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조합원들이 지난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네거리에서 ‘노조법·방송법 즉각 공포! 거부권 저지! 민주노총 총파업·총력투쟁대회’를 열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왜냐면] 나원준│경북대 교수(경제학)
경제학자 앨버트 허시먼에 따르면 퇴보하는 조직의 구성원은 조직을 이탈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조직에 항의하고 변화를 촉구하는 길이 더 건설적이기 마련이다. 구성원들이 항의하지 않고 이탈이나 수동적인 태만을 선택하는 조직은 쇠퇴한다. 조직이 기업이고 구성원이 노동자라면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단결해 사측 결정에 발언할 수 있게끔 조직화와 단체행동에 자의적인 한계를 두지 않는 편이 낫다.
노동조합의 그와 같은 긍정적인 경제효과는 기실 여러 실증 연구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다. 예컨대 2020년 영국 왕립경제학회에서 발표된 노르웨이 자료 연구에서는 노동조합 조직률이 1%포인트 오르면 기업 생산성이 1.7~1.8% 상승한다는 결론이 보고되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9년 벨기에 자료 연구도 단체교섭이 관련 당사자들에게 두루 유익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사업체패널 데이터를 활용한 국내 연구 역시 노동조합의 집단적 의사표현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확인했다.
이렇게 노동조합과 단체교섭은 경제 전체 관점에서는 이득이지만, 이윤이 줄고 사측 전횡이 제한될까 걱정하는 재벌과 보수정치로부터는 공격의 대상이 된다. 대자본의 돈벌이에 조금이라도 불리할 성싶으면 제도화부터 차단하고 보는 것이 한국 부자들과 기득권층의 수준인 셈이다. 그리고 그것이 최근 노란봉투법에 그들이 그토록 완강하게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요구하는 배경이다.
그런 그들이 조급해서였을까. 심지어 최근에는 노란봉투법의 경제효과 분석에 시장원리주의 끝판왕인 ‘동태일반균형’ 모형까지 출동했다. 보수매체들이 홍보한 어느 사설 업체의 주장을 보면 노란봉투법은 경제에 큰 타격을 입힌다고 한다. 그런데 주장의 근거는 직접 확인이 불가능하다. 암상자 속에서 계산된 결과니 믿으란다. 그렇다면 가령 개별 조합원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묻지 못하게 하는 내용이 이번 개정에 포함되었다면 국민소득이 추가로 얼마나 더 줄어들지 따질 수 있는가. 3조 제외하고 2조 개정만의 순수 효과는 어떤가. 그런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애초에 연구 설계가 잘못된 것이다.
동태일반균형 모형 자체가 가진 난점도 있다. 그 방법론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극단적 가정들에 기초해 있어 가장 현실적이어야 할 정책분석에는 적합성이 떨어진다. 노벨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폴 로머가 오늘날 경제학이 잘못된 원인을 그 방법론에서 찾았던 것도 그런 이유다. 학문적으로 정직한 연구자라면 동태일반균형 모형의 결과에 겸허해야 한다. 그럼에도 매체들은 검증도 안 거친 과도한 주장을 앞세워 노란봉투법을 좌절시키려 든다. 혹세무민이다.
노란봉투법이 경제를 망친다는 거짓말은 중단되어야 한다. 정부는 노조법 개정을 가로막는 무책임한 협박을 멈추어야 옳다. 이 정도의 변화조차 가로막힌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절망해야 하는가. 국제기준 언급할 것도 없이 이 나라는 미치게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이 겨울 노란봉투법과 함께, 차별받는 노동자들과 함께, 민심이 다시 광장에 나서는 것을 정부는 각오해야 할 것이다.
“을들이 일어선다. 노동조합을 만든다. 이대로 살 수 없어 주먹 불끈 쥐고 아스팔트 위에 선다.”(정혜경, ‘을들의 저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