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22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미래 과학자와의 대화’에서 대통령 과학장학생 수여자 대표의 소감을 들은 뒤 대화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성한용 | 정치부 선임기자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구속된 것은 지금부터 4년9개월 전인 2018년 3월이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송경호)와 첨단범죄수사1부(부장 신봉수)가 영장을 발부받아 구속을 집행했다.
영장에 적시된 내용은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뇌물수수·조세포탈·국고손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의 횡령,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등 6개 죄명, 10여개 혐의였다.
당시 적폐청산 수사를 지휘했던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은 국민의 박수와 갈채를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 국정 지지율이 70%대 고공 행진을 하던 시절이었다.
바로 그 윤석열 검사가 대통령이 되어 27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이명박 전 대통령을 특별 사면한다. 결과적으로 잡아넣은 사람이 풀어주는 모양새다. 그래도 결자해지라고 표현하기는 난감하다. 국가의 형벌권을 집행하는 조직의 간부가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 자리에 앉게 되면서 벌어지는 기이한 장면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뭐라고 말할지 무척 궁금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구속 직전 “언젠가 나의 참모습을 되찾고 할 말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며 “나는 그래도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할 것”이라고 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할까?
아닐 것이다. 재산을 다 빼앗기고 감옥에 가는 험한 꼴을 겪을 줄 미리 알았더라면 처음부터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서지 않았을 것 같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극한직업이다. 역대 대통령은 모두 불행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은 독재와 쿠데타의 죗값을 받았다고 치자.
하지만 1987년 개헌 이후 대통령들도 퇴임 후 감옥에 가거나 재임 중 자식이 구속되는 망신을 당했다. 왜 그랬을까? 공화국의 대통령이 제왕의 권력을 행사했기 때문이다.
역대 모든 대통령이 자신은 전임자의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대체로 전임자의 전철을 밟았다. 인간은 의외로 미련한 동물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다를까? 5년 뒤 퇴임하면 어떻게 될까? 지금은 ‘나는 결코 불행한 대통령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것이다. 과연 그럴까?
벌써 조짐이 좋지 않다. 국민의힘은 국회 의석이 115석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을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착각하는 것 같다.
노동 개혁, 교육 개혁, 연금 개혁을 하겠다고 천명했다. 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방법론이 보이지 않는다. 개혁은 목표 설정보다 방법론이 훨씬 더 어렵다.
내년도 예산안 국회 합의에 대해 대통령실은 “일자리를 더 만들고 경제 활성화를 위해 재정을 투입하려 했으나 힘에 밀려 민생 예산이 퇴색되었다. 이대로 경제위기를 돌파할 수 있을지 우려되지만 윤석열 정부는 묵묵히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논리다. 뒤끝 작렬이요, 야당 탓이다.
야당이 발목을 잡아서 일할 수 없다는 이른바 ‘발목 프레임’은 2024년 4월 총선 승리를 위한 것일 터이다. 그런데 여당이 총선에서 이기면 임기 후반에는 윤석열 정부의 정책을 다 밀어붙일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2020년 총선에서 압승한 민주당도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다 밀어붙이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전임자들의 전철을 피해 갈 수 있을까?
첫째, 협치해야 한다.
역대 대통령은 대체로 야당을 탄압했다. 대화와 타협에 인색했다. 그 반작용으로 야당은 집권 세력이 실패하도록 만드는 데 몰두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그러면 안 된다. 야당을 끌어안아야 한다. 대화하고 타협해야 한다. 인간적으로 싫어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게 바로 윤석열 대통령 자신이 사는 길이다.
둘째, 정치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우리나라 현행 대통령제는 설계 잘못으로 사고가 빈발하는 자동차와 같다. 아무리 유능한 운전자가 몰아도 사고를 피할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임기 중에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자동차에서 내려와야 한다.
우선 당장은 지역구 소선거구제 중심의 선거제도를 바꾸는 데 힘을 보태야 한다. 정당 지지율과 의석수를 일치시키고 특정 정당의 특정 지역 싹쓸이를 막아야 한다. 다당제로 가야 한다.
그래야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살아난다. 그래야 윤석열 대통령도 퇴임 이후 생존 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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