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말레이시아 세팡시 인근 경찰서에서 인도네시아 국적 여성 용의자인 시티 아이샤(노란 상의)가 경찰차를 타고 있다. 연합뉴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46) 피살이 사전에 치밀한 계획과 준비 아래 이뤄졌다는 점은 경찰 수사 결과 점점 구체화되고 있다. 하지만 경찰에 체포된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출신 여성 용의자들이 남성 용의자들에게 ‘단순 이용’ 당했을 가능성도 점점 높아지고 있어, ‘남성 용의자 4명’을 붙잡지 못한다면 사건 실체에 대한 접근 자체가 힘들어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16일 새벽 2시께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인근 암팡 지역의 한 호텔에서 체포된 인도네시아 국적의 시티 아이샤(25)는 체포 당시 100달러짜리 지폐 3장을 포함해 외국 화폐를 소지하고 있었다고 말레이시아 현지 매체 <더 스타>가 전했다. 아이샤의 호텔 방에서는 루이뷔통 지갑과 숄, 레이벤 선글라스, 휴대폰 2개도 함께 발견됐다. 아이샤는 경찰 조사에서 “쿠알라룸푸르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신원 미상의 남자가 100달러를 주겠다는 제안을 해 응하게 됐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져, 돈을 받고 범행에 가담했을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나이트클럽에서 호스티스로 일한 아이샤는 경찰에서 이 남성을 텔레비전 리얼리티 쇼를 찍는 제작진으로 알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더욱이 현지 중국어 매체 <중국보>는 또다른 ‘아시아 출신의 한 남성’이 베트남 출신 도안티흐엉(29)과 아이샤를 몇 달 전부터 알고 지냈고, 이 남성이 ‘또다른 남성 용의자들’로 추정되는 동료들에게 흐엉을 소개해주고 함께 여행도 다녔다고 경찰 소식통을 인용해 전하고 있다. 최근에 이 남성이 두 여성에게 “현재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몰래카메라 장난 동영상’을 찍자”고 제안했고, 두 여성은 이 남성과 함께 여러 차례에 걸쳐 몰래카메라를 찍기 위한 연습을 했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를 오갔던 아이샤는 지난 2일 말레이시아에 입국하기 전에 흐엉과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일본 <엔에이치케이>(NHK) 방송은 전했다. 흐엉은 경찰 조사에서 나머지 용의자들에 대해 “여행 동료들”이라고 진술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아이샤에게 접근한 남성과 <중국보>가 보도한 ‘아시아 출신 남성’이 동일인인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남성 용의자 4명’에 포함되는 것으로 보인다. 두 여성 용의자들은 모두 경찰에서 ‘장난 동영상을 찍는 것으로 알았다. 김정남은 전혀 몰랐다’고 진술했다. 범행 전에 용의자들이 서로 입을 맞췄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하지만 남성 용의자들이 의도적으로 유흥업소 여성들에게 접근해, 금품을 미끼로 이들을 원격조종해 범행에 이용한 뒤, 이들을 버려두고 자신들만 잠적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용의자 6명은 지난 13일 김정남을 살해하기 전날인 12일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제2청사를 찾아가 청사를 돌아다니면서 범행 장소를 물색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공항 청사 폐회로텔레비전(CCTV)에 찍힌 영상에는 하루 전날 이들이 액체 스프레이를 서로 뿌리며 장난치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 범행 당일에는 내용물을 독극물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더 스타>는 이날 “경찰이 (흐엉이 머물렀던) 호텔 방에서 독극물로 추정되는 액체병을 찾아냈다”고 보도했다.
결국 행방이 묘연한 남성 용의자 4명을 체포해야 사건의 실마리가 풀려나갈 것으로 보인다.
황금비 박영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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