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핑턴포스트를 창업한 지 6년 만에 <뉴욕타임스> 온라인판을 뛰어넘는 미국 1위의 온라인 미디어로 키운 아리아나 허핑턴 회장. 그는 보수 논객에서 진보 논객으로 변신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허핑턴포스트 제공
[한겨레-허핑턴포스트 제휴] 아리아나 허핑턴 회장 인터뷰
허핑턴 방문 40% 미국 밖서 와
나는 그리스 유전자 지녀
공론장 지구촌 확산시키고파
허핑턴 방문 40% 미국 밖서 와
나는 그리스 유전자 지녀
공론장 지구촌 확산시키고파
시민들로부터 신뢰 얻고있는
한겨레를 만난 건 커다란 축복 “나는 그리스 유전자를 지녔다. 공론장을 지구촌으로 확산시키고 싶다.” 아리아나 허핑턴(63) 허핑턴포스트 미디어그룹 회장 겸 편집인은 자신이 그리스 태생임을 유독 강조했다. 허핑턴 회장은 <허핑턴포스트>가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폴리스에서 일반 시민들이 모여 정치와 사회, 예술 등을 토론하며 여론을 형성했던 ‘아고라’(광장)를 온라인에 옮겨 놓은 것에 비유했다. 그는 2005년 허핑턴포스트를 처음 설립할 때부터 기성 여론 주도층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자유롭게 목소리를 내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다고 말했다. 허핑턴 회장은 허핑턴포스트가 창업 6년만인 2011년 <뉴욕타임스> 온라인판 방문자 수를 앞지르며 미국 방문자 수 1위의 미디어가 되도록 키운 장본인이다. <타임>은 그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2006·2011년)에 선정했고, <포브스>는 올해 그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 우먼 20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았다. <한겨레>와 허핑턴포스트코리아를 설립하기로 합의한 지난 7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허핑턴포스트 본사에서 그를 만났다. -허핑턴포스트는 영국·프랑스·일본 등 8개국 주요 언론사와 현지 온라인 사이트를 개설한 데 이어 한국 진출도 결정했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한데 모으고 흥미로운 대화를 하도록 하는 것은 나의 그리스 디엔에이(DNA)의 일부다. 처음부터 허핑턴포스트는 음료수 자판기 앞과 저녁 식사 테이블에서 사람들이 나눌 법한 정치·예술·책·음식 등 다양한 주제의 대화를 온라인에서 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2020년이면 거의 30억명의 사람들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가입할 것이다. 우리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장함으로써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마음을 터놓고 이런 대화를 나누도록 하고 싶다. 지금도 허핑턴포스트 순 방문자의 40%는 미국 밖에서 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가? “세계에서 중요한 지역인 한국에서 사이트를 열게 돼 기쁘다. 앞으로 세계가 한국을 더 잘 이해하게 할 뿐만 아니라, 세계가 한국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도록 할 것이다. 허핑턴포스트는 자체 취재진이 직접 기사를 생산하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인들에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할 것이다.” -한겨레와 파트너가 된 이유는? “한겨레를 파트너로 만나게 된 것은 우리의 축복이다. 한겨레는 언론 자유를 위해 떨쳐 나서고, 정치·경제 등 분야에서 중요한 탐사보도를 했을 뿐만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과 관련한 좋은 뉴스도 많이 생산함으로써 시민들의 신뢰를 얻었다고 알고 있다. 정치적 성향을 떠나 해당 나라에서 얼마나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신뢰를 얻고 있느냐가 선택의 기준이었다.” -앞으로 허핑턴포스트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다고 보는가? 중요 현안에 대한 공동 기획도 가능한가? “그렇다. 우리는 한겨레와 함께 기존의 국제 협력 모델을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청년 실업,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2기 임기에 대한 소망, 프란시스 교황 선출, 각 나라의 동성애 권리, 스트레스 현상 등을 공동 기획했다.” 