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의 수석보좌관 도미닉 커밍스가 지난 23일(현지시각) 런던 자택에 돌아가고 있다. 그는 지난 3~4월 봉쇄령을 어겼다는 논란이 일면서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 AP 연합뉴스
영국 정부의 ‘브렉시트 전략’을 주도하는 등 내각 실세로 알려진 보리슨 존슨 영국 총리의 수석보좌관이 코로나19 봉쇄령을 위반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사퇴 요구를 받고 있다. 영국은 코로나19 대응 조직의 핵심과학자 등이 봉쇄령 위반 의혹으로 사퇴하는 등 최근 고위직의 사퇴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23일(현지시각) <가디언>과 <비비시>(BBC) 등 영국 언론에 따르면, 도미닉 커밍스 영국 총리 수석보좌관은 지난 3월31일 부인, 아이와 함께 런던 자택에서 북쪽으로 264마일(425㎞) 떨어진 더럼으로 갔다. 더럼에는 커밍스의 부모와 친척들이 살고 있다.
커밍스는 존슨 총리가 지난 3월27일 코로나19 확진 사실을 밝힌 직후 코로나19 의심 증세를 느꼈다고 한다. 당시 총리실은 커밍스가 자가격리에 들어갔다고 밝혔지만, 더럼에 있다는 사실은 공개하지 않았다. 이후 커밍스는 2주간 격리를 거쳐 지난 4월14일 업무에 복귀했다.
영국 언론과 야당은 커밍스가 3월23일 영국 정부가 전국에 내린 코로나19 봉쇄령을 어겼다고 주장한다. 당시 영국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반드시 본인 집에 머물고, 다른 가족 구성원을 방문해서는 안된다”는 규정 등을 내놨다.
영국 정부는 커밍스가 더럼으로 이동한 것은 인정하면서도 불가피했다고 주장한다. “그의 아내 역시 코로나19 의심 증상을 보여, 아이가 제대로 보살핌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내용을 처음 보도한 <가디언> 등 영국 언론은 “존슨 정부는 친척집에 가지 말고 본인 집에 머무를 것을 강조했다”며 지난 4월 스코틀랜드 최고 의료책임자가 별장에 갔다는 이유로 사퇴한 것과 다르다며 비판하고 있다.
야권은 존슨 정부 ‘실세’인 커밍스가 봉쇄령을 위반했다며 사퇴 공세에 나섰다. 제1야당인 노동당은 “영국인은 일반 국민과 커밍스를 위한 규정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의 이언 블랙포드 하원 원내대표는 커밍스를 해임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자유민주당(LD)도 정부 지침을 어겼다면 사퇴해야 한다고 논평했다.
커밍스는 이날 취재진에 사퇴 가능성과 관련해 “결코 그럴 일은 없다”고 말했다. 영국 정부도 “커밍스의 행동은 코로나19 지침에 부합하는 것이었다”고 밝혔고, 그랜트 섑스 교통부 장관은 “존슨 총리가 커밍스 보좌관에게 전적인 지지를 보냈다”고 말했다.
영국은 최근 봉쇄령을 어긴 고위 공직자가 잇따라 사퇴하고 있다. 영국 정부의 보건 자문 역할을 하는 닐 퍼거슨 임페리얼 칼리지 교수가 이동 제한 지침을 어기고 자택에서 연인 관계인 기혼 여성을 만난 사실이 드러나 자문직에서 물러났고, 지난달 6일에는 스코틀랜드 최고 의료책임자인 캐서린 칼더우드 박사가 자택에서 1시간가량 떨어진 별장에 두 차례 방문한 사실이 드러나 사임했다.
커밍스는 영국 언론이 ‘막후 조종자’로 표현할 만큼 정부의 막강한 실세로 알려진 인물이다. 2016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국민투표 당시 유럽연합 탈퇴 진영 전략을 책임졌던 커밍스는 존슨 내각에서 브렉시트를 비롯한 핵심 전략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 4월 말에는 정부에 코로나19 대응을 조언하는 과학자문그룹 회의에 여러 차례 참석한 것으로 드러나, 자문그룹의 정치적 독립성을 해쳤다는 비판도 받았다.
최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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