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부터 추진된 오색케이블카 사업에 대한 환경영형평가를 환경부가 27일 조건부 협의(동의)했다. 설악산국립공원 권금성을 잇는 케이블카. 연합뉴스
환경부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환경영향평가(재보완) 협의에서 이 사업을 허가한 가운데 한국환경연구원(KEI)의 검토의견을 배제한 것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환경단체는 “윤석열 대통령 대선 공약 이행을 위한 정치적 결정”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환경부가 정체성을 포기했다”고 비판했다.
환경부가 27일 강원 양양군이 제출한 ‘설악산국립공원 오색 삭도(케이블카) 설치사업 환경영향평가서(재보완)’에 대해 조건부 협의(조건부 동의) 결정을 내렸다. 이달초 환경 전문기관 5곳이 사실상 반대하거나 부정적인 환경영향평가 검토의견을 밝힌 것과 상반된 결정이다.
특히, 환경영향평가 전문 검토기관인 한국환경연구원(KEI)은 “오색케이블카가 산양 서식지를 교란하고 상부 정류장으로 인해 아고산대 지형이 크게 훼손되는 데 견줘, 사업자가 제시한 보전 대책으로는 부정적인 영향을 저감하기 어렵다”고 명시적인 설치 불가 입장을 밝혔다. 국립환경과학원은 산양 서식지 핵심구역을 포함하지 않는 범위로 (상부 정류장 부지를) 계획하라고 권고했다.
검토 의견이 이렇게 나오자, 한때 환경부가 이 사업을 불허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기도 했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국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전문기관의 검토의견을 최대한 반영하겠다”고 밝힌 바 있었기 때문이다.
강원 양양군이 추진하는 설악산 오색케이블카를 반대하는 환경·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 2일 원주지방환경청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앞서 이들은 지난달 26일 양양 한계령을 출발해 인제와 횡성을 거쳐 원주지방환경청까지 7박8일간 135㎞를 걸어서 이동하는 도보순례를 했다. 연합뉴스
하지만 환경부는 이날 환경영향평가 결과를 다룬 보도참고자료에서 “중앙행정심판위의 결정에 따라 입지 타당성보다는 재보완서에 제시된 환경영향평가 조사, 예측 및 저감방안의 적정성 등을 검토해 ‘조건부 협의’(조건부 동의) 의견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오색케이블카 입지가 환경적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환경연구원 검토의견을 배제했다는 것이다.
중앙행정심판위 결정은 2019년 환경부가 환경영향평가에서 부동의한 것에 대해 양양군이 낸 ‘부동의 취소 청구’를 가리킨다. 당시 중앙행정심판위는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위원회가 2015년 공원계획변경 심의에서 케이블카 설치가 환경적으로 적합한지 보는 입지 타당성을 이미 검토했기 때문에 환경영향평가에서 다시 검토하는 것은 위법∙부당하다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환경연구원 검토의견을 보면, “자연의 원형이 최우선적으로 유지, 보전돼야 하는 공간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대목이 있는데, 이를 근거로 환경부가 환경연구원의 검토의견을 배제한 것이다.
당시 중앙행정심판위의 결정은 별개의 환경 규제 절차인 환경영향평가를 국립공원계획의 하위 절차로 판단한 것이어서 논란이 일었다. 환경법을 다루는 최재홍 변호사(법무법인 자연)는 “행심위 결정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고 보지만, 결정의 기속력이 있어 이에 따른 판단을 해야하는 것은 맞는다. 하지만 입지 타당성 외에 저감 방안이 충분치 않고 훼손이 심하면 사업을 불허할 수 있는데, 환경부가 이런 부분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통과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오색케이블카를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 뒤에도 여러 차례 긍정적인 신호를 보냈다. 지난 10일에는 김진태 강원도지사의 요청에 “사업이 반드시 진행되도록 환경부에 확인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환경단체는 환경부가 ‘오색케이블카 허가’라는 결론을 미리 내놓고 환경연구원의 검토의견을 배제했다고 보고 있다. 정인철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상황실장도 “환경부는 행심위 결정의 기속력을 이유로 환경연구원 검토의견을 반영하지 않았는데, 입지 타당성 검토가 어디까지 규정되는 것인지 범위를 먼저 밝히고, 그 외 부분에서 저감방안이 충분한지 등을 봤어야 한다”며 “이는 이번 결정이 얼마나 애초에 정해진 방향을 부실하게 쫓아갔는지 명확히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케이블카 서류’ 들고 기다리는 국립공원 지자체들
문제는 설악산 케이블카 이후의 파급 효과다. 국립공원 중에서도 최상위 생태계 우수지역인 곳에 케이블카를 허가했기 때문에 신청서류를 들고 기다리고 있는 다른 지자체를 빈손으로 돌려보낼 수 없기 때문이다.
27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지리산, 북한산, 소백산 등 세 곳의 국립공원에서
케이블카가 추진되고 있다. 속리산, 무등산도 각각 관련 용역을 마쳤거나 논의된 적이 있어, 앞으로 관련 지자체가 나설 것이 확실시된다.
당장 전남 구례군은 올해 안에 지리산 국립공원계획 변경 신청을 낸다는 계획이다. 구례군 관계자는 “성삼재 도로는 일반차량 통행을 금지하고, 그 근처로 케이블카를 올리는 공원계획 변경안을 낼 것”이라고 말했다. 각각 북한산과 소백산 국립공원을 끼고 있는 서울 도봉구와 경북 영주시도 관련 용역을 추진하고 있다.
홍석환 교수는 “설악산은 우리나라 국립공원 중 가장 자연성이 우수하고, 멸종위기종 1급인 산양이 집단 서식하고 있다”며 “이런 곳에서도 케이블카 사업을 할 수 있다고 국가가 판단했는데, 산악관광열차나 케이블카를 설치하고 싶어하는 다른 지역들에서는 어떤 사유로 개발을 막겠나”라고 물었다. 홍 교수는 이어 “최근 흑산도 공항 부지 국립공원 해제와 이번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조건부 협의 등 일련의 결정은 보호지역 시스템 자체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태 지사는 27일 기자회견을 열어 “윤석열 대통령께 감사드린다. 이제야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양양군과 친환경설악산오색케이블카추진위원회 등 주민단체도 일제히 환영 입장을 밝혔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춘천/박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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