허핑턴포스트 웹사이트의 디자인은 독특하다. 대부분의 온라인뉴스 사이트는 뉴스가 중심이지만, 이곳은 눈에 잘 띄는 왼쪽에 블로그, 가운데에 뉴스, 오른쪽에 생활·엔터테인먼트를 배치하고 있다. 이런 도안은 2005년 2월 당시 허핑턴 회장의 아파트 거실에 창업자 5명이 모여 만든 것이다. 이들은 종이 냅킨에 도안을 그렸고 나중에 이것을 기술팀에 전달했다. 허핑턴 회장은 당시 실시간으로 변하는 뉴스와 의견을 한군데서 볼 수 있는 원스톱 사이트를 구상했다. 특히, 그는 주류 언론들이 대부분의 현안들을 다루긴 하지만 지나치게 새로운 것들 위주로 보도하는 것을 비판했다. 그는 온라인 뉴스는 24시간 뉴스를 추적할 수 있고, 특정 분야에 관심이 많은 블로거들이 해당 주제에 대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수 있는 점에 주목했다. 실제로, 허핑턴포스트는 초창기에 유명 인사들의 블로그로 관심을 끈 뒤, 무명의 일반 시민 블로거들이 특종도 하고 이슈들도 많이 만들어냈다. 시민들로부터 신뢰 얻고 있는
한겨레를 만난 건 커다란 축복
청년실업 등 공동기획 가능 -허핑턴포스트를 창업한 동기는 무엇이었나? “나는 당시 중요한 논의들이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기존의 많은 여론 주도층이 여기에 참여하지 않았다. 나는 처음부터 기존 여론 주도층과 일반 시민들에게 의견을 표출할 플랫폼을 제공하고 싶었다. 여기에 위계는 없다. 다만, 글의 질은 예외다. 동시에 나는 ‘시민적 논의’가 이뤄지는 장을 만들고 싶었다. 블그로와 뉴스 모음, 전통적 보도 등 3가지를 동시에 추구했다. 기술 발전에도 불구하고 저널리즘의 역할은 똑같다. 이용 가능한 모든 수단을 활용해서 중요한 현안들을 공론화하고 권력층에게 진실을 말하고, 또 시민들이 자신의 얘기를 하도록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숙의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댓글을 통해 이뤄지는 시민적 논의는 중요하다고 본다. 허핑턴포스트는 그런 공론장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나? “그렇다. 그건 그리스 아고라에서 시작됐다. 나는 허핑턴포스트가 사람들이 와서 정치와 라이프 스타일, 엔터테인먼트 등 모든 것을 토론하는 온라인 아고라와 같다고 생각한다. 허핑턴포스트의 커뮤니티는 매우 강하다. 실업 개선이나 삶의 질 향상 등 주요 이슈들을 다루는 커뮤니티들이 많다.” -댓글은 얼마나 되는가? 그리고 논의의 질은 어떤가? “설립 이후 지금까지 모두 3억개가량의 댓글이 올라왔다. 요즘엔 월별로 700만개에 이른다. 우리는 악성 댓글들을 사전에 차단하는 장치들을 갖고 있어 대부분의 글들은 생각이 깊은 것들이다. 그러나 악성 댓글들을 모두 차단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달 말부터 익명 댓글 기능을 전면 차단하기로 했다. 서로를 존중하는 대화를 나누길 원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중요한 정보를 갖고 있고 이를 말할 경우 안전이 위험해진다면 우리에게 비공개로 신원을 제공하고 다른 이름을 사용할 수 있다.” -허핑턴포스트가 단기간에 성공을 한 이유는 뭐라고 보는가? “우리는 블로그와 뉴스 모음, 전통적 보도, 댓글을 모두 포괄하는 첫 온라인 미디어였다. 우리는 쉬지 않고 계속 혁신을 했다. 새로운 섹션들과 동영상, 라이브 뉴스들을 부가하고 세계화를 추진했다. 또 ‘서드 메트릭’(Third Metric·제3의 잣대) 운동과 같은 라이프 스타일 혁신 운동을 전개했다. 성공 비결은 우리가 모든 것의 중심에 참여했고, 독자들을 우리가 하는 일의 중심에 놓았다는 것이다.” -각계 각층의 유력 인사들과의 개인적인 네트워크가 허핑턴포스트의 초기 성공에 기여했다는 평가가 많다. 그런 네트워크를 쌓는 비결은 뭔가? “나는 사람들과 만나 진실한 관계를 쌓는 것을 좋아한다. 이것은 나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어머니는 가게 점원이든 대통령이든 상관없이 사람들과 진실한 관계를 맺었다. 어머니는 인간에겐 모든 사람들을 연결시키는 공통의 뭔가가 있다고 믿었다. 그건 우리의 가슴에서 나오는 것이다.” 허핑턴 회장이 최근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서드 메트릭’ 운동으로 화제를 돌렸다. 이 운동은 돈과 권력이라는 기존의 성공 잣대로는 사회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인식 아래 삶의 질이나 지혜, 나눔 등 새로운 잣대를 세우자는 취지를 갖고 있다. 그는 지난 5월부터 이 운동을 주창하고 있다. 허핑턴포스트는 사이트에 별도 코너를 마련해 관련 콘텐츠를 배치하고 있으며, 뉴욕과 런던에서 관련 컨퍼런스도 열었다. 허핑턴 회장이 이 운동을 생각한 것은 2007년이다. 허핑턴포스트 창간 초기였던 당시에 두 딸의 대학 입학 뒷바라지까지 해야 해 하루에 잠을 4~5시간밖에 자지 못했다고 한다. 이때 과로로 책상에서 졸도를 해 광대뼈가 부러지는 바람에 수술까지 했다. 그 이후 그는 잠은 7~8시간 자고 명상을 하는 등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양육·이혼 등 다양한 콘텐츠 제공
