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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특파원리포트] 일본 축구의 힘 ‘어린이클럽’

등록 2006-07-10 14:37수정 2006-07-10 17:12

어린이 축구대회에 출전해 경기를 하고 있는 기자의 아들.
어린이 축구대회에 출전해 경기를 하고 있는 기자의 아들.
일본 축구계는 요즘 우울하다. 일본 대표팀의 ‘얼굴’인 나카타 히데토시(29)의 지난 3일 전격 은퇴 선언은 상당한 충격을 안겼다. 팀내 불화의 원인이기도 했지만, 팀의 중추인 나카타의 빈 자리는 매우 커 보인다. 일본팀이 독일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저조한 성적으로 탈락한 후유증을 딛고 새 출발을 모색하고 있는 터에, 이런 일까지 겹쳐 일본 축구의 미래를 걱정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게다가 이번 대표팀 엔트리 23명 가운데 20대 초반이 거의 없다. 4년 뒤의 남아공 월드컵 대표팀을 꾸리는 데도 적잖은 고민이 예상된다.

다가올 월드컵이나 국가대항 경기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이런 우려는 이해하고도 남는다. 그렇지만 조금만 시야를 넓히면, 일본 축구가 착실한 발전을 거듭해와 미래가 그다지 어둡지 않다는 점은 쉽게 알 수 있다.

현재 일본 프로축구 제이(J)리그 1·2부에 소속된 팀은 31개다. 10개 팀으로 리그가 출범했던 1993년의 3배가 넘는다. 관중 수도 꾸준한 증가세다. 지난해는 770만여명으로, 2004년에 비해 130만명 가까이나 늘었다. 국가간 경기의 성적과 무관하게 국내 리그는 매우 탄탄하게 운영되고 있다. 제이리그를 살리자는 캠페인성 구호가 나올 이유가 없다. 제이리그 승격을 꿈꾸며, 음지에서 실력을 갈고 닦는 축구 클럽도 몇십개나 된다.

21년 역사를 가진 ‘FC오지마’

일본 축구의 저력을 평가할 때 더 주목할 부분은 활기에 넘쳐나는 어린이 축구 클럽이다. 동네마다 결성된 어린이 클럽은 튼실하게 뿌리내린 상태다. 초등학교 1·4학년인 우리 애들이 가입한 클럽을 예로 들어 보겠다.

21년 역사를 가진 이 클럽의 이름은 ‘FC오지마’다. 오지마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도쿄 고토구(강동구)의 동네 이름이다. 이 클럽에는 미취학생과 초등학생 72명이 회원으로 뛰고 있다.


학교 수업이 없는 토·일요일이나 경축일에는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인근 초등학교에서 연습을 한다. 큰 애는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 작은 애는 오전 11시30분 정도까지 땀을 흘린다. 기초체력 단련을 위한 달리기를 비롯해, 슈팅·드리블·패스 등 기본기를 익히고 편을 갈라 연습경기를 한다. 비가 오는 날이면, 빗물을 피할 수 있는 시내 고속도로 아래의 공터가 연습장으로 바뀐다. 큰 애는 매주 화요일 저녁 7시부터 2시간 동안 야간연습도 한다. 이 때는 라이트를 켜주는 학교의 운동장에 몇개 클럽의 아이들이 모여 함께 연습을 한다. 이들 학교는 애들이 마음놓고 연습할 수 있도록 교실 건물 바깥에 그물망을 쳐 놓았다. 4학년 이상에선 클럽 대항 경기도 자주 열린다. 그럴 때면 애들은 경기장까지 자전거를 40분 가량 타고 간다. 몇 경기를 치른 뒤 오후 늦게 파김치가 돼 돌아온다.

축구 과외활동 비용 월 1만7천원, 초등생 미만은 무료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연습시합을 벌이는 2·3학년 어린이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연습시합을 벌이는 2·3학년 어린이들.

