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집권 확률이 오르는 것에 비례해 정의당과 심상정 후보를 향한 회유와 읍소, 사퇴 압박은 갈수록 거세질 것이다. 그러나 탑처럼 굳건하긴 힘들어도, 비틀거리는 걸음으로라도 제 갈 길을 가는 것. 그것이 일하는 사람,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려는 진보정당의 운명이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이세영 논설위원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로 정죄산(淨罪山, 죄를 씻는 산)을 오르는 단테에게 연옥의 죄인들이 따라붙어 청을 넣는다. 현세에 남은 가족을 만나 연옥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설명하고, 자신의 천국행이 앞당겨질 수 있게 곡진한 노력을 기울이도록 설득해달라는 것이다. <신곡>에 나오는 이 장면은 연옥에서 감내해야 할 죄 씻음의 고통이 죄지은 영혼들의 노력뿐 아니라 산 자들의 도움(기도와 헌금)으로도 얼마든지 경감될 수 있다는 중세 가톨릭의 연옥 신앙이 배경이다.
단테의 연옥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 건 민주 국가의 선거판과 연옥이란 상상 공간에 적잖은 유사성이 존재한다 여겼기 때문이다. 양쪽은 ‘결과의 불확실성’ 이란 차원에서 묘하게 닮아 있다. 연옥에선 각자에게 주어진 정화의 기간이 얼마나 될지 누구도 알 수 없다. 죄의 종류와 경중, 속죄를 위한 의지와 노력, 타인의 조력 여부에 따라 천국으로 가는 문은 일찍 열릴 수도, 기약 없는 기다림을 요구할 수 있다. 선거판 역시 매한가지여서, 그곳엔 완전한 희망도 완전한 절망도 존재하지 않는다. 정세 조건과 주체 역량, 다른 세력과의 제휴 여부에 따라 성공과 실패의 길이 나뉘는 탓이다. 그 불확실성의 시간을 견디는 일은 연옥에 떨어진 영혼들의 하루하루와 마찬가지로 불안과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다.
주요 정당의 대선 후보 공천 절차가 마무리 단계다. 집권 더불어민주당이 10일 이재명 경기지사를 당의 대선 후보로 공식 발표한 데 이어, 12일 끝난 정의당의 대선 후보 결선투표에선 심상정 의원이 후보 자격을 확정 지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홍준표 의원이 경합 중인 국민의힘 경선은 다음달 5일 결과가 나온다. 이후엔 본선 국면이다. 말 그대로 연옥 문이 열리는 것이다. 그러나 연옥 같은 선거판이라도 플레이어들이 져야 할 고통의 몫은 평등하지 않다. 두말할 것 없이 정의당과 심상정이 져야 할 고통의 무게가 가장 클 것이다. 당 지지율부터 참담한 수준이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정의당 지지율은 4%에 그쳤다. 과거의 정파 구도는 약화됐어도, 페미니즘 갈등과 총선 공천 논란, 지도부 성폭력 사태를 거치며 심화된 반목과 불신은 좀체 치유될 기미가 안 보인다. 외부 상황도 좋을 게 없다. 정의당에 한때 원내교섭단체의 꿈까지 꾸게 했던 진보 - 리버럴의 ‘촛불동맹’은 깨진 지 오래다. 여기에 대장동 스캔들이 현실화한 ‘이재명 리스크’로 민주당의 재집권 전망까지 불투명해졌다.
이처럼 모든 조건이 우호적이지 않은 상황에서 정의당이 취할 선택지는 많지 않다. 분명한 건 국민의힘 집권 확률이 오르는 것에 비례해 정의당과 심상정을 향한 회유와 읍소, 사퇴 압박은 갈수록 거세지리란 사실이다. 거기엔 ‘적폐의 부활’이란 공포 서사와 함께, 좋았던 옛 시절의 향수를 자극하는 ‘촛불동맹의 복원’이란 약속이 뒤따를 것이다. 그러나 정의당엔 그 서사와 서약을 물리칠 이유 또한 충분하다. 2019년 ‘조국 사태’와 지난해 위성정당 창당, 올해 초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등에서 보여준 민주당의 모습은 분파 이익의 유지와 확장을 위해서라면 정의라는 명분, 민주주의라는 가치, 진보의 대의 따위는 언제든 실행을 유보할 수 있다는 정치적 모라토리엄 선언과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죄인들의 집요한 하소연에 의식이 산만해진 단테의 정수리 위로 베르길리우스의 호통이 내리꽂힌다. “왜 걸음을 늦추느냐? 지껄이도록 내버려두고 내 뒤를 따르라. 바람이 불어도 꼭대기가 결코 흔들리지 않는 탑처럼 굳건해야 한다.” 베르길리우스의 말은 19 세기 중반 독일 출신 런던 망명객의 손을 거쳐 또 다른 형태로 변주된다. 카를 마르크스가 <자본> 1 권의 1867년 서문 끝자락에 단테를 출전 삼아 언급한 실존의 모토가 그것이다. 여기서 “지껄이도록 내버려두고 내 뒤를 따르라”는 베르길리우스의 진술은 유사한 어감의 새 문장으로 다시 쓰이는데, 자신의 이론 작업을 상황 논리와 ‘다수 의견’ 의 이름으로 무력화하려는 지배세력의 회유와 강압에 맞서, 초로의 마르크스가 전신의 에너지를 끌어모아 눌러 적은 그 문장은 “제 갈 길을 가라, 남이야 뭐라든!” 이다. 탑처럼 굳건하긴 힘들어도, 비틀거리는 걸음으로라도 제 갈 길을 가는 것. 그것이 일하는 사람, 소외된 이들과 함께하려는 진보정당의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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