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각) 워싱턴 원호부(Department of Veterans Affairs)에서 연설하고 있다. 워싱턴/UPI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7일(현지시각)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배치 비용을 한국이 대라고 요구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 기조와 비즈니스 협상 방식, 미국 내 취약한 정치적 상황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은 유세기간 및 취임 이후에도 자국 이익을 전면에 내건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며, 한국을 비롯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등 동맹들에게 미군 주둔 비용 인상을 요구할 것임을 밝혀왔다. 미국이 동맹국의 안보를 지켜주므로 ‘공짜 안보’에 무임승차하지 말라는 논리였다. 핵심 동맹국에 대해서도 비용 문제는 양보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초반부터 분명히 보여줬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보면 이런 기조가 녹아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드가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한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바탕으로, 이에 대한 청구서를 한국에 보냈다. “한국민을 보호하기를 원하며 보호할 것”이지만 “(한국이) 그것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번째로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미국 우선주의’ 관철을 위해 특유의 성동격서 식 ‘협상기술’을 동원한 것일 수 있다. 이르면 연말쯤 시작할 한-미 간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앞서 주둔 비용 인상을 목표로, 사드 배치 비용을 협상 수단으로 삼기 위한 사전포석일 수 있다. 만약, 사드 비용 자체를 받아내는 게 ‘진짜 목표 ’라면, 최대치를 부르는 방식으로 상대방을 압박해 협상의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것일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드 관련 비용을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던 점에 비춰보면, 최소한 참모들로부터 관련 보고를 받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다만, <로이터>와 인터뷰 전에 참모들과 사전 조율을 했는지도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워싱턴 외교소식통은 “사전에 조율됐을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미 국무부도 <한겨레>가 보낸 논평 요청에 28일 저녁(한국 시간 기준)까지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 그만큼 당혹스러워한다는 방증일 수도 있다.
문제는, 실무진 입장에서 대통령이 한 발언을 뭉개거나 번복하기가 상당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는 앞으로 한-미 정상회담 등에서 사드 비용 문제가 의제로 올라올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번째로, 궁지에 몰려있는 국내 정치상황을 국외에서 돌파하기 위한 ‘의제 바꾸기’ 전략도 숨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시리아에 대한 공격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문제, 아프가니스탄 폭격 등 자국 국민들의 시선을 외부로 돌리려는 일관된 경향을 보여왔다. 사드 비용 요구나 한-미 자유무역 재협상은 자신의 지지기반인 백인 노동자 계층에 상당히 소구력을 가질 수 있다.
의도와는 별개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한국을 먹잇감으로 삼는 듯한 모습은 상당히 위험한 신호로 보인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2일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 논의 내용을 공개하며 “한국은 사실 중국의 일부였다”고 발언하는 등 한국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바 있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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