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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국제일반

중국-러시아 균형외교·제3의 이웃 전략…“사슴 몽골, 야생마 됐다”

등록 2015-05-20 21:42수정 2015-05-20 22:13

몽골의 상징인 칭기즈칸 광장에 위치한 정부종합청사 앞에 칭기즈칸 상이 있다. 이 광장은 원래 몽골 독립영웅의 이름을 따 수흐바타르 광장으로 불리웠으나 몽골 정부는 최근 칭기즈칸 광장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옛소련 시대 칭기즈칸이란 이름은 금기의 대상이었으나 체제 전환 이후 민족의 상징으로 복권됐다. 사진 박영률 기자
몽골의 상징인 칭기즈칸 광장에 위치한 정부종합청사 앞에 칭기즈칸 상이 있다. 이 광장은 원래 몽골 독립영웅의 이름을 따 수흐바타르 광장으로 불리웠으나 몽골 정부는 최근 칭기즈칸 광장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옛소련 시대 칭기즈칸이란 이름은 금기의 대상이었으나 체제 전환 이후 민족의 상징으로 복권됐다. 사진 박영률 기자
[강대국 사이에서] ④ 몽골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 역을 통과하는 철도 노선은 하나뿐이다. 역으로 들어서면 오른쪽은 러시아 이르쿠츠크로 향하는 북행열차고, 왼쪽은 자민우드를 거쳐 중국을 향하는 남행열차다.

지난달 29일 오후 울란바토르 역에서는 숱한 이별이 이뤄지고 있었다. 남행열차를 타고 중국 내몽골(네이멍구)로 떠나는 동생을 배웅하러 온 한 중년 여성은 “동생의 종양이 악성으로 판명돼 중국 네이멍구 후허하오터로 치료를 받으러 간다”고 말했다. 북쪽 러시아 국경 근처 마을에 산다는 여대생은 “최근 러시아와 몽골의 비자면제협정이 체결되면서 러시아 쪽으로 향하는 여행객이 부쩍 늘었다”고 했다.

이 철로는 몽골의 생명선이다. 남행열차로는 몽골의 석탄과 자원이 수출되고, 중국 공산품이 들어온다. 몽골 수출의 85%와 수입의 45%가 이 철로를 중심으로 한 중국과의 무역에 의존한다. 북행열차를 통해선 러시아의 석유와 천연가스가 들어온다. 러시아와의 교역규모는 전체 교역량의 10% 안팎에 불과하지만 에너지가 끊기면 모든 것이 멈춘다. 2011년에는 러시아가 몽골 동부의 우랴늄 광산 개발권 문제로 갈등을 빚다가 경유 공급을 중단해 몽골 경제를 휘청이게 했다.

중·러 두 강대국의 영향력은 그 사이에 낀 몽골의 숙명이다. 기자가 묵은 울란바토르 시내 호텔은 중국인 사업가와 관광객들로 붐볐다. 지난달 26일 몽골로 향하는 미야트 항공 기내에서 왼쪽 옆자리에 앉은 중국계 청년도 말레이시아 화교 자본인 샹그릴라호텔 관계자였다. 울란바토르에서 5성급 호텔 개업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는 그는 “최근 원자재 가격 하락 등으로 몽골 경제성장률이 조금 주춤하긴 하지만, 윗선에서 호텔 개장을 결정한 것은 그만큼 몽골의 미래에 대한 믿음이 있다는 얘기가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그때 오른편에 앉아 있던 몽골인 바야르는 인상을 찌푸렸다. 한국에서 7년 동안 일하며 배운 기술과 모은 자금으로 몽골에서 건축 관련 사업을 하고 있다는 그는 “역사적으로 몽골인의 중국에 대한 감정은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감정보다 더 좋지 않다”며 “너무 많은 중국인들이 몽골에 들어와 걱정”이라고 말했다.

“망치와 쇠모루 사이에” 비유
몽골 현대사는 비극의 역사

소련 붕괴 뒤 중-러 사이 ‘중립’
미·일·유럽 등 제3국과 협력 확대
미군과 군사훈련까지 합의하자
시진핑·푸틴 잇단 방문 ‘손길’
전방위 외교가 몽골 위상 드높여

울란바토르에서 만난 바산자브 르하그바 몽골 국가안전보장회의 산하 전략연구소 고문은 “몽골의 현대사는 비극적 역사”라며 “러시아 10월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몽골은 내몽골처럼 중국의 자치지역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몽골의 국제문제 전문가인 간툴가는 최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중국인들은 국가주석부터 걸인까지 몽골을 자국의 일부로 여기고 있다”고 평한 적이 있는데, 상당수 몽골인들이 이 의견에 공감할 만큼 몽골인의 중국에 대한 감정은 미묘하다.

