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수위를 다투는 글로벌 자동차 업체인 도요타는 지난 4월 전기차 첫 양산형 모델인 ‘비지포엑스’(bZ4X)를 출시했다. 도요타 누리집 갈무리.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을 놓고 조 바이든 행정부를 상대로 적극 대응에 나선 한국과 달리, 일본의 움직임은 조용한 편이다. 전기차(EV) 시장에서 한국에 견줘 후발 주자여서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고, 법안 심의 과정에서 핵심 요구사항을 관철시켰기 때문이다.
북미에서 생산한 전기차(EV)·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PHEV)에만 최대 7500달러(약 100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하겠다는 ‘인플레 감축법’이 지난 16일 발효된 뒤, 일본 정부는 별다른 입장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검토를 비롯해 정부 합동대표단과 여야 정치인들이 잇따라 미국을 방문하고 있는 한국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일본의 전기차 생산·판매는 한국보다 뒤쳐져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으로 전해진다. 세계 수위를 다투는 글로벌 자동차 업체인 도요타는 지난 4월 전기차 첫 양산형 모델인 ‘비지포엑스’(bZ4X)를 출시해 미국 시장에도 내놨다. 하지만 두 달도 되지 않아 바퀴 볼트가 풀리는 현상이 발견돼 리콜 대상이 됐다. 전기차 시장에서 본격 도전도 하기 전에 판매 중단이라는 ‘굴욕’을 겪은 셈이다. 현재도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해 환불에 나섰다. 이에 반해 현대·기아차는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테슬라에 이어 점유율 2위를 기록 중이다.
미국에서 판매 중인 도요타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인 프리우스 프라임 등 일부 차종은 ‘인플레 감축법’이 시행되면 보조금 대상에서 빠지게 된다. 도요타 입장에선 이 법 시행이 아니더라도 어차피 예상된 피해였다. 미국에선 전기차·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 등 한 업체가 누적으로 20만대를 판매하면 보조금이 축소·폐지된다. 미국의 테슬라와 제너럴모터스(GM)도 상한선을 넘어 보조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도요타는 2021년까지 18만3000대를 팔아, 올해 상한선에 닿게 된다. 오히려 이 법을 통해 보조금 지급 대상에 20만대 누적 판매조항이 삭제돼 테슬라, 지엠뿐만 아니라 도요타에겐 새 기회가 생겼다. 지엠·포드·스텔란티스·도요타 등 4개 회사는 공동으로 지난 6월 20만대 제한을 없애달라는 서한을 미 의회 유력 의원들에게 제출한 바 있다.
미국 ‘인플레 감축법’ 시행 뒤 일본 자동차 업체 중에서는 2010년부터 미국에서 생산하고 있는 닛산의 전기차 ‘리프’가 보조금 혜택을 계속 받게 된다. 닛산 누리집 갈무리
일본 자동차 업체 등이 강하게 반대했던 ‘노조가 있는 기업이 만든 차’에 보조금을 추가로 주겠다는 조항도 법안에서 빠졌다. 일본의 도요타·혼다·닛산·마쓰다·스바루와 폭스바겐, 볼보, 현대·기아차 등은 이 조항이 검토되자 철회해 달라고 요구하는 서한을 지난해부터 미 의회 의원들에게 보냈다. 일본 자동차 업체 중에서는 2010년부터 미국에서 생산하고 있는 닛산의 전기차 ‘리프’가 보조금 혜택을 계속 받게 된다.
일본에선 이 법 시행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지통신>은 “하이브리드차에 강점을 가진 일본은 전기차에선 뒤처졌다. 앞서가는 미국, 유럽이나 한국 기업이 새 법에 대응을 하는 동안 생산과 조달 등을 미국으로 신속하게 전환하면, 반전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도요타와 혼다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도요타는 지난달 31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 짓고 있는 전기차 등 배터리 공장에 추가로 3250억엔(3조1600억엔)을 더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혼다도 지난달 29일 한국의 엘지(LG)에너지솔루션과 2025년 가동을 목표로 미국에 전기차 배터리 합작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도쿄/김소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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