돈·권력 넘어 삶의 질 향상 이끄는
‘서드 메트릭’ 운동에 주력 -‘서드 메트릭’을 소개해달라. “이것은 사람들이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려 기진맥진해지고 있다는 깨달음에 기반한 것이다. 이는 우리의 건강과 삶의 질에도 좋지 않으며 현명한 의사 결정을 방해할 수 있다. 그래서 성공의 잣대를 돈과 권력을 넘어 삶의 질이나 지혜·나눔 등으로 재정의하자는 것이다. 우리의 웹사이트에 있는 다양한 콘텐츠들을 통해 사람들이 삶의 방식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는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 이 콘텐츠에는 양육·이혼·결혼·명상·스트레스 등 많은 라이프 스타일 관련 주제들이 포함돼 있다.” 허핑턴 회장은 1990년대 중반까지도 보수파 논객 중의 한명이었다. 그러다 진보진영 논객으로 변신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에 대해 그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민간 영역의 한계를 인식하고 정부의 역할을 새롭게 인식한 것이 이유였다고 답했다. “나는 과거에 민간 영역이 우리가 직면한 소득 불평등 같은 주요 현안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민간 영역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목격했다.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자원과 의제설정 능력 없이는 우리 사회의 가장 근본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게 분명해졌다.” 앞으로의 꿈이 뭐냐는 물음에 그는 “나는 더이상 성공을 장시간 일하는 것과 동일시하지 않는 세상을 꿈꾼다. 여성들이 여성 자신들뿐만 아니라 남성들을 위해서 이 길을 이끌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뉴욕/박현 특파원 hyun21@hani.co.kr
한겨레를 만난 건 커다란 축복 “나는 그리스 유전자를 지녔다. 공론장을 지구촌으로 확산시키고 싶다.” 아리아나 허핑턴(63) 허핑턴포스트 미디어그룹 회장 겸 편집인은 자신이 그리스 태생임을 유독 강조했다. 허핑턴 회장은 <허핑턴포스트>가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폴리스에서 일반 시민들이 모여 정치와 사회, 예술 등을 토론하며 여론을 형성했던 ‘아고라’(광장)를 온라인에 옮겨 놓은 것에 비유했다. 그는 2005년 허핑턴포스트를 처음 설립할 때부터 기성 여론 주도층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자유롭게 목소리를 내도록 하는 것이 목표였다고 말했다. 허핑턴 회장은 허핑턴포스트가 창업 6년만인 2011년 <뉴욕타임스> 온라인판 방문자 수를 앞지르며 미국 방문자 수 1위의 미디어가 되도록 키운 장본인이다. <타임>은 그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2006·2011년)에 선정했고, <포브스>는 올해 그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비즈니스 우먼 20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았다. <한겨레>와 허핑턴포스트코리아를 설립하기로 합의한 지난 7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허핑턴포스트 본사에서 그를 만났다. -허핑턴포스트는 영국·프랑스·일본 등 8개국 주요 언론사와 현지 온라인 사이트를 개설한 데 이어 한국 진출도 결정했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장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한데 모으고 흥미로운 대화를 하도록 하는 것은 나의 그리스 디엔에이(DNA)의 일부다. 처음부터 허핑턴포스트는 음료수 자판기 앞과 저녁 식사 테이블에서 사람들이 나눌 법한 정치·예술·책·음식 등 다양한 주제의 대화를 온라인에서 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2020년이면 거의 30억명의 사람들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가입할 것이다. 