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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우크라이나 전쟁도 역사의 ‘잔인한 속임수’될까

등록 2022-06-13 15:40수정 2022-06-14 02:37

중동전쟁이 부른 오일쇼크와 스태그플레이션이 소련에는 역사의 잔인한 속임수였다면, 우크라이나 전쟁이 부르는 에너지·식량난과 40년 만의 물가오름세는 누구에게 ‘역사의 잔인한 속임수’가 될까?

우크라이나 동부 루한스크주에서 러시아군에 점렴당하지 않은 마지막 지역인 리시찬스크에서 한 남성과 아동 둘이 폭탄이 떨어진 지역 근처를 자전거로 빠져나가고 있다. 리시찬스크/로이터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동부 루한스크주에서 러시아군에 점렴당하지 않은 마지막 지역인 리시찬스크에서 한 남성과 아동 둘이 폭탄이 떨어진 지역 근처를 자전거로 빠져나가고 있다. 리시찬스크/로이터 연합뉴스

[정의길의 세계 그리고] 정의길 | 선임기자

우크라이나 전쟁은 50년 전 4차 중동전쟁과 닮은꼴이다.

1973년 10월6일 이집트와 시리아 등 아랍 연합국들이 이스라엘을 선공하며 발발한 4차 중동전쟁은 전후 최대의 경제위기를 촉발했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하자 아랍 산유국들이 미국 등에 대해 석유 금수를 단행해, 석유값은 무려 4배나 급등했다. 이때부터 전세계는 극심한 물가오름세에 경기침체가 동반되는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공황에 준하는 경기침체에 10년 동안 시달렸다.

오일쇼크는 이스라엘을 반대하는 아랍의 연대와 대의가 표면적 이유였으나, 근본 배경은 전후 선진국 자본주의 경제의 종언이었다. 2차대전 뒤 자본주의 경제는 성장과 분배가 동시에 이뤄지던 ‘자본주의의 황금기’였다. 이는 전후 재건이라는 수요가 성장을 이끌고, 2차대전을 야기했던 불평등에 대한 반성과 사회주의의 위협 앞에서 90%를 넘는 최고소득세율 등 적극적 분배 정책을 시행했기 때문이다. 전후 국제질서를 규율한 미국의 패권과 기술·생산·자금력이 윤활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1960년대 중반부터 전후 재건 붐이 종식되고 베트남전 등으로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가중되자, 물가오름세가 심화하고 달러 가치가 하락했다. 미국은 1971년 8월15일 금 1온스를 35달러에 바꿔준다는 금 태환 정책을 정지한다는 선언을 했다. 전후 자본주의 질서였던 브레튼우즈 체제의 종언이었다.

미국의 패권과 자본주의 경제의 위기였던 반면에 소련을 필두로 한 사회주의 진영의 득세로 보였다. 하지만 역사는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다. 미국 등 자본주의 선진국은 석유 등 화석연료를 태워서 지탱하던 산업 구조를 지식산업 중심으로 재편해 대응했다. 중후장대의 제조업을 버리고 금융과 서비스, 첨단산업 중심으로 경제의 효율을 높여가는 계기로 삼았다. 산유국의 오일달러는 금융의 세계화를 촉진해 미국의 금융지배력을 키워줬다. 선진국이 버린 제조업은 한국 등 신흥공업국이 인수하는 등 새로운 자본주의 분업 구조가 형성돼 세계화의 기반이 됐다.

반면 소련은 때마침 터진 시베리아 유전 등 풍부한 석유와 고유가에 취해버렸다. 소련 경제는 이미 1960년대 초반부터 화석연료에 기댄 중공업의 과도화와 비효율에 비틀거렸는데, 자본주의 체제를 강타한 오일쇼크에 착시 현상이 일어났다. 소련은 고유가로 돈과 자원이 늘어나자, 체제 혁신의 필요성을 망각해버렸다. 동유럽 위성국가들의 체제 유지와 자신들의 제3세계 진출에 국력을 낭비했다. 석유값이 하락한 1982년에 접어들자, 누가 벌거벗고 수영을 하고 있었는지 드러났다. 소련은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집권한 1985년부터 개혁과 개방 정책을 실시했으나, 결과적으로 때는 늦어버렸다. 오일쇼크는 소련에는 ‘역사의 잔인한 속임수’였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그 효과는 오일쇼크로 촉발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종언을 배경으로 한다. 이 전쟁 역시 석유 및 식량 가격 급등을 불러서, 40년 만의 물가오름세가 전세계를 엄습하고 있다. 이 전쟁은 2008년 금융위기, 중국을 봉쇄하고자 하는 미국의 공급망 재편으로 인한 신자유주의에 바탕한 세계화의 위축을 재촉하고, 국제 질서와 국제 경제를 진영화 혹은 블록화로 치닫게 하고 있다.

아랍 산유국들의 석유 금수는 미국 등 서방을 겨냥했으나, 장기적으로는 아랍 연대의 붕괴, 사회주의권의 몰락, 서방 경제의 강화로 귀결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시아에 대한 제재와 중국에 대한 봉쇄 강화를 부르고 있으나, 그 피해는 러시아와 중국만 입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일쇼크 전에 미국이 달러를 풀어서 흥청망청했던 것처럼, 우크라이나 전쟁 전에도 미국은 닷컴버블과 2008년 경제위기에 달러를 풀어서 전세계적인 자산버블과 지금의 물가오름세를 촉발시켰다.

미국 등 서방이 이를 청정 대체에너지 개발의 기회로 삼는 등 다시 혁신의 계기로 만들 수 있을지 아직 의문이다. 자원의 러시아와 생산력의 중국을 고립화하고 봉쇄하려는 시도가 미국의 패권 유지로 귀결될지, 아니면 중·러가 주축인 새로운 진영을 탄생시킬지도 알 수 없다. 미국이 이 전쟁을 통해서 러시아를 약화하고 중국을 고립시킨다 해도, 이는 중장기적으로 세계 경제에 큰 부담을 져야 한다.

중동전쟁이 부른 오일쇼크와 스태그플레이션이 소련에는 역사의 잔인한 속임수였다면, 우크라이나 전쟁이 부르는 에너지·식량난과 40년 만의 물가오름세는 누구에게 ‘역사의 잔인한 속임수’가 될까?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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