 자유경제구역으로, 만 건너편 미군 군용기가 이착륙하던 활주로는 수비크 국제공항으로 변신해 있었다. 하지만 이 곳에 20년만에 미군들이 다시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난 6월말 미군 핵잠수함 노스캐롤라이나호가 수비크만에 부상한 뒤 지금까지 3척의 핵잠수함이 이곳을 찾았다. 필리핀은 지난 6월 미군이 이 항구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호주 ‘민주주의 친구’ 명분 내세워
2차대전뒤 미군의 상설주둔 첫 수용
동남아시아 전역이 작전 반경 돼
시민단체 “중국 공격 부를 수도”

 필리핀 외교부 대변인 라울 에르난데스는 <한겨레> 인터뷰에서 “미군 재주둔은 헌법에서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며 “미군과의 협력은 중국과 관련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중국이 올해 들어 공격적으로 나오고 있다”며 중국에 위협을 느낀다는 점은 부인하지 않았다. 수비크 주민들은 미군이 다시 돌아오는 것에 대해 별다른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다. 이곳 주민 마크(32)는 “중국 문제 때문에 미군이 오는 것을 환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지역 민심을 전했다.

지난 6월28일 호주 노던테리토리주 다윈에서 미군 주둔에 반대하는 ‘피스버스’를 배경으로 그레임 던스턴(가운데)과 ‘베이스워치’ 회원 저스틴 터티(오른쪽), 토니 영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다윈/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지난 6월28일 호주 노던테리토리주 다윈에서 미군 주둔에 반대하는 ‘피스버스’를 배경으로 그레임 던스턴(가운데)과 ‘베이스워치’ 회원 저스틴 터티(오른쪽), 토니 영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다윈/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호주 다윈은 필리핀 마닐라까지 4150㎞, 대만까지는 4300㎞ 거리에 있는 전략적 요충지다. 동남아시아 전역을 작전반경 아래 두고 있는 셈이다. 미군은 이곳에서 합동훈련이나 군사지원 등의 명목으로 미군이 줄곧 머물러왔지만 상설 주둔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곳 주민들은 2차대전 이후로도 계속 호주군과 미군이 함께 각종 훈련을 해왔다고 ‘공공연한 비밀’을 전했다.

 “(미국과) 우리는 같은 편이다.” 다윈 블레인 지방의회 노동당 후보 제프 바너트(49)의 말은 명쾌했다. 호주가 ‘돈줄’ 중국의 심기를 건드려가며 미군을 받아들인 이유다. 로버트슨 베릭 기지가 있는 넬슨 선거구의 주의원 제리 우드(62)도 “중국을 비롯해 호주 주변 아시아 국가들은 민주주의가 아니다”라며 미국의 주둔을 정당화했다. 인구 13만명의 소도시 다윈에 유입될 미군 2500명이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적지 않았다. 다윈이 속한 노던테리토리주 대변인 클레어 마치는 “소매업, 여가·관광, 엔터테인먼트, 교통 부문의 추가적인 수입은 물론, 미군과 장비를 지원하는 비즈니스에서 고용 창출 효과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지역들은 미군을 품에 안음으로써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한복판에 뛰어들게 됐다. 지정학적 위기가 고조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호주의 미군기지 반대 단체인 ‘베이스 워치’의 회원 크리스 화이트(64)는 “(미군 기지가 들어서면) 일본이 2차대전 때 다윈을 폭격한 것처럼 미래에 중국이 호주를 공격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또다른 회원 저스틴 튜티(40)는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 로킹햄에 항공모함 항구 건설을 논의하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며 “호주인들은 미군의 핵 항공모함, 핵무기 등 핵이 들어오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고 발끈했다.

 필리핀 시민단체 바얀의 사무총장 레나토 레이스는 “미국은 장차 남중국해를 통제하려 할 것이며 수비크를 그 발판으로 삼을 것”이라며 “필리핀이 미국과 중국 둘 중의 한편에 서는 것은 국익에 반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수비크 지역의 시민활동가 제이시 델로스는 “20년 전까지 계속된 미군의 주둔은 성매매와 범죄 등 수많은 사회문제를 남겼다”며 “미군의 재림은 또다른 악몽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마닐라, 수비크/이형섭, 다윈/전정윤 기자 sub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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