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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대통령제 우습게 본 대통령의 예고된 비극 [박찬수 칼럼]

등록 2022-07-27 14:26수정 2022-08-01 09:51

굳이 진보정부까진 아니더라도 과거 보수정부의 대통령실 기능과 운영 노하우를 면밀히 살펴보고, 제대로 조직을 짜서 최고의 인재를 배치하길 바란다. 책임총리니 책임장관이니 좋은 말들이 많지만, 결국 대통령제에서 나라의 성패는 대통령과 대통령실 역량에 달려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부처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윤 대통령은 과거 정부와 달리 부처 업무보고를 장관 독대 형식으로 받는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부처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윤 대통령은 과거 정부와 달리 부처 업무보고를 장관 독대 형식으로 받는다. 연합뉴스

박찬수 대기자

윤석열 정부가 대통령실의 민정수석 기능을 없애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경찰국 파동’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 민정수석실이 존속했다면, 31년 전 여야 합의로 정부조직법에서 삭제한 내무부 장관의 ‘치안’ 권한을 굳이 시행령으로 되살리는 무리수를 둘 필요는 없었을 터이다. 1991년 ‘내무부 치안본부’가 사라진 뒤에도 진보-보수 정부 가리지 않고 민정수석실에서 경찰 인사를 손에 쥐었기에, 비교적 원만하게 경찰을 통제할 수 있었다.

윤 대통령은 민정수석실을 ‘밀실에서 불법을 일삼는 음습한 조직’으로 낙인찍고 집권하자마자 곧바로 그 기능을 대통령실에서 없애버렸다. 역대 모든 정부가 민정수석실을 존치한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하지 않았다. 여기엔 민정수석실을 ‘검찰총장을 핍박해서 권력의 목적을 달성하는 나쁜 조직’으로 보는 윤 대통령 개인의 경험이 강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지금도 정부여당은 ‘민정수석실 대신에 행정안전부에 공개적인 경찰 통제장치를 만드는 게 뭐가 문제냐’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민이 뽑은 대통령 직속의 비서실 기능을 음습하다고 비난하면서, 핵심 측근이 앉은 행정안전부 경찰국은 모든 일을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처리할 거라 주장하는 근거를 찾기는 힘들다. 권력이란 본래 최고 핵심보다 약간 떨어진 지점에서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법이다. 그걸 책임지는 측근이 이상민 장관처럼 충성심만 있고 정치적 판단과 소통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인 경우에 문제는 훨씬 심각해진다.

지금이야 이런저런 현안에 가려 있지만 민정수석실이 담당했던 인사검증 기능을 또다른 측근 한동훈 법무부 장관 산하로 옮긴 것도 위태롭긴 마찬가지다. 현 정부의 끊이지 않는 인사 실패는 오랜 경험이 축적된 대통령실 인사검증 기능을 부처로 쪼개서 보낸 것과 관련이 있다. 머지않은 시기에 ‘한동훈 법무부’의 인사검증이 또다른 불필요한 정치적 논란을 낳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대통령 부인을 보좌하는 제2부속실을 졸속으로 없애버린 것도 비슷하다. 왜 일을 이렇게 어렵게 만드는 걸까.

요즘 윤 대통령은 일기예보하듯이 낮은 지지율을 보도하는 언론과 이런저런 사건을 끊임없이 확대해 공격하는 야당에 화가 날 것이다. 출범 100일도 안 지났는데 이렇게 대통령과 정부를 흔드나 생각할 수 있다. 과거 검찰에서 비리 수사할 때는 기다려달라면 기다려주고 협조도 잘됐는데, 각 분야 최고 에이스들이 모였다는 대통령비서실은 왜 그런 것 하나 제대로 조정하지 못하는 걸까, 그래서 검찰 조직이 더 그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가 검찰 수사와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수사는 결과로써 보여주면 되지만 정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국민을 설득하고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엔 정보기관 수장의 대통령 보고는 딱 두 사람만의 독대로 이뤄졌다. 이게 바뀐 건 김대중 정부 들어서다. 김 대통령은 국정원장 보고에 비서실장이나 민정수석을 꼭 배석시켰다. 독대 보고가 무서운 건 보고 내용 때문이 아니다. 둘이 나눈 대화를 갖고 숱한 루머와 추측이 피어오르는 게 훨씬 치명적이다. 윤 대통령은 요즘 부처 업무보고를 장관의 독대 형식으로 받는다. 정부부처 실·국장과 대통령실의 관련 수석·비서관들이 모두 참석했던 역대 정부와는 다르다. ‘형식보다 실용적인 보고를 원하는 대통령의 스타일’이 반영됐다고 한다. 물론 비서실장 또는 수석비서관이 배석하고, 업무보고 후엔 장관이 기자실에 내려와 내용을 설명하곤 한다. 그러나 대통령과 장관의 대화가 있는 그대로 공개될 리는 없다. 핵심 정책에 관해 대통령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부처 공무원들이 인식을 공유하기도 어렵다. 대통령실은 국정 운영의 사령탑이다. 그 사령탑이 어느 방향을 가리키고 어디로 나가려 하는지 부처 공무원은 물론이고 국민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위기 상황에서 대한민국호는 올바른 항해를 할 수 있을까?

반세기 넘게 방대한 기반시설과 기능을 축적해온 대통령실을 하루아침에 용산으로 옮길 때부터 짐작했지만, 윤 대통령은 대통령제와 그 직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게 아닐까 싶다. 굳이 진보정부까진 아니더라도 과거 보수정부의 대통령실 기능과 운영 노하우를 면밀히 살펴보고, 제대로 조직을 짜서 최고의 인재를 배치하길 바란다. 책임총리니 책임장관이니 좋은 말들이 많지만, 결국 대통령제에서 나라의 성패는 대통령과 대통령실 역량에 달려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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