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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햇발] ‘비선’ 김건희, 최순실보다 위험할 수 있다 / 손원제

등록 2022-01-20 15:05수정 2022-01-21 02:32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부인 김건희씨가 지난해 12월26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자신의 ‘허위 이력’ 의혹과 관련해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부인 김건희씨가 지난해 12월26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자신의 ‘허위 이력’ 의혹과 관련해 입장문을 발표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손원제 | 논설위원

윤석열 국민의힘 대통령후보는 지난해 7월26일 <문화일보>와 한 인터뷰에서 “제 아내는 (저한테) 정치할 거면 가정법원에 가서 이혼도장 찍고 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윤 후보는 이후에도 몇번 “아내가 정치 참여에 아주 질색했다”는 말을 했다.

그런데 바로 그 2주 전인 7월12일 김건희씨는 ‘서울의소리’ 이아무개 기자와 통화하면서 “나는 기자님이 언젠가 제 편 되리라 믿고, 나 진짜 우리 캠프로 데려왔으면 좋겠다. 진짜 우리가 좋은 성과 이루면서 (…) 사회정의 구현하는데 같이 노력해도 좋을 것 같아”라고 했다.

‘우리 캠프’로 영입하고 싶다, 이게 정치 참여에 질색했다고 한 사람이 한 말이 맞나? 물론 남편의 대선 출마가 결정된 뒤 ‘이왕 하기로 한 거 열심히 돕자’고 마음을 바꿔 먹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건 어떤가. 윤 후보는 그 5개월여 뒤인 12월22일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부인은 언제 등판할 계획인가’라는 질문에 “(등판) 계획은 처음부터 없었다. 제 처는 정치하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고 답했다. ‘주요 의사결정이나 정치적 결정에 대해 부인과 상의하나’라는 질문에는 “잘 안 한다. 나하고 그런 얘길 안 하기 때문에 (아내가) 섭섭하게 생각할 때도 있다”고 했다. 여전히 김씨는 정치를 싫어하고 상의도 잘 안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이에 김씨는 이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한테 그런 거(선거운동) 좀 컨셉트, 문자로 보내줘. 내가 이걸 좀 정리해서 우리 캠프에 적용을 좀 하게”, “우리 남편한테도 다른 일정 같은 거 하지 말고, 캠프가 엉망이니까 조금 자문 같은 거 받자, 이렇게 할 거예요. 담주부터 그렇게 할 거야”(7월21일). 정치 현안과 관련해선 ‘김종인이 (총괄선대위원장) 수락했네’라는 물음에 “원래 그 양반이 오고 싶어 했어 계속. 거 봐 누나 말이 다 맞지”(12월3일)라고 정보력을 과시했다. “홍준표 까는 게 슈퍼챗(유튜브 후원금)은 더 많이 나올 거야”(9월15일)라며 경선 경쟁자를 흠집내달라고 사주했다.

이쯤 되면 헷갈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윤 후보는 정말로 부인의 정치적 행보를 몰라서 저런 말을 했나, 아니면 알면서도 거짓말을 한 건가.

몰라서라면 경우의 수는 다시 두가지다. 첫째, 김씨가 이 기자에게 털어놓은 대로 사실상 배후에서 ‘우리 캠프’를 움직이는데도 윤 후보는 몰랐다. 둘째, 김씨가 이 기자에게 자신의 위상을 뻥튀기한 것이다. 남편이 ‘바보’거나 부인이 ‘허언증’이거나다. 그럴 리야 있겠나. 개인적으로는 알면서 거짓말을 한 것일 가능성에 더 무게를 두게 되는 이유다.

윤 후보가 부인 역할에 대해 ‘동문서답’으로 넘긴 건 또 있다. 지난해 10월 ‘개 사과’ 논란 때, 김씨가 에스엔에스(SNS)팀의 막후 지휘자가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윤 후보는 “선거는 ‘패밀리 비즈니스’”라면서도 “제 처는 다른 후보 가족들처럼 그렇게 적극적이지 않아서 오해할 필요 없다”고 피해나갔다.

문제는 윤 후보가 ‘제 아내는 역할이 없다’고 방어막을 친 뒤에서 김씨가 실제로는 영향력을 행사할 때 벌어진다. 이런 인물을 부르는 말이 ‘비선실세’인데, 김씨는 비선실세의 대명사 최순실씨와는 또 다른 특징이 있다. 최씨야 애초 대통령 옆에 있을 자격이 없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비서관을 부리며 청와대를 무단 출입한 게 발각됐고, 국정농단이 들통났다. 최씨의 존재 자체가 국정농단의 증거였던 셈이다. 그러나 김씨는, 만약 윤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늘 청와대에 함께 머물 자격을 부여받을 존재다. 그때도 윤 후보는 계속 지금처럼 ‘아내는 정치를 질색한다’고 주장할 것이고, 국민들은 김씨가 실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가늠조차 못하는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배우자의 대외 활동을 보좌하는 제2부속실을 폐지한다고 ‘비선정치’의 가능성을 봉쇄하지는 못한다. 공개된 ‘비선’ 배우자가 그냥 비선실세보다 더 위험한 이유다.

하물며 김씨는 이 기자에게 특정 언론을 콕 집어 이런 말도 했다. “내가 정권 잡으면 거긴, 하하하, 무사하지 못해.” “얘네들 내가 청와대 가면 전부 감옥에 처넣어 버릴 거다.” 웃으며 한 얘기라 더 오싹하다. 지금이 또 다시 어른거리는 민주공화국의 위기를 차단할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김씨와 윤 후보의 말 사이 간극을 곱씹고, 행간의 진실은 뭔지 묻고 또 캐물어야 한다.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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