13세기 칭기즈칸 시대에 세계를 호령했지만, 100년 전 몽골은 구한말 조선처럼 열강의 각축장이었다. 몽골인들은 당시 중·러 사이에 끼인 자신의 처지를 “망치와 모루 사이에 있다”라고 비유했다. 중국 신해혁명의 혼란기를 틈타 1911년 몽골인들은 본격적으로 독립을 추진했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 미국과 일본이 카쓰라-태프트 조약(1904년)으로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했듯, 중국과 러시아는 1915년 캬흐타에서 만나 몽골인들이 요구한 전 몽골족의 통합과 독립을 무산시켰다. 대신 외몽골 만의 자치를 허용하되 중국의 종주권을 인정하도록 했다. 그뒤 러시아 혁명이 발발하자 중국은 군대를 보내 몽골인들이 어렵게 얻은 자치권마저 무산시켰다. 1920년엔 러시아 백군의 침입으로 몽골은 ‘미친 남작’으로 불린 운게른 슈테른베르크의 학정에 시달렸다. 몽골인들은 소련의 힘을 빌려 1921년 간신히 독립을 쟁취했지만 위성국가가 됐고, 스탈린 시대엔 수만명이 숙청을 당했다.

전환의 기회는 1990년 찾아왔다. 옛 소련이 붕괴하고 신생 러시아가 휘청이는 틈을 타 몽골은 옛 소련에 대한 배타적 의존관계를 청산하고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는 ‘중립’ 전략을 채택했다. 한편으로 중·러의 과도한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 ‘제3의 이웃’ 개념을 도입해 미국, 일본, 유럽, 한국, 캐나다 등과도 관계를 확대했다. 당시 한국과의 수교 업무에 참여했던 르하그바 국가안전보장회의 전략연구소 고문은 “1990년 한국과의 수교는 옛 소련에 알리지도 않고 진행했다”며 “그 몇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일”이라고 말했다.

유엔(UN) 평화유지활동(PKO) 참여를 국가 정책으로 내걸고,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아프리카 등에 적극적으로 파병했다. 몽골 국내에 유엔 평화유지군 훈련장을 만들고, 2003년부터는 평화유지군 훈련의 일환으로 미국과 칸퀘스트 훈련(2004년부터는 다자간 군사훈련으로 확대)을 시작했다. 2014년 4월에는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이 몽골을 방문해 양국간 합동 군사훈련과 국방협력 확대에 합의했다.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끼여있는 몽골에서 미국과의 군사훈련까지 전개되자, 중국과 러시아는 전략적 균형을 맞추기 위해 몽골에 관심의 손을 뻗었다. 지난해 8월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9월에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몽골을 방문했다. 지난해 몽·중·러 3개국은 매년 3개국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지난 16일엔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도 몽골을 찾아 10억달러 원조를 약속했다.

몽골이 세계 주요국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곳으로 변모하면서 여러 나라들이 몽골과의 협력을 확대하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최근 몽골의 경제 성장과 국제적 위상의 강화는 풍부한 천연자원, 지정학적 위치 등 여러 배경이 있지만 우선 1990년대 이후 일방적인 대러시아(소련) 의존 정책에서 탈피해 전방위 외교를 구사한 것이 주요한 원인 중 하나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울람바야르 몽골 인문대 교수(국제관계학)는 “몽골이 ‘제3의 이웃 전략’을 구사하면서 미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이 높은 관심을 가지게 돼 몽골의 전략적 가치가 증대하고 있다”며 “이제 몽골은 어린 사슴이 아닌 두 코끼리 사이에 낀 야생마가 됐다”라고 비유했다.

몽골이 중-러 사이 완충국이 되고, 러·중 일변도에서 탈피해 ‘제3의 이웃’ 국가들과의 세력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면 최선이다. 하지만 몽골과 중·러 양국 정상이 지난해 여러차례 만나 체결한 경제와 안보 협력 강화 등에 대한 합의들이 이행되면 중·러 양국 특히 중국에 대한 의존도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외국어대 중앙아시아연구소 이평래 교수는 “몽·중·러 3국회담은 중·러의 전략적 선택이라는 측면이 있어 몽골 외교의 승리로만 볼 수 없다”며 “(중국에 대한) 경제적 종속은 국제정치와 내정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고 균형외교 정책의 근본적인 수정이 불가피한 데 이것이 몽골 외교의 최대 고민”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 교수는 냉전 이후 몽골 외교가 나름의 성과를 거둔 것은 인정해야 하며 최근의 행보를 ‘중·러 회귀’로만 볼 수는 없다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몽골이 중국과 옛 소련 국가들이 참여하는 상하이협력기구(SCO)에 가입하지 않는 것도 ‘제3의 이웃 전략’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울란바토르 대화 등 동북아 평화 중재자 역할을 포기하지 않는 것도 균형외교를 통해 아시아의 스위스나 핀란드로 가는 길이 대국 사이의 유일한 출구임을 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울란바토르/박영률 기자 ylp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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