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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왜냐면

교사의 도덕적·전문적 권위를 다시 세워야 한다

등록 2023-07-24 19:01수정 2023-07-25 02:39

[왜냐면] 황폐화된 교실을 어찌할까?
지난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 벽에 3학년 학생이 추모의 쪽지를 붙이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지난 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 벽에 3학년 학생이 추모의 쪽지를 붙이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박병기 | 한국교원대 교수·전 교육부 민주시민교육자문위원장

기후위기로 인한 이른바 ‘극한호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50여 명의 목숨이 스러지는 와중에 터져 나온 교사들의 처절한 목소리로 온 나라가 뒤숭숭하다.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학생에게 폭행당한 선생님과, 학부모의 민원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세상을 접은 것으로 전해진 초등교사 소식이 마음 깊은 곳을 후비며 다가선다. 근무지가 충북 오송 지하차도와 멀지 않고, 유치원과 초·중등교사를 함께 양성해내는 대학이어서 더 깊은 공감과 슬픔, 절망으로 스미는지도 모르겠다. 잠시 눈을 감고 가신 분들의 명복을 빌어보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무력감이 아득한 절망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어쩌다가 우리 학교가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돌이켜보면 19세기 말 대한제국기에 처음 기틀이 마련된 전 국민 대상의 학교교육은 일제강점기의 왜곡을 극복해내면서 20세기 중반 이후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끄는 기반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중심 역할을 해냈던 교사들은 산업 확장기에 다른 직업과 비교해 박봉을 받기도 했고, 군인 출신 대통령의 일방적인 지시사항을 전달하는 일에 마음을 모아 저항하다가 해직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그렇게 함께 견뎌낸 우리의 20세기는 분명 세계사적으로 평가받을 만한 성공의 역사였다.

그럼에도 학교를 중심으로 하는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복잡하고 다차원적인 문제들은 여전하다.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주로 대입제도를 중심으로 하는 교육개혁을 내세우지만, 끝내 실패할 수밖에 없는 블랙홀 같은 취급을 받는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교육문제는 건드리지 않는 게 낫다는 불문율이 이전 정권에서부터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교육받아야만 하는 교육적 존재이고, 그 교육의 중심이 가정에서 학교로 옮겨진 근대 이후의 상황 속에서는 학교와 관련을 맺지 않고는 살아가기 어렵게 되었다. 그 학교의 형태나 목적, 목표 등에 관한 논의는 시대적 맥락과 사회구조의 전환에 따라 다양해질 수 있고 또 다양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지만 누구도 쉽게 학교를 대체할 만한 대안을 내놓기는 어려운 상황임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대안학교도 다른 형태의 학교이고, 홈스쿨링으로 불리는 가정 안의 학교도 학교의 역할과 기능을 부분적으로만 대신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 어려운 사정에도 우리 학교는 그동안 몇 가지 장점으로 외부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특히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한국교육에 대한 적극적인 평가는 인상적이었다. 그가 우리 교육 상황에 대해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었는지는 의문이지만, 최소한 무너진 미국의 공교육을 살릴 가능성을 우리 학교에서 보았던 것만은 확실하다. 특히 그는 한국의 학교에 우수한 교사들이 근무하고 있다는 것을 가장 중요한 성공요인으로 꼽았다. 실제로 공립과 사립을 포괄하는 공교육 체제 속 교사들의 뛰어난 지적 역량은 그들의 내신성적이나 수능점수만으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우수한 사람들이 어려운 임용과정을 거쳐 선택한 교직에 대한 만족감이 급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여러 원인들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하고도 결정적인 요인은 교사로서의 자존감 손상이다. 모든 직업이 다 그렇지만, 교직은 단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만으로는 견디기 힘들다. 만나는 학생을 보다 나은 인격과 역량을 가진 존재로 만들어주는 데 기여하는 것이 교직의 중심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런 노력이 곧장 성과로 나타나는 경우는 많지 않아 때로 좌절할 수도 있지만, 동료들과 학부모, 사회 전반의 지지하는 시선 속에서 하루하루 수업을 하고 어려운 학생 지도에 나서고 있는 교사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시선이 급속도로 달라지기 시작한 것이다.

교사들을 자신의 욕구불만을 해소하는 대상으로 취급하는 학부모가 늘어나고 있고, 자신을 중심으로 학급이 돌아가지 않으면 담임에게 거침없는 욕설로 표출하는 아이들 또한 많아지고 있다. 언론을 비롯한 사회 전반의 시선도 교사에게는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인 경우가 많았다. 교사는 말 그대로 사면초가의 위험 상황에 상시적으로 노출되는 위험한 직업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그들을 지켜줄 수 있는 최소한의 법적 장치조차 너무 멀거나 심지어 적대적인 장치로 작동하기도 한다. 이것이 우리 교사들을 절망으로 내몰고 있는 핵심 요인이고 배경임을 이번 비극적인 사태를 계기로 삼아서라도 꼭 깨우칠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런 다음에는 어떤 대안을 모색할 수 있을까? 모두가 함께 이 물음을 화두로 붙들어야 하겠지만, 우선적으로 찾아야 하는 대안을 두 가지만 제시하고자 한다. 하나는 교사 자신의 전문적이고 도덕적인 권위 회복 노력이고, 다른 하나는 교직이 지니는 특수성을 반영한 법적 장치의 제도화를 전제로 하는 학생지도 권한의 적극적인 회복 노력이다. 순서는 후자가 앞서야 하고, 시급히 행정부와 입법부가 나서서 학교폭력 같은 법적인 업무로부터 교사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시행해야 한다. 이런 대안과 함께 교사를 중심으로 학부모와 언론 등이 협력해서, 교사의 도덕적 권위와 전문적 권위를 다시 세우는 노력을 해가야 한다.

교육은 권위를 전제로 해야만 비로소 성립할 수 있는 도덕적이고 전문적인 과업이다. 우리가 일제강점기와 군부독재기를 거치면서 경험했던 교사의 폭력적 권위는 마땅히 극복의 대상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도덕적 권위와 전문적 권위 없이 교육의 장에 나서는 것은 최소한의 장비도 없이 전장에 나서는 것과 같다. 우리가 목욕물을 버리려다가 아기까지 버리는 과오를 범한 것은 아닌지 깊이 성찰해보아야 하는 지점이다. 교사의 전문적 권위 확보를 위한 일차적인 책임은 필자와 같이 교사양성과 연수를 담당하는 대학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있음을 새삼스럽게 확인하면서, 이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우리 시민사회의 자각과 연대에 대한 희망을 버리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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