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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02년 거리응원과 이태원 참사의 결정적 차이 [박찬수 칼럼]

등록 2022-11-09 16:14수정 2022-11-10 15:43

대통령실이 국정 사령탑인 건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항상 위기를 관리하고 모든 분야의 정보를 취합해 정확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지금 전방위적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은 ‘최고 사령관’이 아닌, 전 정권과 야당 수사에 모든 걸 거는 ‘최고 수사책임자’로서의 역할만 하는 것 같다.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재난안전관리체계 점검 및 제도 개선책 논의를 위한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7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재난안전관리체계 점검 및 제도 개선책 논의를 위한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박찬수ㅣ 대기자

벌써 20년 전인 2002년, 수백만명이 서울 도심을 메운 한·일 월드컵의 자발적 거리응원은 어떻게 안전할 수 있었을까. 그때 매일 아침 청와대서 열린 안전 대책회의에 참석했던 어느 수석비서관은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당시 거리 상황을 책임진 건 경찰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 선수들의 경기를 보기 위해 경기장에 가 있었지만, 경기 중에도 수시로 거리의 안전 상황을 보고하라고 비서실장에게 지시했다. 대통령 보고를 위해 비서실장과 정무수석비서관은 거의 10분 간격으로 경찰청장과 계속 통화를 했다. 대통령이 직접 챙기니까 경찰도 안전에 온 힘을 쏟았다. 가령 거리응원 주무대인 광화문 네거리로 통하는 간선도로는 개방하되 골목길은 폐쇄하겠다고 했다. 골목길에 많은 인파가 갑자기 몰리거나 폭력 사태가 나는 걸 막기 위해서였다. 이런 게 효과를 거뒀다.”

이 인사는 이태원 참사 책임을 용산경찰서와 현장 경찰관들에 돌리는 현 정부에 대해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 “핵심은 컨트롤 타워의 부재다. 대통령실이 그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게 무너졌다. 2002년에 경찰을 관할하는 청와대 정무수석실은 서울 시내 대규모 인파가 몰리는 곳을 모두 실시간으로 체크하고 기동대 위치와 이동 현황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이태원 현장에 경찰 137명이 있으면 뭐 하나, 상부의 정확한 통제와 지시가 없으면 그냥 모래알일 뿐이다.”

경찰병력 운용 같은 ‘사소한 일’까지 대통령실이 챙겨야 하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지금 윤석열 정부의 태도가 딱 그렇다. 하지만 그날 서울 도심에선 예고된 대규모 집회가 두개나 열렸고, 코로나 이후 10만명을 훨씬 넘는 인파가 이태원을 찾을 거란 사실도 익히 알려져 있었다. 그렇다면 꼭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대통령실의 누군가는 상황을 주시하고 비상사태에 대비했어야 했다. 사고가 발생하면 곧바로 관련 부처와 기관을 동원할 수 있는 채비를 갖춰놓고 있어야 했다. 그게 국정 사령탑이라는 대통령실의 기본 임무가 아닌가. 국정 사령탑이라면서 ’재난의 컨트롤 타워는 아니’라고 말하는 건 말장난으로 비친다. 윤석열 대통령실은 가장 기본적인 임무에서 참담하게 실패했다.

정부 발표를 보면, 경찰 지휘부보다 사고 발생을 먼저 안 곳은 대통령실이다. 참사 당일 밤 10시53분에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은 소방청을 통해 사고를 파악했고, 11시1분 국정상황실장이 윤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그런데 ‘행정안전부를 중심으로 모든 기관이 만전을 기하라’는 대통령의 첫 지시는 20분 뒤인 11시21분에 나왔다. 아마도 11시20분에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연락이 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해할 수 없는 건 바로 이 부분이다. 윤 대통령도 말했듯이 현장의 최일선엔 경찰이 있었다. 그런데 대통령은 물론이고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 어느 누구도 사고 1보를 듣고 곧바로 경찰청장이나 차장, 서울경찰청장과 연락을 취한 기록은 보이질 않는다. 대통령은 오로지 이상민 장관만 찾고 있었던 셈이다. 청와대 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이 10분 간격으로 경찰청장과 통화하고 그 내용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는 20년 전의 안전 대응 시스템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결국 경찰 지휘부 누구도 대통령실로부터 곧바로 상황을 전달받거나 대응 지시를 받지 못했다. 고향 산에서 야영한 경찰청장은 2시간 지나 첫 보고를 받았고, 서울경찰청장은 대통령보다 35분이나 늦게 참사 사실을 알았다. 물론 밑에서 올라오는 보고체계가 엉망이던 경찰엔 단호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효율적 지시를 포기한 대통령실이 엄중한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이전 정부에서 청와대 위기관리센터 경험이 있는 한 인사는 “예전 청와대 벙커(위기관리센터)엔 재난을 총괄하는 국장급 공무원이 행정안전부에서 파견 나와 있었다. 현 정부는 대통령실을 줄인다면서 이 기능을 없앴다. 그런 게 긴급 재난 대응에 영향을 준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이 국정 사령탑인 건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항상 위기를 관리하고 모든 분야의 정보를 취합해 정확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20세기 들어 국가안보와 경제, 재난까지 총괄하는 대통령은 흔히 ‘최고 사령관’(Commander-in-chief)으로 불린다. 지금 전방위적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은 ‘최고 사령관’이 아닌, 전 정권과 야당 수사에 모든 걸 거는 ‘최고 수사책임자’로서의 역할만 하는 것 같다. 안타까운 일이다.

대기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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