우리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확장함으로써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마음을 터놓고 이런 대화를 나누도록 하고 싶다. 지금도 허핑턴포스트 순 방문자의 40%는 미국 밖에서 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어떤 역할을 하고 싶은가? “세계에서 중요한 지역인 한국에서 사이트를 열게 돼 기쁘다. 앞으로 세계가 한국을 더 잘 이해하게 할 뿐만 아니라, 세계가 한국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도록 할 것이다. 허핑턴포스트는 자체 취재진이 직접 기사를 생산하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인들에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할 것이다.” -한겨레와 파트너가 된 이유는? “한겨레를 파트너로 만나게 된 것은 우리의 축복이다. 한겨레는 언론 자유를 위해 떨쳐 나서고, 정치·경제 등 분야에서 중요한 탐사보도를 했을 뿐만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과 관련한 좋은 뉴스도 많이 생산함으로써 시민들의 신뢰를 얻었다고 알고 있다. 정치적 성향을 떠나 해당 나라에서 얼마나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신뢰를 얻고 있느냐가 선택의 기준이었다.” -앞으로 허핑턴포스트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다고 보는가? 중요 현안에 대한 공동 기획도 가능한가? “그렇다. 우리는 한겨레와 함께 기존의 국제 협력 모델을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청년 실업,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2기 임기에 대한 소망, 프란시스 교황 선출, 각 나라의 동성애 권리, 스트레스 현상 등을 공동 기획했다.” 허핑턴포스트 웹사이트의 디자인은 독특하다. 대부분의 온라인뉴스 사이트는 뉴스가 중심이지만, 이곳은 눈에 잘 띄는 왼쪽에 블로그, 가운데에 뉴스, 오른쪽에 생활·엔터테인먼트를 배치하고 있다. 이런 도안은 2005년 2월 당시 허핑턴 회장의 아파트 거실에 창업자 5명이 모여 만든 것이다. 이들은 종이 냅킨에 도안을 그렸고 나중에 이것을 기술팀에 전달했다. 허핑턴 회장은 당시 실시간으로 변하는 뉴스와 의견을 한군데서 볼 수 있는 원스톱 사이트를 구상했다. 특히, 그는 주류 언론들이 대부분의 현안들을 다루긴 하지만 지나치게 새로운 것들 위주로 보도하는 것을 비판했다. 그는 온라인 뉴스는 24시간 뉴스를 추적할 수 있고, 특정 분야에 관심이 많은 블로거들이 해당 주제에 대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수 있는 점에 주목했다. 실제로, 허핑턴포스트는 초창기에 유명 인사들의 블로그로 관심을 끈 뒤, 무명의 일반 시민 블로거들이 특종도 하고 이슈들도 많이 만들어냈다. 시민들로부터 신뢰 얻고 있는
한겨레를 만난 건 커다란 축복
청년실업 등 공동기획 가능 -허핑턴포스트를 창업한 동기는 무엇이었나? “나는 당시 중요한 논의들이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기존의 많은 여론 주도층이 여기에 참여하지 않았다. 나는 처음부터 기존 여론 주도층과 일반 시민들에게 의견을 표출할 플랫폼을 제공하고 싶었다. 여기에 위계는 없다. 다만, 글의 질은 예외다. 동시에 나는 ‘시민적 논의’가 이뤄지는 장을 만들고 싶었다. 블그로와 뉴스 모음, 전통적 보도 등 3가지를 동시에 추구했다. 기술 발전에도 불구하고 저널리즘의 역할은 똑같다. 이용 가능한 모든 수단을 활용해서 중요한 현안들을 공론화하고 권력층에게 진실을 말하고, 또 시민들이 자신의 얘기를 하도록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숙의의 과정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댓글을 통해 이뤄지는 시민적 논의는 중요하다고 본다. 허핑턴포스트는 그런 공론장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나? “그렇다. 그건 그리스 아고라에서 시작됐다. 나는 허핑턴포스트가 사람들이 와서 정치와 라이프 스타일, 엔터테인먼트 등 모든 것을 토론하는 온라인 아고라와 같다고 생각한다. 허핑턴포스트의 커뮤니티는 매우 강하다. 실업 개선이나 삶의 질 향상 등 주요 이슈들을 다루는 커뮤니티들이 많다.” -댓글은 얼마나 되는가? 그리고 논의의 질은 어떤가? “설립 이후 지금까지 모두 3억개가량의 댓글이 올라왔다. 요즘엔 월별로 700만개에 이른다. 