이런 엄청난 ‘과외활동’에 드는 비용은 고작 월 2천엔(약 1만7천원)에 지나지 않는다. 초등학생 미만은 월회비가 무료다. 동네 주민과 학부모들의 전폭적인 지원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주민과 학부모 가운데 축구를 꽤 하는 사람들이 자격을 따서 클럽 코치를 맡는다. 이들은 말 그대로 평범한 샐러리맨이다. 유일하게 쉬는 시간인 주말을 아이들 축구에 바친다. 아이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새로운 연습방법도 끊임없이 궁리해온다. 반응이 좋으면 기뻐하고, 썰렁하면 ’의기소침’하며 ’다음주에는…’하고 다짐하곤 한다. 클럽 출신 고교생들도 미취학 아동들의 지도를 거든다. 멀리서 친선경기가 있을 때면 학부모들이 차량을 동원해 애들을 실어나른다. 월급 한푼 나오지 않고, 여가 시간의 대부분을 잡아먹는다. 이들의 헌신이 없으면 클럽은 굴러갈 수가 없다. 우리 부부는 외국인이고 바쁘다는 이유로 ‘의무’를 면제받을 때가 잦다. 미안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물론 프로축구팀이 운영하는 어린이 축구교실들도 있다. 우리 집에서 불과 100m 떨어진 곳에 FC도쿄의 잔디구장이 있어, 이곳에서 축구교실을 운영한다. 처음엔 ‘폼나게’ 축구를 시키겠다며 신청을 했으나, 대기자가 너무 많아 1년을 기다린 뒤 포기했다. 이곳은 조금 비싸다. 일주일에 한번 60~80분 뛰는 데 월회비 5천여엔을 내야 한다.

‘풀뿌리 클럽’ 도쿄에만 626개, 초등 선수 2만7900명

클럽에 다니는 애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으면 대부분 축구선수라고 대답한다. 우리 애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그런 싹이 보이는 애들이 많은 것은 아니다. 부모들 또한 대단한 기대를 하는 것 같지도 않다. 우리 애들도 부모를 닮아서인지 달리기나 발재간 등의 타고난 소질은 없어 보인다. 단지 애들이 축구를 좋아하기 때문에 마음껏 하게끔 하고 있을 따름이다. 가끔은 프로선수로 키울 것도 아닌데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시간과 정성을 쏟는 일본 부모들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프로축구팀 부설이 아닌, FC오지마 같은 풀뿌리 클럽은 고토구에만 13개가 있다. 도쿄도 축구협회의 홈페이지를 보니, 등록된 팀이 626개, 초등학생 선수가 2만7900여명이다. 일본 전역에는 어린이 클럽이 몇천개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어릴 때부터 축구를 즐기다 보면 뛰어난 선수는 자연스레 나오기 마련이다. 이들 클럽에서 일본 축구의 미래를 짊어질 ‘무서운’ 아이들이 자라나고 있는 셈이다.

축구 자체를 즐기는 ‘무서운 아이들’이 자라난다

월드컵 잔치가 끝나면 늘 나오는 얘기가 있다. 우리 대표팀의 16강 진출이 좌절된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기본기가 본능처럼 몸에 붙은 뛰어난 선수를 키우기 위해선 어린이 축구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당위론이다. 나라를 빛낼 선수들의 양성은 물론 중요한 일이다.

더 관심을 가져야 할 대목은 축구를 더욱 가깝게 즐기는 것이다. 보고 열광적 응원을 벌이는 데서 직접 몸으로 즐기는 축구로 옮겨가야 한다. 이를 위해 정말 필요한 것이 어린이 클럽이라고 생각한다. 공 하나와 빈 터만 있으면 축구를 할 수는 있다. 웬만한 남자치고 동네축구 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늘 접하고 체계적으로 배우면 축구를 즐기는 차원이 달라질 것이다. 우리 애도 클럽 활동을 통해 체력과 기량이 몰라보게 나아졌다. 한국팀이 탈락한 뒤에도 월드컵 경기를 보기 위해 새벽에 일어날 만큼 축구에 대한 애정도 한층 늘어났다. 커서 국가대표나 프로 선수가 되지 못해도 아마추어로 뛸 수 있고, 어린이 클럽 코치로 봉사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평생의 낙이 될 수 있는 스포츠 하나쯤에 빠져드는 것은 매력있는 일이란 생각이 든다.

한국가면 애들 축구 어떻게 하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드리블 연습을 하는 4~5학년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드리블 연습을 하는 4~5학년들

특파원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아, 한국에 돌아가면 애들 축구를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이 가끔씩 든다. 집 부근에서 부담없이 보낼 수 있는 축구클럽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더욱이 요즘같은 경쟁시대에 주말마다 애들을 운동장에 풀어놓는 ‘만용’을 부릴 수 있을지도 의심스럽다. 이회택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이 얼마전 독일에서 한국 기자들에게 한 얘기가 참으로 마음에 와 닿는다. “10년 전부터 어린이 축구교실을 무료로 운영하고 있다. 아이들이 운동하러 왔다가도 과외한다며 돌아간다. 그럴 때는 미친다.” 글. 사진 도쿄/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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