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 398회 임시회 6차 본회의 대정부 질문도중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문자대화를 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성한용ㅣ정치부 선임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여름휴가에 들어갔다. 국민의힘은 지도부 개편에 들어갔다. 시기가 절묘하다.
국민의힘 당헌에는 “대통령에 당선된 당원은 그 임기 동안에는 명예직 이외의 당직을 겸임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다. ‘윤석열 당원’에게는 “국민의힘 정강·정책을 국정에 반영하고 긴밀한 당정 협조 관계를 구축”할 의무만 있다. 권한은 없다.
국민의힘 최고 의결기관은 전당대회다. 대표 및 최고위원 지명, 대선후보 지명, 주요 당무 의결 및 승인은 모두 전당대회 권한이다. 그런데도 당 지도부를 바꾸려는 윤석열 대통령의 뜻이 관철되고 있다. ‘윤심’은 보이지 않는 손일까, 보이는 손일까?
국민의힘 지도부 개편은 이준석 대표 몰아내기와 윤석열 대통령 국정 지지율 회복이라는 두 가지 필요성이 한꺼번에 작용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잘될까?
힘으로 밀어붙이면 되긴 되겠지만 좀 시끄러울 것 같다. 비대위 구성을 위한 최고위 기능 상실 요건, 비대위원장 임명 권한 등을 둘러싼 논란이 있다. 지켜볼 일이다.
어쨌든 국민은 물가 상승, 금리 인상, 주가 하락으로 신음하는데, 대통령과 집권당은 권력투쟁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 참 보기 싫다.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그렇다고 치자. 권력투쟁은 정치의 본질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잘 알지도 못하는 당내 권력투쟁에 끼어든 이유는 뭘까? 첫째, 이준석 대표에 대한 반감인 것 같다. 둘째, 국정 지지율 하락의 원인을 국민의힘 탓으로 돌리려는 것 같다.
첫번째 이유는 그래도 수긍이 간다. 윤석열 대통령도 사람인데 감정이 있을 것이다.
두번째 이유는 수긍이 가지 않는다. 완전히 잘못된 진단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맞은 위기의 본질은 신뢰 상실로 인한 리더십 붕괴다. 그는 공정과 상식을 내세워 집권했다. 하지만 당선 이후 불공정과 몰상식이 줄을 잇고 있다. 불공정과 몰상식의 진원지는 대통령 자신과 대통령실이다.
‘내부 총질’ 문자를 보낸 윤석열 대통령과, 이를 실수로 노출한 권성동 원내대표 중에 누가 더 잘못한 것일까? 대통령실에 대통령 부부 친척과 지인, 극우 성향 인사들이 줄줄이 들어간 것은 대통령의 잘못일까, 국민의힘 잘못일까?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다.
사고는 대통령이 치고 책임은 국민의힘으로 떠미는 것이야말로 불공정과 몰상식의 극치다. 진단이 잘못됐으니 처방이 통할 리 없다. 국민의힘 지도부를 바꿔봐야 별 효과가 없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대통령을 바꿀 수는 없다. 그렇다면 대통령 대신 참모들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 주군의 잘못에 책임을 지고 목이 잘리는 것이 참모들의 운명이다.
당장 대통령실을 대폭 개편해야 한다. 검찰 출신들, 대통령 부부 친척과 지인, 극우 성향 인사들을 다 내보내야 한다. 그 자리에 정치 경험 많은 국민의힘 내부 인재들을 기용해야 한다.
더 중요한 일은 따로 있다. 다른 사람에게 미루지 말고 윤석열 대통령 자신이 직접 해야 하는 일이다.
‘대통령 정치’를 시작해야 한다. 야당과 손잡아야 한다. 더불어민주당과 협력해야 법을 통과시킬 수 있다. 그게 현실이다. 싫어도 다른 선택지가 없다.
대통령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도 함께 일할 줄 알아야 한다. <김대중 자서전>에 이런 대목이 있다.
“‘국민의 정부’ 초기에 벌어진 경제 전쟁의 장수들은 거의가 자민련이 추천한 인사들이었다. 이규성 재무부 장관, 이헌재 금감위원장은 자민련 몫으로 입각했지만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경제를 개혁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보여줬다.”
“나는 각료들을 결코 차별하지 않았다. 일 잘하는 장관을 제일 아꼈다. 그들 또한 대통령인 나를 충심으로 보필했다. 그들의 국정 경험을 나는 신뢰했고, 그들은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들은 저력이 있었고, 경제위기를 돌파하는 데 적임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그런 폭넓은 리더십으로 외환위기를 극복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배워야 한다.
8월28일이면 더불어민주당에 새 지도부가 들어선다. 윤석열 대통령이 먼저 여야 영수회담을 제의하면 좋겠다.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마주 앉아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대타협안을 도출해서 발표하면 좋겠다.
그게 바로 민생을 살리는 길이다. 국민을 위하는 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성공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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