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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화물연대 굴복시킨 날, 윤 대통령 건배사는 뭐였을까

등록 2022-12-13 16:56수정 2022-12-14 11:52

[아침햇발]

모든 문제가 거의 그대로 남아 있는데, 정부는 안전운임제를 아예 폐지하겠다고 한다. 화물연대를 굴복시킨 날 밤, 윤석열 대통령은 경제 5단체장을 관저로 초청해 비공개 만찬을 했다. 대통령은 그 힘없는 이들과 싸워 이겼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화물연대가 파업을 종료하고 현장 복귀를 결정한 지난 9일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서 한 조합원이 눈물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화물연대가 파업을 종료하고 현장 복귀를 결정한 지난 9일 경기도 의왕시 내륙컨테이너기지(ICD)에서 한 조합원이 눈물을 닦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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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구 | 논설위원

1970년대가 끝나갈 무렵, 군에서 막 제대한 큰 외숙이 일터의 숙소에서 연탄가스(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시절엔 그런 황망한 죽음이 흔했다. 1978년 한해 동안 연탄가스 중독으로 600명이 세상을 떠났다.

연탄의 재료인 석탄을 캐는 일은 더 위험했다. 고등학교 시절 한 친구의 아버지는 강원도의 탄광에서 매몰 사고로 두 다리를 잃고 휠체어에 의지해 사셨다. 1975~1979년 5년간 탄광 사고 사망자가 연평균 214명이었다.

가난한 이들의 일터는 아주 위험해서, 고향 마을엔 슬픔이 끊이지 않았다. 1980년대 초, 스물을 갓 넘긴 고향 마을의 한 선배가 조선소에서 일하다 폭발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몇해 뒤 나는 우리 마을 방앗간에서 일하던 아저씨가 엔진으로 이어진 벨트를 고치려다 사고를 당한 장면을 보았다.

방앗간의 원래 주인이던 분은 오토바이를 타고 그 근처를 지나다 전봇대에 충돌하는 사고로 세상을 떴고, 그 댁 아주머니는 방앗간 근처 소나무 묘목장에서 마른풀을 태우다 화마에 휩쓸려 불귀의 객이 되었다.

내 어릴 적 말 달구지를 끌고 다니며 멋을 내던 ‘친구 삼촌’은 건축공사장에서 위층으로 벽돌을 옮기는 기계에 치여 세상을 등졌다. 그리고 십여년 전, 고향 마을에서 가장 젊은 농사꾼이던 이가 자신이 몰던 트랙터 아래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우리는 이제 꽤 부유해졌지만, 여전히 일하기 위험한 나라에서 살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연간 노동시간은 독일의 1.4배에 이르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중남미 4개국 다음으로 길었다. 국가통계포털(kosis.kr)에서 ‘산업재해 사망자’를 검색하면, 2020년 한해 동안 2062명이 사망했음을 알려준다. 하루 6명꼴이다.

산재 사망자는 추세적으로 줄고 있긴 하다. 2003년 2923명이었는데 점차 줄어 2012년(1864명)부터 2017년(1957명)까지 6년간은 2천명을 밑돌았다. 그러고 보면, 2016년 5월 서울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고치다 전동차에 치여 사망한 김군(당시 19살), 2018년 12월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사망한 김용균(당시 24살)씨 사고를 겪고서야 산업재해에 제대로 맞서기 시작한 우리의 도덕적 각성은 너무 느렸다.

사망자가 가장 많은 업종은 건설업이다. 2020년 사망자 2062명의 27.5%인 567명이 건설업 종사자였다. 추락 사고가 많다. 그다음으로 기계기구·금속·비금속광물제품제조업 종사자 가운데 사망자(256명)가 많다. 그렇지만 종사자 1만명당 사망자로 따져 가장 위험한 일은 운송업이다. 종사자 1만명당 재해 사망자가 2.95명으로 건설업(2.48명)보다 높다.

도로는 우리 모두에게 여전히 위험하다. 적극적인 노력으로 교통사고 사망자는 2016년 4292명에서 2021년 2916명으로 32.1% 줄었다. 하지만 시한폭탄으로 불리는 화물차 사고는 여전히 심각하다. 2021년 화물차가 가해차인 사고로 205명이 숨졌다. 사고 100건당 사망자가 3.1명으로 승용차(1.1명)의 세배에 이른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1월20일에 낸 ‘사업용 차량 교통안전 강화 대책’ 자료를 보면 화물차 사고 원인은 “졸음운전 등 안전운전 불이행이 75%(2020년)”로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무리한 운행을 부추기는 것은 낮은 운임이다. 그래서 2020년부터 3년 시한으로 도입한 게 일종의 최저운임제인 안전운임제다. 화물차 운전자만이 아니라, 도로를 달리는 우리 모두의 안전을 위한 제도였다.

화물연대가 안전운임제의 영구화와 대상 확대를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윤석열 정부는 제도 도입 이후 화물차 사고가 줄지 않았다며 안전운임제는 효과가 없다고 주장했다. 성급한 분석이고, 무리한 통계 해석이었다. 그런데 이를 들이대며 대화를 회피하더니, 화물연대가 파업에 들어가자 작정한 듯 강경대응을 했다. 노동자들이 결국 손을 들었다. 업무개시명령에 따른 형사 처벌과 자격 취소 위협, 길어지는 파업으로 인한 생계 곤란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모든 문제가 거의 그대로 남아 있는데, 정부는 안전운임제를 아예 폐지하겠다고 한다. 화물연대를 굴복시킨 날 밤, 윤석열 대통령은 경제 5단체장을 관저로 초청해 비공개 만찬을 했다. 건배사가 무엇이었을지 궁금하다. 대통령은 그 힘없는 이들과 싸워 이겼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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