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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강준만 칼럼] 마주 보며 달리는 기차는 세워야 한다

등록 2022-12-11 16:34수정 2022-12-12 10:15

‘조국 사태’ 이후 진보진영 일각엔 “이런 식으로 가면 문재인 정권은 망한다”며 펄펄 뛴 소수가 있었다. 그들이 옳았다. 그러나 망하는 길을 택한 다수는 그걸 인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그들을 ‘배신자’로 비난하기에 바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와 윤석열 대통령. 그래픽 박민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와 윤석열 대통령. 그래픽 박민지

강준만 |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지난 11월24일 <한겨레> ‘왜냐면’에 실린 독자 유정민씨의 ‘성한용·강준만 칼럼에 부쳐;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라는 글을 잘 읽었다. 깊이 감사드린다. 그러잖아도 나의 글쓰기에 관한 글을 쓰고 싶었다. 행여 ‘자기 과대평가’로 여겨지는 게 아닌가 싶어 망설이던 중 자연스럽게 말할 기회를 주셨으니 이만저만 고마운 게 아니다. 제게 주신 고언에 답을 드리고자 한다.

나는 유씨가 인용한 하워드 진의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라는 시각이나 사고의 틀을 현 한국 사회에 적용하는 것에 반대한다. 진의 책은 1950년대 후반~1960년대 직접 겪은 일들과 생각을 담은 ‘자전적 역사 에세이’이며, 그가 중립에 반대한 주제는 인종차별과 정의롭지 못한 전쟁이었다. 나 역시 그런 문제라면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고 생각하며, 선악 이분법은 불가피하다고 믿는다. 그러나 현 한국 정치를 이해하고 평가하는 데에 그런 이분법을 쓰는 건 매우 위험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물론 오늘날에도 그런 이분법이 필요할 때가 있기는 하다. 예컨대, 특정 지역민을 모독하고 비하하는 짓을 평가하는 데에 중립은 있을 수 없다. 나는 사적 영역에선 그런 짓을 하는 사람들을 향해 핏대를 올리면서 거친 욕설을 퍼붓곤 한다. 하지만 정치는 다르다.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존중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시대’를 살고 있지 않은가. 민주화 투쟁을 했거나 지지했던 분들은 과거의 경험과 기억 때문에 반대편 정치세력이나 그 지지자들을 존중하기 어렵겠지만, 그런 반감은 직접 표출하기보다는 선거에서의 승리를 통해 해소하는 게 바람직하다.

선거에서 승리하려면 우리 편이 잘하도록 애써야 한다. 물론 반대편에 대한 공격도 필요하겠지만, 우리 편이 잘하도록 하는 게 우선이다. 그래야 반대편 공격도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한국 정치에선 우리 편이 잘하도록 애쓰는 게 실종되고 말았다. 우리 편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건 우리 편은 무조건 옹호하고 반대편은 무조건 공격하는 게 정치, 정치참여가 되고 말았다. 그 과정에서 자기 성찰과 반성은 씨가 말랐다.

적어도 ‘조국 사태’ 이후 진보진영 일각엔 “이런 식으로 가면 문재인 정권은 망한다”며 펄펄 뛴 소수가 있었다. 그들이 옳았다. 그러나 망하는 길을 택한 다수는 그걸 인정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그들을 ‘배신자’로 비난하기에 바빴다. 자신들의 과오에 면죄부를 얻으려는 이기적 탐욕 때문인가? 문 정권을 망하는 길로 몰아간 주동자들은 고개를 떨구기는커녕 오히려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윤석열 정권을 공격하는 증오·혐오의 선동에 몰두하고 있다. 윤 정권 비판은 백번 옳지만 ‘윤석열 퇴진’을 외치는 게 국익은 물론 당파적 이익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혹 똑같은 과오를 반복하는 건 아닐까?

진보언론도 성찰과 반성을 모른다. 칼럼들은 매일같이 윤석열과 윤 정권 비판 일색이다. 윤석열이 비판할 만한 언행들을 풍성하게 제공해주고 있으니, 그런 ‘비판 일색’이 옳다고 믿는 걸까? 우리 편이 잘하는지도 살펴봐야 하는 게 아닐까? 민주당에선 윤 정권 못지않게 한심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이에 관해선 별말이 없다. 권력은 정부·여당이 갖고 있기 때문에 그게 옳다는 건가? 문 정권 때도 그랬던가?

나는 문제의 내 칼럼이 서평기사로 적절했다는 유씨의 비판엔 일리가 있다고 보지만, 그것을 ‘시의성’을 무시한 ‘최근 시국에 대한 침묵’으로 보는 것엔 동의하지 않는다. 지금 윤석열·국민의힘과 이재명·민주당은 서로 마주 보며 달리는 기차와 같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는 마주 보며 달리는 기차는 세워야 하며, 글을 통해서나마 그런 일에 일조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간 내가 쓴 글의 대부분은 ‘증오·혐오정치’에 대한 비판이었다. 다만 나는 <한겨레>에선 직설법을 피하려고 애를 썼고, 그래서 서평 형식의 글을 선호했다. 독자에 대한 예의 때문이다.

다수 독자는 내심 “우리의 마음에 풍파를 일으키지 마라. 그저 우리가 믿고 있는 바들을 더 많이 보여달라. 우리를 결집시킬 내용을 달라”(비키 쿤켈)고 외치고 있다. 그런 만족감을 원하는 독자들께 나는 결코 좋은 필자는 아니다. 그래서 기고를 중단할까 하는 생각도 여러차례 했지만, 소수도 존중하는 다양성의 가치를 포기할 순 없었다. 다수 독자께 늘 미안한 마음이지만, 우리 모두 기존 ‘전쟁으로서의 정치’ 모델을 의심하면서 다름을 인정하는 관용을 실천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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