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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가해와 마주하는 법 [숨&결]

등록 2023-02-13 18:28수정 2023-02-14 11:08

퐁니마을 민간인 학살의 피해자인 응우옌티탄이 지난 7일 오후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 국가배상소송 1심에서 승소한 뒤 변호인단이 노트북으로 연결한 화상 통화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퐁니마을 민간인 학살의 피해자인 응우옌티탄이 지난 7일 오후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 국가배상소송 1심에서 승소한 뒤 변호인단이 노트북으로 연결한 화상 통화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숨&결] 방혜린 | 전 군인권센터 활동가·예비역 대위

“숱한 침략을 받았어도 한번도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 없는 나라와 한민족.”

우리나라를 설명할 때 자주 쓰이는 말이다. 여기서 얘기하는 나라와 민족이 구체적으로 어느 시기 어디까지를 지칭하는지, 그 내용이 역사적 사실인지 아닌지를 떠나 이 문장은 우리나라와 한민족을 ‘희생자’로 자리매김시키는 데 있어 꽤 괜찮은 명분을 제공해왔다.

임지현 서강대 교수는 <희생자의식 민족주의>(2021년)에서 책 제목이기도 한 ‘희생자의식 민족주의’를 이렇게 정의한다. “후속 세대들이 앞 세대가 겪은 희생자의 경험과 지위를 세습하고, 세습된 희생자의식을 통해 현재 자신들의 민족주의에 도덕적 정당성과 정치적 알리바이를 부여하는 기억 서사.” 덧붙여 이렇게 말한다. “‘세습적 희생자’라는 의식에서 벗어나 자신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역사적 성찰이 21세기 문화적 기억의 서사적 틀이 되어야 한다.”

한국인은 세습적 희생자가 될 수 있는 용이한 조건들을 갖추고 있다. 일제강점기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세대가 해방과 그 뒤 이어진 한국전쟁을 경험했으며, 한국전쟁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세대 상당수는 여전히 생존해 있다. 여기에 일제강점기는 일제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로, 한국전쟁은 분단과 휴전이라는 형태로 해결되지 못한 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재진행형인 이런 문제들은 기억과 경험의 전달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인에게도 희생자의 위치에 설 수 있는 하나의 집합적 구실을 제공한다. 한국은 ‘순수한 피해자 되기’를 선택했고 어느 정도 성공했다. 해방 뒤 대한민국 건국이라는 우선 과업 속에서 식민지배의 과오는 제대로 청산되지 못했고, 전쟁 뒤엔 반공이라는 이름으로 전쟁 중 발생한 민간인 피해와 전후 처리는 뒷전이 됐다.

그래서 베트남전쟁에서의 민간인 학살 사건 국가배상소송 1심 결과는 한국인에게 낯설기만 하다. 지난 2월7일, 한국 법원은 한국군에 의한 ‘퐁니 사건’의 생존자 응우옌티탄씨가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베트남전쟁 민간인 학살과 관련한 대한민국의 책임을 최초로 인정했다. 한국 정부도 베트남 정부도 모두 외면했지만 퐁니 마을 생존자들과 한국 시민사회가 앞장서 학살의 진상을 알려왔고, 가해의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해 벌인 소송이었다. 소송은 2020년에 제기됐지만, 이전 언론 대응과 시민법정에서의 증언과 활동까지 더하면 ‘문제제기’에서 ‘인정’까지 20년 넘게 걸린 싸움이었다.

한창 소송이 진행 중이던 지난해 여름, 한국방송(KBS) <시사멘터리 추적>의 ‘얼굴들, 학살과 기억 편’은 퐁니 마을을 비롯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문제를 심층 취재해 방영했다. 방송 뒤 후폭풍은 컸다. 한국방송 사옥 앞에선 월남 참전 군인들의 시위가 계속됐고,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은 개인 페이스북에 “대한민국 국민 32만5천명을 학살자로 모는 현실”, “참전용사들도 전쟁 영웅이기에 앞서 피해자들입니다!”라는 게시글을 남겼다. 마을 전체가 게릴라전을 수행 중인 베트콩(남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의 군사기지였고, 명령에 따라 작전을 수행한 것뿐인데 왜 우리 군인들을 극악무도한 민간인 학살자로 몰아가느냐는 얘기다.

전쟁 피해자도 전시 폭력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우리는 항상 모두에게 선하지 않고, 동시에 누구에게나 악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습적 피해자 의식에서 벗어나 상황과 맥락에 따라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성찰은 가해를 마주하고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가해자가 된다는 것은 가해를 인정하는 것을 넘어 사건 이후 피해자의 삶을 이해하고, 나아가 그런 가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모든 노력에 최선을 다할 것을 선언하는 과정의 첫발이기 때문이다.

이번 판결이 우리 모두에게 가해와 마주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순수한 피해자가 아니라 온전한 가해자가 된다 할지라도, 그 책임을 마주하고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떳떳한 대한민국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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