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윤 대통령 미국서 ‘장진호 전투’ 언급, 중국은 왜 격분했나

등록 2023-05-01 13:59수정 2023-05-01 23:52

[유레카]
윤석열 대통령 미 의회 `장진호 전투' 연설. 김재욱 화백
윤석열 대통령 미 의회 `장진호 전투' 연설. 김재욱 화백

“미 해병대 1사단은 (한국전쟁 당시) 장진호 전투에서 중공군 12만명의 인해전술을 돌파하는 기적 같은 성과를 거뒀다.” 지난 4월27일 윤석열 대통령이 미 의회 연설에서 한 발언에, 중국 정부가 강하게 반발했다.

중국 외교부 마오닝 대변인은 연설 다음날 브리핑에서 장진호 전투는 “항미원조 전쟁에서 중국이 위대한 승리를 거둔 것”이라며 “장진호 전투와 관련해 중국 전쟁사에 따르면, 미군 2만4천명을 포함해 총 3만6천명의 적군을 섬멸했다”, “미군 연대가 전멸하기도 했고, 미 8군 사령관 (월튼) 워커 중장이 혼란 속에서 차량 전복으로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장진호 전투에서만 미군 4500명이 전사했고, 6·25 전쟁에서 미군 약 3만7천명이 전사했다”고 말한 윤 대통령의 연설 내용에 대한 정면 반박이다. 관영 <중앙TV>(CCTV)는 30일 밤부터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을 소재로 한 40부작 드라마 <압록강을 건너다>를 긴급 편성했다.

중국은 한국전쟁에 자국이 참전한 1950년 10월부터 정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7월까지를 ‘항미원조(미국에 맞서 북한을 도운) 전쟁'으로 공식 표현한다. 장진호 전투는 1950년 11월27일 미 해병 1사단이 함경남도 장진호 근처에서 중국군 12개 사단에 포위되어 전멸 위기에 처했다가 치열한 전투 끝에 포위망을 뚫고 철수한 한국전쟁의 중대 분수령이었다. 양측이 주장하는 사상자 숫자는 다르지만, 중국 쪽 사망자가 훨씬 많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워커 중장은 장진호 전투에 직접 참전하지 않았고 의정부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기 때문에 마오 대변인의 발언은 사실과 거리가 있다.

중국은 왜 이렇게 거세게 대응하고 있을까. 백지운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교수는 <항미원조>에서 한국전쟁과 장진호 전투에 대한 중국의 메시지가 지난 몇년 사이에 급격하게 변화했다고 지적한다. 한국전쟁은 오랫동안 중국에서 ‘의도적으로 망각된’ 전쟁이었다. 미중관계가 우호적이었던 시기에 중국 당국은 미국과 관계를 고려해 한국전쟁 관련 기억을 ‘관리’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와 드라마가 상영되지 못했고,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지면에 항미원조라는 용어도 수십년 동안 등장하지 않았다.

미중 대결이 격화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2020년부터 당국은 한국전쟁을 중국이 미국에 맞서 싸운 ‘정의로운 전쟁’으로 부각하는 선전을 강화했다. 이전까지는 사실상 ‘패전’으로 인식되었던 장진호 전투는 미국에 맞서 승리한 ‘혁명 영웅주의’의 상징으로 재조명되었다. 2021년 영화 <장진호>와 2022년 그 속편인 <장진호의 수문교>가 역대 최고 흥행작이 된 이유다. 백 교수는 인민들의 항미원조 전쟁 기억에는 사회주의 국제주의, 북중 우의, 아시아 인민 연대의 의미도 담겨 있었지만, 지금은 국가가 애국주의와 중화주의라는 협소한 내셔널리즘의 구호 속에서 한국전쟁의 기억을 동원하고 있다고 짚고 있다.

윤 대통령은 한국전쟁을 북한·중국·러시아에 맞서 한미가 함께 피를 흘리며 싸운 동맹의 상징으로 강조했다. ‘항미원조’는 미국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었다는 중국의 애국주의와 정면 충돌하고 있다. 1992년 한중 수교로 봉인된 한국전쟁의 기억이 한중관계의 ‘격전지’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

박민희 논설위원 minggu@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귀족부인 앞에 무릎 꿇은 사법 1.

귀족부인 앞에 무릎 꿇은 사법

[사설] ‘저가 논란’ 체코 원전 수주전, ‘원전 르네상스’ 맹신 말아야 2.

[사설] ‘저가 논란’ 체코 원전 수주전, ‘원전 르네상스’ 맹신 말아야

[유레카] 홍명보 감독과 스포츠 정치 3.

[유레카] 홍명보 감독과 스포츠 정치

북한은 남쪽 문을 닫고 살 수 있나 [김연철 칼럼] 4.

북한은 남쪽 문을 닫고 살 수 있나 [김연철 칼럼]

[사설] ‘대통령 독대 요청’ 한동훈 대표, 실질적 성과 끌어내야 5.

[사설] ‘대통령 독대 요청’ 한동훈 대표, 실질적 성과 끌어내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