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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양심을 후쿠시마 오염수에 타서 버리려는 일본 정부 [아침햇발]

등록 2023-06-15 16:24수정 2023-06-15 18:43

일본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서울행동 회원들이 1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역 인근에서 출발 ‘방사선 오염수 중단을 촉구하는 행위극을 펼치며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으로 행진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일본 방사성 오염수 해양투기 저지 서울행동 회원들이 1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역 인근에서 출발 ‘방사선 오염수 중단을 촉구하는 행위극을 펼치며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으로 행진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아침햇발] 정남구 | 논설위원

건물 같은 층에 있는 다른 사무실에서 누군가 담배를 피우기에 꺼달라고 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여기서 내가 담배 한갑쯤 피운다고 당신이 간접흡연으로 암에 걸리는 것도 아니잖아.”

후쿠시마 원전에서 퍼 담은 방사능 오염수를 앞으로 수십년간 후쿠시마 앞바다에 계속 버리겠다는 일본의 태도가 마치 이 사람 같다. 일본은 머잖아 오염수 투기를 밀어붙일 것 같다. 그날 일본 정부는 겨우 한컵 정도나 남은 양심마저 오염수에 타서 버릴 것이다.

2011년 3월 일어난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원전 1∼3호기 1496개의 연료봉에 담겨 있던 핵연료는 일부 연소돼 세슘 등 핵분열 생성물질이 원자로 안에 갇혀 있었는데, 원자로가 손상되자 대량으로 대기 중에 유출됐다. 상당량은 바람을 타고 날아가 전세계로 흩어졌다.

원자로 안에서 녹아내린 핵연료 잔해는 지하수를 오염시키고 있다. 고농도 오염수가 한때 하루 300t씩 바다로 흘러들어갔다. 새나간 총량이 얼마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사상 최대 해양 방사능 오염을 일으킨 1983년 영국 윈드스케일 재처리시설 방사성 폐액 유출 사고 때보다 훨씬 많기는 할 것이다. 후쿠시마 연안에선 지금도 반감기가 긴 세슘에 심하게 오염된 바닷물고기가 잡힌다.

도쿄전력은 오염수를 탱크에 퍼 담아 저장해왔다. 오염수에서 세슘·스트론튬을 흡착장치 사리(SARRY)로 걸러내고, 이어 다핵종제거설비(ALPS)로 삼중수소 외의 관리 대상 핵종들을 배출 허용 기준치 이하로 걸러내고 있다고 한다. 탄소-14야 기준치의 평균 40분의 1가량 들어 있다니 제쳐두더라도, 삼중수소를 전혀 걸러내지 못한 오염수는 ‘사고로 인해 발생한 방사성 폐기물’일 뿐이다. 그것을 바다에 다시 버리는 것은 원전 사고로 인류에 큰 피해를 입힌 데 대한 한줌의 책임감마저 망각한 행위다.

오염수에는 삼중수소가 리터당 평균 68만㏃(베크렐, 1베크렐은 1초 동안 1개의 원자핵이 붕괴할 때 방출되는 방사능 강도) 들어 있다. 리터당 6만㏃인 일본 배출허용 기준치의 10배가 넘는다.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는 방사선 피폭량을 ‘사회적·경제적인 요소들을 고려해 합리적으로 달성 가능한 최저치로 줄인다’(As Low As Reasonably Achievable)는 원칙 아래, 일반인 피폭량을 연간 1밀리시버트 이하로 하라고 권고한다. 리터당 6만㏃은 그것이 담긴 물을 1년에 걸쳐 1t 마실 경우 피폭량이 1밀리시버트 가까이 되는 방사능 농도다. 1밀리시버트는 1만명 중 1명꼴로 암 사망자가 발생할 것으로 여겨지는 수준이다. 교통사고 사망률과 비슷한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하자’는 뜻을 담은 수치일 뿐, ‘안전’을 보장하는 수치는 아니다.

일본 정부는 삼중수소가 들어 있는 오염수에 바닷물을 50배쯤 섞어 농도를 리터당 1500㏃ 아래로 낮춰서 버리겠다고 한다. 바닷물을 퍼다 희석시키자면, 애초 고농도 오염수도 기준치 이하로 만드는 건 아주 쉽다. 지구의 바닷물은 136경t으로, 130만t의 후쿠시마 오염수를 1조분의 1로까지 희석시킬 수 있을 만큼 많기 때문이다. “기준치 이하니까 괜찮다”는 말은 ‘바다는 아주 커서 인간의 삶을 위협할 정도로 오염시키려면 멀었다’는 폭언이나 다름없다.

일본 정부는 오염수 투기를 그만둬야 한다. 일본한테는 돈이 덜 드는 해법일지 몰라도, 이웃 나라에 아무런 이득 없이 위험만 감수하라고 요구할 권리는 없다.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 여당인 국민의힘은 일본 정부를 두둔하기에만 바쁘다. 윤 대통령이 “(후쿠시마 원전에선) 방사능 유출은 안 됐다”느니, “(원전의) 안전을 중시하는 관료적인 사고는 버려야 한다”느니 했던 말과 일관성은 있으나, 도대체 어느 나라 정부인지 의심스럽다.

나는 서해의 소금과 남해의 생선회는 앞으로도 계속 먹을 것이다. 오염수를 생각할 때의 찜찜함보다 안 먹는 경우의 불편이 훨씬 클 것 같아서다. 그런데 우리가 인류 공동의 자산인 바다를 어떻게 망가뜨리고 있는지 생각하면 눈앞이 아득해진다. 후쿠시마 오염수 안의 삼중수소는 900조㏃가량이다. 세계 각국 원전에서는 한곳당 1년에 많게는 100조㏃의 삼중수소를 배출해왔다. 영국, 프랑스, 일본의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시설은 원전보다 몇배에서 몇백배 많이 배출한다. 중금속과 화학물질, 미세플라스틱 오염은 방사능보다 심각하다. 생명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말이다.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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