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노멀-혁신] 김진화 | 연쇄창업가
챗지피티(ChatGPT)가 막 출시됐을 무렵 본 칼럼을 통해 그 의미를 짚어본 바 있다. 고작 두달이 흘렀을 뿐인데, 한번 썼으니 됐다고 넘기기엔 여진이 심상치 않다. 새로운 기술의 등장에 뒤따르기 마련인 예의 호들갑은 기본이고, 무언가 맹점을 찾으려는 집요한 공략과 방어의 공성전이 펼쳐졌다. 논문의 공동저자로 등극했다는 소식이 들리는데 한편에선 논문 저자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방침이 발표되기도 했다. 정부 부처 신년 업무보고 자리에서도 대통령이 신년사를 작성하게 한 경험을 공유하며 “우리 공무원들이 업무에 잘 활용하면 좋겠다”고 당부했단다.
업계는 총성 없는 전쟁에 돌입한 것 같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오픈에이아이와의 독점 계약을 바탕으로 발 빠르게 자사 검색엔진과 브라우저에 챗지피티를 탑재해 시범서비스를 시작했다. 당황한 구글은 원천기술의 지분을 강조하며 챗봇 ‘바드’를 시장에 선보였으나 하지 않느니만 못했다는 혹평 속에서 모회사 알파벳의 주가가 폭락했다. 물론 아직 판단은 이르다. 이제 막 총성이 울리고 스타트를 끊었을 뿐, 더 많은 선수가 호시탐탐 참전을 기약하는 기나긴 레이스가 펼쳐질 게다.
이처럼 열풍이 거세지는 가운데, “규제가 필요하다”는 일성이 오픈에이아이 최고기술책임자 입에서 나와 눈길을 끈다. 챗지피티를 비롯한 생성인공지능 개발을 지휘하는 미라 무라티는, 정부 규제가 혁신의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이며, 일개 회사가 사회에 미칠 영향과 파장을 다 고려하기엔 기술 외적인 어려움과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인간의 가치에 부합하도록 인공지능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학계 등 공동의 연구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도 역설했다.
공동 창업자이자 대표인 샘 올트먼은 한술 더 뜬다. 자본주의 체계 안에 인공일반지능(AGI)을 담을 수 있겠는가? “자본주의를 사랑하지만, 현존하는 모든 나쁜 시스템 중 가장 좋은 시스템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나은 방안을 찾았으면 좋겠다.” 인공일반지능이 스스로 일해서 벌어들일 수익을 어떻게 배분해야 할 것인가, 이런 인공지능을 누가 통제할 수 있으며, 이를 소유한 회사는 어떤 지배구조로 구성돼야 하는가 등 여러 난제에 새로운 해답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일찍이 기본소득을 주창한 인물인 만큼 그리 놀라운 발언은 아니다. 당시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실리콘밸리 자본가들의 선제적 대응에 불과하다며 평가절하했지만, 인공일반지능 개발이 가시화되는 시점에서 그의 문제제기는 자못 의미심장하다.
올트먼이 던진 질문은 노동의 재정의 문제로 이어진다. 인공지능 시대에 노동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한국에서는 다소 생경하겠지만, 글렌 와일 등 일군의 경제학자들을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돼온 쟁점이다. 데이터를 생산해 기계를 학습시키는 행위, 즉 우리가 일상적으로 인터넷 및 모바일 서비스를 이용하는 행위 자체를 노동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점점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 경우 지금과는 또 다른 분배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 아울러 기존 주주자본주의로 표상될 수 없는 다양한 소유형태, 지배구조가 필요해질 것이며 이는 분산자율조직, 블록체인 등과 연결된다.
거대언어모델(LLM)은 이제 사용경험을 바탕으로 더 빠른 속도로 발달해나갈 것이고, 인공일반지능 역시 이와는 다른 경로를 걷겠지만 가시화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앰비언트 컴퓨팅과 바이오테크의 결합은 프라이버시와 데이터소유권 관념을 송두리째 바꿀 것이다. 인간 존재 자체가 시험대에 오르는 셈이다. 지난 칼럼에서 인공지능 시대에 더욱 중요해진 것은 제대로 질문하기와 문제설정이라고 했다. 기술의 비약적 발전이 기존 체제와 충돌하거나 그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면 과연 정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