우리는 악성 댓글들을 사전에 차단하는 장치들을 갖고 있어 대부분의 글들은 생각이 깊은 것들이다. 그러나 악성 댓글들을 모두 차단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달 말부터 익명 댓글 기능을 전면 차단하기로 했다. 서로를 존중하는 대화를 나누길 원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중요한 정보를 갖고 있고 이를 말할 경우 안전이 위험해진다면 우리에게 비공개로 신원을 제공하고 다른 이름을 사용할 수 있다.” -허핑턴포스트가 단기간에 성공을 한 이유는 뭐라고 보는가? “우리는 블로그와 뉴스 모음, 전통적 보도, 댓글을 모두 포괄하는 첫 온라인 미디어였다. 우리는 쉬지 않고 계속 혁신을 했다. 새로운 섹션들과 동영상, 라이브 뉴스들을 부가하고 세계화를 추진했다. 또 ‘서드 메트릭’(Third Metric·제3의 잣대) 운동과 같은 라이프 스타일 혁신 운동을 전개했다. 성공 비결은 우리가 모든 것의 중심에 참여했고, 독자들을 우리가 하는 일의 중심에 놓았다는 것이다.” -각계 각층의 유력 인사들과의 개인적인 네트워크가 허핑턴포스트의 초기 성공에 기여했다는 평가가 많다. 그런 네트워크를 쌓는 비결은 뭔가? “나는 사람들과 만나 진실한 관계를 쌓는 것을 좋아한다. 이것은 나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어머니는 가게 점원이든 대통령이든 상관없이 사람들과 진실한 관계를 맺었다. 어머니는 인간에겐 모든 사람들을 연결시키는 공통의 뭔가가 있다고 믿었다. 그건 우리의 가슴에서 나오는 것이다.” 허핑턴 회장이 최근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서드 메트릭’ 운동으로 화제를 돌렸다. 이 운동은 돈과 권력이라는 기존의 성공 잣대로는 사회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인식 아래 삶의 질이나 지혜, 나눔 등 새로운 잣대를 세우자는 취지를 갖고 있다. 그는 지난 5월부터 이 운동을 주창하고 있다. 허핑턴포스트는 사이트에 별도 코너를 마련해 관련 콘텐츠를 배치하고 있으며, 뉴욕과 런던에서 관련 컨퍼런스도 열었다. 허핑턴 회장이 이 운동을 생각한 것은 2007년이다. 허핑턴포스트 창간 초기였던 당시에 두 딸의 대학 입학 뒷바라지까지 해야 해 하루에 잠을 4~5시간밖에 자지 못했다고 한다. 이때 과로로 책상에서 졸도를 해 광대뼈가 부러지는 바람에 수술까지 했다. 그 이후 그는 잠은 7~8시간 자고 명상을 하는 등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양육·이혼 등 다양한 콘텐츠 제공
돈·권력 넘어 삶의 질 향상 이끄는
‘서드 메트릭’ 운동에 주력 -‘서드 메트릭’을 소개해달라. “이것은 사람들이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려 기진맥진해지고 있다는 깨달음에 기반한 것이다. 이는 우리의 건강과 삶의 질에도 좋지 않으며 현명한 의사 결정을 방해할 수 있다. 그래서 성공의 잣대를 돈과 권력을 넘어 삶의 질이나 지혜·나눔 등으로 재정의하자는 것이다. 우리의 웹사이트에 있는 다양한 콘텐츠들을 통해 사람들이 삶의 방식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는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 이 콘텐츠에는 양육·이혼·결혼·명상·스트레스 등 많은 라이프 스타일 관련 주제들이 포함돼 있다.” 허핑턴 회장은 1990년대 중반까지도 보수파 논객 중의 한명이었다. 그러다 진보진영 논객으로 변신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에 대해 그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민간 영역의 한계를 인식하고 정부의 역할을 새롭게 인식한 것이 이유였다고 답했다. “나는 과거에 민간 영역이 우리가 직면한 소득 불평등 같은 주요 현안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민간 영역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목격했다.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자원과 의제설정 능력 없이는 우리 사회의 가장 근본적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게 분명해졌다.” 앞으로의 꿈이 뭐냐는 물음에 그는 “나는 더이상 성공을 장시간 일하는 것과 동일시하지 않는 세상을 꿈꾼다. 여성들이 여성 자신들뿐만 아니라 남성들을 위해서 이 길을 이끌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뉴욕/박현 특파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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