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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실패로 시작한 윤석열식 외교와 암울한 ‘한반도 시나리오’

등록 2022-11-22 14:04수정 2022-11-23 12:08

[아침햇발]
특히 대만과 한반도에서 동시에 위기가 벌어진다면 미국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런 암울한 시나리오가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느냐에 따라 미래는 달라진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박민희 | 논설위원 

윤석열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 외교는 출발도 하기 전에 실패했다. 입만 열면 자유와 ‘보편적 규범과 가치’를 외치는 대통령이 특정 언론사를 지목해 전용기 탑승을 불허하면서, 언론 탄압의 자욱한 먼지로 모든 것을 덮어버렸다.

귀국 뒤에는 “전용기 탑승 배제는 헌법 수호”라는 거창한 궤변으로 언론과의 싸움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이번 순방 동안 발표한 ‘한국판 인도·태평양 전략’과 한·미·일 프놈펜 공동선언은 1990년대 초반 탈냉전 흐름에 대응한 북방외교 이후 가장 큰 폭의 외교 궤도 수정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그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고 여론의 동의를 구하려는 노력은 흔적도 없다. 한없이 무책임하다.

이번 정상외교의 결과를 가장 예리하게 파악한 쪽은, ‘초대받지 않은 손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첫 대면 정상회담에서 미-중의 입장 차이가 가장 첨예하게 드러난 것은 북한 핵·미사일과 대만 문제였다.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한-중 정상회담에서도 북핵 문제에 대한 이견은 팽팽했다. 한국과 미국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이 적극적 역할을 하라, 아니면 한·미·일 군사협력으로 중국 견제를 강화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냈고, 중국은 북한의 “합리적 우려”를 강조하며 미국의 전략무기 배치나 한·미 훈련 등을 먼저 중단해야 한다고 맞받았다.

북한의 입장을 두둔하는 중국의 신호를 확인한 뒤, 북한은 곧바로 18일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을 발사했다. 어린 딸까지 데리고 나와 시험발사를 직접 참관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핵에는 핵으로, 정면대결에는 정면대결로 대답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과시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지금 세계 정세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강대국이 영토와 영향권을 넓히기 위해 주변 국가·지역을 침략하는 ‘제국주의 열강의 시대’가 되돌아오고 있고, 이를 막을 수 있는 기존 국제질서는 사실상 무너지고 있으며, 제국들과 핵을 가진 국가들이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세계가 오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지난 18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 시험발사를 현지지도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딸과 함께 다정하게 발사대 앞을 걷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지난 18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 시험발사를 현지지도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딸과 함께 다정하게 발사대 앞을 걷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특히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전략 변화가 중요하다. 우크라이나-대만-북핵 문제가 연동되어 있다고 경고해온 백승욱 중앙대 교수는 “한국전쟁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기본 입장은 전쟁을 억제하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중국이 한반도에서 비핵화 원칙을 포기하고 대만 상황과 관련해 북한을 변수로 활용하려 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대만 통일’은 시진핑 주석이 중국 인민들에게 반드시 완수하겠다고 약속한, 통치 정당성을 떠받치는 버팀목이 되었다. 지난 14일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시진핑 주석은 “대만 문제는 중국의 핵심이익 중의 핵심이며, 중-미 관계에서 결코 넘어서는 안 되는 최우선 레드라인”이라고 했다.

중국은 이런 전략 변화에 맞춰, 북한의 비핵화가 아닌 ‘북-중 동맹 강화’를 선택했다. 중국이 대만 통일에 나설 경우, 미국의 억지력을 분산시키려면 북한이 한국을 군사적으로 위협하는 ‘2개의 전선’을 펼치는 것이 중국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번 한-중, 미-중 정상회담에 대한 중국의 발표문에서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주목해야 한다.

이런 정세 변화에 따라, 북한은 핵 전략을 바꿨다.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노딜’로 끝나기 전까지 북한의 핵·미사일 시험은 미국을 협상장에 나오도록 해 거래를 하려는 전략의 일부였다. 하지만 올해 9월 핵무력 법제화와 계속되는 탄도미사일 발사, ‘전술핵 부대 훈련’ 등은 북한 핵이 ‘전쟁 억지용’을 넘어섰다는 매우 우려스러운 신호로 보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핵·미사일 전문가인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기술적인 면에서 현재 북한의 전술핵 개발과 부대 편성, 장비 등을 종합해 보면, 실제로 한국을 겨냥해 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개발과 훈련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기술이 완성되면, 김정은 위원장은 전술핵으로 한국을 직접 겨냥해도 미국은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능력을 고려해 개입하지 못할 것이라고 계산하지 않을까. 특히 대만과 한반도에서 동시에 위기가 벌어진다면 미국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런 암울한 시나리오가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우리가 한반도를 둘러싼 위기의 본질과 국제질서의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느냐에 따라 미래는 달라진다. 그런데 현실은 어떤가.

대통령은 ‘한·미·일 3각 공조’만 구호처럼 외칠 뿐 한국의 입장에서 ‘용미’ ‘용일’ 하려는 전략을 고민할 의지도, 능력도 없어 보인다. 야당은 국제질서가 급변하고 과거의 북핵 해법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상황을 직시하거나, 현실적 대안을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외교에 대한 우리 사회의 논의는 ‘친미’ ‘친중’ ‘친일’로 서로를 비난하는 진영 싸움으로 좁아졌고, ‘한국의 관점’에서 장기적 전략을 함께 마련할 공론장은 실종되어버렸다. 지금 가장 심각한 위기는 권력자들의 떠들썩한 정치 공방에 온 사회가 휩쓸린 채 ‘생존의 위기’에 대비할 골든타임마저 계속 흘려보내고 있는 것 아닐까.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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