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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윤 대통령의 위태로운 나르시시즘 [박찬수 칼럼]

등록 2023-04-03 16:02수정 2023-04-04 02:37

프로야구 개막식 날 서울 잠실 또는 고척이 아니라 저 멀리 대구까지 내려가 시구하는 것은 대개의 정치 지도자들이라면 생각하기 힘든 일이다. 환호성에 목마른 내면의 불안감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대구 서문시장에서 윤 대통령 부부에게 쏟아진 박수를 ‘지지층 결집’이라 여기는 일차원적 사고로는 국민 마음에 진정으로 다가갈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이 1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23 프로야구 엔씨(NC) 다이노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개막전에서 시구를 마친 뒤 관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1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23 프로야구 엔씨(NC) 다이노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개막전에서 시구를 마친 뒤 관중에게 인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박찬수 | 대기자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게 항상 따라붙은 논란 중 하나는 그가 ‘자기애적 성격 장애’(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를 갖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런 의구심은 민주당과 언론에서만 제기한 게 아니다. <워싱턴 포스트>의 밥 우드워드와 로버트 코스타 기자가 2021년 함께 펴낸 책 <위기>(Peril)에는 트럼프 집권 초기 공화당 하원의장이던 폴 라이언이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 중 하나였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라이언은 도덕관념이 없고 장사꾼 같은 사람을 상대하는 법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심리학까지 영역을 넓힐 수는 없었다. 그때 공화당 후원자인 뉴욕의 부유한 의사가 전화를 걸어 ‘자기애적 성격 장애가 무엇인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며 그런 사람을 잘 다루는 방법과 이에 관한 여러 편의 의학 저널 링크를 라이언에게 보냈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2018년 48살의 젊은 나이에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표면적 이유는 “자녀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였지만, 트럼프 대통령과의 불화가 그를 정치에서 손 떼도록 했다고 언론은 분석했다. 라이언의 일화를 떠올린 건, 요즘 윤석열 대통령의 행동에서 종종 흡사한 징후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승욱 닛부타의숲 정신분석클리닉 대표는 “윤 대통령은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꼭 닮았다. 심리학적 측면에서 한국의 트럼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나르시시즘은 연못에 비친 자기 모습에 반해 스스로 물속에 뛰어들어 숨진 그리스 소년 나르키소스에서 유래했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사람은 자신이 절대적으로 옳다(아름답다)는 확신을 가질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 역시 자신을 사랑하고 칭송하고 따라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다. 이런 기대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면 가까운 사이라도 가차 없이 내친다. 오랜 친분의 나경원 전 의원이 대통령 뜻을 어기고 당대표 출마를 하려 하자 가혹할 정도로 정치적 압박을 가한 것이나, 정치 입문 이후 윤 대통령의 외교안보 멘토 역할을 해온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을 전격 경질한 건 그런 예로 보인다.

반면에 자신을 칭찬하고 충성하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는 데 익숙하고 또 좋아한다. ‘윤핵관’들이 여론의 비판에도 건재한 이유, 숱한 잘못과 논란에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유를 이런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프로야구 개막식 날 서울 잠실 또는 고척이 아니라 저 멀리 대구까지 내려가 시구하는 것은 대개의 정치 지도자들이라면 생각하기 힘든 일이다. 환호성에 목마른 내면의 불안감을 짐작할 수 있다.

자기애적 성향이 강한 이들은 자신의 성과가 훼손되는 것을 참지 못한다. 스스로의 잘못을 돌아보기보다 비판하는 상대방을, 비록 그게 국민일지라도, 공격하는 데 온 힘을 쏟는다. 지난달 21일 윤 대통령이 텔레비전 생중계로 23분간 한-일 정상회담 성과를 강조한 건 상징적이었다. ‘어려운 한-일 관계 현안을 내가 풀었다’는 잘못된 자기 확신과 과욕이 뜬금없는 국무회의 라이브 연설로 나타난 게 아닐까. 국민 자존심의 상처보다 자신의 자존심에 상처가 나는 걸 못 견뎌 하는 대통령의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이런 성향은 아마도 28년간의 검사 생활을 통해 발아하고 강화됐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검찰만큼 자기애가 강한 조직도 드물다.

정치인에게 나르시시즘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대통령의 성공을 추동하는 강한 동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양날의 칼과 같다고 심리학자 댄 매캐덤스는 ‘트럼프의 마음’이란 글에서 말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나 존 에프 케네디 같은 역사적 평가를 받는 대통령은 대개 ‘강한 나르시시즘’을 갖고 있었다고 그는 분석했다. 그러나 자기애가 국가 지도자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려면, 국민을 설득하고 소통하려는 노력과 함께해야 한다. 루스벨트나 케네디와 트럼프는 여기서 갈렸다.

지금 용산 대통령실은 어떤가. 블랙핑크 행사 때문에 정부의 외교안보 사령탑을 갑자기 날리는 게 정상이냐고, 그게 정말 사실이냐고 많은 국민이 궁금해하는데, 대통령과 참모들은 한마디 납득할 만한 설명이 없다. 대구 서문시장에서 윤 대통령 부부에게 쏟아진 박수를 ‘지지층 결집’이라 여기는 일차원적 사고로는 국민 마음에 진정으로 다가갈 수 없다. 트럼프는 트위터 팔로어 수에 집착했는데, 대통령 부부는 인스타 셀럽 같은 멋진 사진이 얼마나 많이 공유됐는지에만 관심이 있는 것일까?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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