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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국립공원 파수꾼’의 유체이탈

등록 2023-03-06 18:38수정 2023-03-07 02:40

지난 3일 오후 제3회 국립공원의 날 기념식이 열린 광주 무등산국립공원에서 환경단체 관계자들이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설치를 허가한 환경부를 규탄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3일 오후 제3회 국립공원의 날 기념식이 열린 광주 무등산국립공원에서 환경단체 관계자들이 설악산 오색 케이블카 설치를 허가한 환경부를 규탄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편집국에서] 김경욱 | 스페셜콘텐츠부장

과연 ‘환경산업부’다운 면모다. 이럴 거면 왜 간판을 바꿔 달지 않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환경부는 최근 40여년 동안 굳게 채워둔 빗장을 풀었다. 강원도와 양양군이 추진해온 오색케이블카 설치사업 환경영향평가에서 ‘조건부 협의’(조건부 동의) 의견을 내면서다. 상부정류장 규모 축소 등 일부 조건을 달았지만, 사실상 케이블카 설치를 허가한 것이다. 오색케이블카는 설악산국립공원 오색지구(양양군 서면 오색리)와 끝청(주봉인 대청봉 서쪽 봉우리)을 연결하는 3.3㎞ 노선이다.

이번 결정은 환경부의 존재 이유를 의심케 한다. 앞선 정부에서 환경부는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에 꾸준히 제동을 걸어왔다. 강원도는 1982년부터 관광객 유치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이유로 이 사업을 추진했지만, 번번이 환경부의 벽에 막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5년 환경부 국립공원위원회가 조건부 승인을 하기도 했으나, 이듬해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가 제동을 걸었다.

그러나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환경부는 ‘자연과 생활환경의 보전’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팽개치고 개발과 건설의 들러리 구실을 하고 있다. 이 사업은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고, 윤 대통령은 지난해 말 규제 기관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라는 취지로 “환경부도 환경산업부가 돼야 한다”고 주문한 바 있다.

설악산은 자연적으로 보호해야 할 가치가 매우 높은 지역이다. 이 산은 국립공원,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백두대간 보호지역 핵심구역, 천연보호구역,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 등 5중으로 보호받고 있다. 특히, 케이블카가 들어설 예정지에는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산양이 집단으로 서식하고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환경연구원(KEI)을 포함해 이 사업 환경영향평가서를 검토한 5개 전문기관이 생태계 훼손 등을 이유로 최근 이 사업에 부정적인 의견을 낸 이유다.

설악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것은 국립공원 위상에도 맞지 않는다. 자연공원법은 “우리나라의 자연생태계나 자연 및 문화경관을 대표할 만한 지역”으로 환경부 장관이 지정·관리하는 공원을 국립공원으로 규정하고 있다. 미래세대를 위해 국가가 보전하고 관리하는 국립공원의 주인은 오늘을 사는 우리가 아니다. 미래세대와 현재 그곳에 터전을 잡은 동물, 식물이 주인이다. 이런 국립공원을 보전·관리하는 주체가 관광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케이블카 설치를 승인하고 있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강원도는 새로 들어설 케이블카로 해마다 관광객 174만명 유치가 가능하고, 1287억원의 경제적 파급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뭔가 대단한 경제적 효과가 있는 것 같지만, 앞서 케이블카가 들어섰던 덕유산 사례를 살펴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설악산에 앞서 육상 국립공원에 마지막으로 설치된 덕유산 케이블카는 1989년 허가돼 1997년 운영을 시작했다. 통계청의 국립공원 기본통계를 보면, 케이블카 운영을 시작한 1997년 이후 덕유산 탐방객 수는 대체로 케이블카 설치 이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 설악산은 지명도 등에서 덕유산에 앞서지만, 케이블카 설치가 단기간에 관광객 급증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더욱이 강원도 등 케이블카 찬성 진영에서는 개발이익을 얘기할 뿐, 환경 파괴에 따른 손실은 말하지 않는다. 한번 파괴된 환경은 원상 복구가 거의 불가능하다. 이번 결정으로 지리산, 소백산, 속리산 등에서도 케이블카 사업 재추진 움직임이 감지되는데, 이에 따른 갈등과 사회적 비용도 커질 수밖에 없다.

지난달 28일치 <서울신문>에는 한화진 환경부 장관의 기고글이 실렸다. ‘자연과 사람이 함께하는 미래, 국립공원’이라는 제목의 글인데, 일독을 권한다. 유체이탈 화법의 정수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올해 세번째 맞는 국립공원의 날의 주제는 ‘국립공원, 자연을 담다! 사람을 품다! 미래를 열다!’이다. 국립공원의 소중한 자연생태계를 지키고 우리와 미래세대를 위해 지속가능하게 활용하자는 의미다. 이날만큼은 가까운 국립공원을 찾아 국립공원의 가치와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는 것은 어떨까”라고 썼다. 이날은 환경부가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를 허가한 다음날이다. 한 장관이야말로 “가까운 국립공원을 찾아 국립공원의 가치와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는 것은 어떨까.”

da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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