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The) 친절한 기자들]
국회연설 중 자신의 골프장 홍보한 트럼프
미국 내 언론 비난 여론에 직면 “엽기적이다”
한국 빌딩 칭찬…UN 총회서도 자기 부동산 언급
이전에도 공식석상서 자기 재산 홍보 열올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8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미 대통령의 연설은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에 이어 24년 만이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제가 무슨 말씀을 드릴지 아실 것입니다. 올해 US 오픈은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에 있는 트럼프 골프장에서 열렸습니다.”
8일 국회 연설에 나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강력한 한미 동맹과 한국이 성취한 정치·경제적 성취를 칭송하던 중 뜬금없이 자기 소유의 골프장에서 열렸던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대회를 언급했습니다. 연설을 듣기 위해 배석한 국회의원들 중 일부 의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기도 했는데요. 그는 “한국의 박성현 선수가 사상 최초로 신인 세계랭킹 1위를 차지했다”며 “세계 4대 골프 선수들이 모두 한국 출신이다. 축하한다. 이건 대단한 일이다”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습니다. 그제야 의원들은 큰 박수를 치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환호를 보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 US오픈 당시 박성현 선수의 활약상을 자신의 트위터에 생중계할 정도로 큰 감동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박성현 선수가 선두를 차지하고 나선 7월17일 오전 6시, 그는 “수십 년 만에 신인 선수가 공동 선두를 차지하고 있다. 너무 재미있다”고 트위터에 글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박성현 선수가 우승 트로피를 차지하자 축하 글도 남겼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발언이 단순히 한국의 여성 골프 선수를 칭찬하기 위한 것이었을까요?
지난 7월 17일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박성현 선수 칭찬 글. 트위터 갈무리
■세계 18개 골프장 소유한 트럼프 발언…“엽기적이다” 비판
“엽기적이다.”
미국 <엠에스엔비씨(MSNBC)> 방송의 아침 뉴스 프로그램 ‘모닝 조’는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국회 연설에서 자신의 골프장을 언급한 것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뉴스 진행자인 조 스카버러(54)는 “나를 포함한 공화당원들은 클린턴 대통령이 백악관을 떠난 뒤 공공사업들을 이용해 사익을 추구한 것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었다”며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재임 중에 (자기 소유의 골프장) 홍보를 하고 있다”고 날 선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이어 스카버러가 “그의 연설은 엽기적”이라고 말하자 공동 진행자인 미카 브레진스키(50)도 “엽기적이었다”고 맞장구를 쳤습니다. 트럼프가 한국 국회 연설이라는 공식 석상에서 자기 소유 골프장을 간접 홍보한 것이 이전에 클린턴 대통령을 비판한 공화당의 모습과 배치된다는 지적입니다.
MSNBC 방송의 아침 뉴스쇼 ‘모닝 조’. 연합뉴스
<시엔엔(CNN)>도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제동을 걸었습니다. 시엔엔은 뉴스를 통해 트럼프가 취임 뒤 공식 석상에서 자신의 이름이 내걸린 호텔과 골프장, 카지노 등을 꾸준히 언급했고, 정부 윤리위는 사업가와 대통령이라는 역할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언행을 비판해왔다고 보도했습니다. 트럼프의 이번 홍보 발언이 일회성이 아니라는 지적이지요. <미국공영라디오방송(NPR)> 역시 강하게 비판했는데요.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려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의 골프장 발언은 부적절하다고 평가했습니다. 미국공영라디오방송은 ‘워싱턴의 책임성과 윤리를 위한 시민들(CREW·Citizens for Responsibility and Ethics in Washington)’이라는 시민단체의 조단 리보위츠 국장과 관련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리보위츠 국장은 “트럼프의 해당 발언은 굉장히 실망스러웠다”며 “트럼프가 미국 국민을 위해 일하는지 자신의 사익을 위해 일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트럼프가 소유한 골프장을 들여다보면 이러한 문제 제기는 자연스러운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전 세계에 모두 18개의 골프장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뉴욕과 뉴저지 주에 6개, 플로리다 주에 3개, 캘리포니아 주와 버지니아 주,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각 1개씩 미국에만 12개의 골프장을 갖고 있습니다. 국외에는 스코틀랜드에 2개,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에 2개, 아일랜드에 1개가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공사가 진행 중인 골프장이 있어요.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을 국빈 방문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함께 7일 청와대에서 열린 공식 환영식에 참석해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트럼프의 공식석상 자기 재산 홍보는 또 있었다
“이곳 서울에서는 63빌딩과 롯데월드 타워 같은 멋진 건축물들이 하늘을 수놓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회 연설에서 한국의 고층 빌딩에 대해서도 찬사를 보냈는데요. 조금 의아하시겠지만 이처럼 연설에서 부동산을 언급하는 것 역시 ‘트럼프 스타일의 홍보’랍니다. 그는 롯데월드 타워 인허가 문제가 수차례 제기됐던 사실까지는 미처 몰랐던 모양이에요.
지난 9월 첫 유엔(UN) 총회 연설에 나선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에도 자신이 소유한 건물 ‘트럼프 월드 타워’를 언급했다가 빈축을 샀습니다. 영국의 일간신문 <인디펜던트>는 트럼프의 첫 유엔 총회 연설 인사말을 보도하면서 강하게 비판했는데요. 그는 “나는 길 건너편에 있는 거대한 가능성(트럼프 월드 타워)을 보았다”며 “유엔 건물이 여기 위치한 것이 성공적인 유일한 이유가 그것(트럼프 월드 타워)”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유엔 건물의 가격 상승이 트럼프 월드 타워의 덕분임을 우회적으로 말한 거죠. 트럼프 월드 타워는 72층짜리 건물로 전 세계 유명 인사들이 투숙하고, 각종 영화의 촬영지가 되는 곳입니다.
뉴욕에 있는 트럼프 월드 타워. 위키미디어
<뉴욕타임스>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공적 지위를 이용해 자기 소유 재산을 홍보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자산을 늘리기까지 하고 있다는 보도도 내놨습니다. 이 신문은 “많은 외국 방문객이 트럼프 대통령 소유의 호텔에 투숙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임기 기간 277일 중 95일을 자신이 소유한 시설에 체류했다”고 보도했습니다. 국가의 행정 수반인 대통령의 활동을 위해 사용되는 비용이 다시 대통령의 주머니로 고스란히 들어가는 상황을 지적한 것입니다.
이처럼 트럼프가 자신의 시설에 체류하고 국외에서 사업을 홍보하는 것에 대한 비난 여론은 미국 내에서 높은데요.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앞서 말씀드렸던 시민단체 크류(CREW)에 의해 고발당한 상태입니다. 국회의 동의 없이 외국 기관들로부터 선물과 금전적 이익을 제공받았다는 혐의입니다. 이러한 의혹에 대해 트럼프 쪽은 “일방적인 선물이 아니라 등가교환으로 볼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정당한 경제활동이라는 거죠.
하지만 여전히 많은 미국 국민은 국민을 위해 일해야 할 책무가 있는 대통령의 정당한 경제활동이라는 해명에 쉽게 공감하지 못하는 듯 보입니다.
그런데 혹시, 트럼프 대통령의 이야기를 읽으시면서 떠오르는 어떤 꼼꼼한 분이 있지 않나요?
이재호 기자 p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