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30일 경기도청에서 간담회를 하기 직전 악수를 하고 있는 이재명 경기지사와 이낙연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 연합뉴스 자료사진
대통령 선거 본선보다 당내 경선이 더 치열한 것은 당연하다. ‘남’한테 지는 것보다 ‘우리 편’한테 지는 것이 더 견디기 어렵다.
경선에서 지면 “내가 후보가 안 됐으니 이제 우리가 대선에서 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신이 인간의 뇌 구조를 그렇게 만들었다.
파란만장한 경선이 많았다. 1970년 신민당 경선에서 김대중 후보는 1차 투표에서 2위를 차지한 뒤 3위 이철승 후보의 지원을 받아 결선에서 김영삼 후보를 꺾었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는 ‘광주의 기적’으로 승기를 잡았다. 다급해진 이인제 후보가 노무현 후보 장인의 좌익 활동을 공격했지만,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란 말이냐”는 노무현 후보의 반격에 침몰했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은 치열한 경쟁과 깨끗한 승복의 전설로 남았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10년을 굶어서였을까? 당시 이명박-박근혜 양쪽 참모들의 표정은 하이에나를 닮았었다. 당이 거의 반 토막 났다.
한나라당에는 노련한 ‘스핀 닥터’들이 있었다. 이들은 밥그릇 싸움을 노선 투쟁으로 승화시켰다. 이명박 후보의 손에 ‘실용 보수’, 박근혜 후보의 손에 ‘정통 보수’의 깃발을 쥐여줬다. ‘두 대의 기관차론’이 만들어졌다.
양쪽 캠프는 상대 후보의 비리 의혹을 직접 폭로하지 않았다. 관련 자료를 언론사에 제보했다.
‘치열하지만 치사하지는 않은’ 경선이 연출됐다. 그렇게 2007년과 2012년 대선을 잇달아 이겼다. 두 대통령의 비리 의혹이 사실로 밝혀진 것은 먼 훗날의 일이었다.
2012년 민주통합당 전당대회장에는 물병이 날아다녔다. 손학규 후보 지지 당원들이 모바일 표심에 불만을 터뜨린 것이다. 민주통합당은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했다. 문재인 후보는 졌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경선이 갈수록 지저분해지고 있다. ‘이재명 1강’ 구도에서 ‘이재명-이낙연 양강’ 구도로 바뀐 것은 좋은 일이다. 경선 결과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만큼 경선 흥행 효과가 커질 수 있다.
그런데 싸움이 너무 유치하다. 노선 투쟁은 간 곳이 없고 상대 후보 인신공격에 몰두하고 있다. 17년 전 노무현 대통령 탄핵 투표를 어떻게 했는지 따지는 것이 지금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영남-호남 지역 갈등을 당내 경선에 이용해 먹으려는 의도는 실망스러움을 넘어서 괘씸하기까지 하다.
이재명 경기지사나 이낙연 전 당대표나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정치인들이었던가? 2017년 대선 후보 경선에 나섰던 내공과 수도권 도백의 실력은 어디로 갔을까? 5선 국회의원, 국무총리, 당대표의 경륜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이상민 선거관리위원장이 “퇴행적이고 자해적”이라고 경고했다. 정말로 그렇다. 2007년 한나라당보다 훨씬 못하다.
양쪽을 돕는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김남국, 김영진, 박광온, 박성준, 박찬대, 박홍근, 설훈, 윤영찬, 최인호, 홍익표 의원 등이 치고받고 싸운다. 도대체 누가 누구 편인지 한번 맞혀 보시라. 정치부 기자들도 잘 모른다.
2007년 이명박-박근혜 후보 경선이 격렬했던 것은 대통령 자리가 바로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나라당 후보가 되면 다음 대통령 당선은 틀림없다고 볼 만한 상황이었다.
궁금하다. 지금 이재명 지사와 이낙연 전 대표는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되기만 하면 내년 대선에서 이긴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진짜로 그럴까?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 직무 긍정 평가가 조금 올라갔다. 코로나 4차 대유행 효과라고 봐야 한다. 정권유지론보다 정권교체론이 여전히 높다. 착각하면 안 된다.
경선에서 이긴다고 치자. 그다음에는 도대체 어떻게 하려는 것일까? 대선 후보는 벼슬이 아니다. 대선에서 지면 아무것도 아니다.
누가 후보가 되든 어차피 경선 캠프를 해체하고 본선 캠프를 다시 짜야 한다. 강을 건너면 뗏목을 버려야 한다. 뗏목으로 바다를 건널 수는 없는 일이다. 다른 후보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지 못하면 대선을 이길 수 없다.
우리 유권자는 ‘떡 줄 사람은 생각지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정치인을 가장 싫어한다.
최근 야당 지지도가 하락세인 이유가 뭘까? 4월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 압승으로 오만해졌기 때문이다. 내년 3월 대선을 무조건 이긴다고 보고 후보가 난립하기 때문이다.
오만의 대가는 추락이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이번에는 여당이 당한다.
성한용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