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바레인 마나마에서 한 노동자가 오후 휴식시간에 더위를 식히기 위해 머리에 물을 뿌리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지구가 이상고온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북미와 유럽, 북아프리카, 동남아, 중동 지역에선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이어지며, 더위 관련 기록을 연일 고쳐쓰고 있는 중이다. 한겨울이어야 할 남미 아르헨티나에서도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기온이 무려 3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운 여름 날씨가 나타나고 있다.
얼마 전 기상 관측 이래 가장 더운 6월이었다는 소식은, 지난달이 역대 가장 더운 7월이라는 소식으로 이어졌다. 지구의 기온이 역대 가장 높은 날이란 기록도 지난달에만 16차례나 경신됐다. 뜨거운 열기로 캐나다와 이탈리아, 그리스 등 지중해 지역엔 대규모 산불이 일어나 많은 숲과 집이 잿더미가 됐다.
땅만 뜨거운 게 아니다. 바다도 유달리 높은 수온을 보인다. 해수면의 평균 수온은 지난 4월 전례 없이 치솟은 뒤 예년보다 1도 안팎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해수면 온도 상승은 해양 생태계 교란은 물론 지구 전체의 기후 패턴에도 큰 영향을 끼칠 것이란 분석이다.
애초 적도 근처의 태평양 해수 온도가 올라가는 엘니뇨 현상이 예고되면서, 올해가 평년보다 더운 해가 될 것이란 전망은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전례 없는 고온과 폭염은 인간에 의한 기후변화의 효과를 빼놓곤 설명할 수 없다는 데 거의 모든 전문가가 이의를 달지 않는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지 않으면 몇년 뒤 올여름을 되돌아보며 ‘그래도 그때는 시원한 여름이었어’라고 말할지 모른다”는 경고도 나온다.
그럼에도 여전히 심각성을 인식하고 행동에 나서려는 정치적 의지가 잘 보이지 않는 건 유감이다. 많은 나라가 탄소배출 감축 계획을 내놓고 실행을 다짐했지만, 현실에선 여러 이해관계에 얽혀 곡절을 겪고 있다. 기후변화와 관련해 가장 앞선 곳인 유럽만 하더라도, 이탈리아·스페인·독일·스웨덴 등 곳곳에서 극우세력이 정치 기반을 넓혀가면서 온실가스 감축 계획이 뒷걸음질 치려고 한다. 극우세력도 더는 기후변화를 대놓고 부정하진 않는 분위기다. 그러나 친환경 정책이 경제활동을 해롭게 하고 불평등을 악화시킨다며 적대감을 감추지 않는 건 여전하다.
이런 상황에서 폴란드와 헝가리 등은 유럽연합(EU)의 석탄사용 감축 방침에 불만을 나타내고 있고, 네덜란드에선 다음달 총선을 앞두고 농민들이 정부의 질소배출 감축 계획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 유럽 최대 자동차 생산국 독일에선 2035년부터 내연기관 자동차의 판매를 금지하려는 유럽연합의 방침에 반발하는 움직임이 조직화하고 있다. 미국은 2021년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파리기후협약에 복귀했지만, 얼마 전 보수적인 대법원은 환경보호청(EPA)의 탄소배출 규제 권한을 제한하는 판결로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3월 윤석열 정부가 첫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을 내놓았지만, 환경단체들은 “산업부문의 탄소 배출 부담을 줄인 사실상 기후위기 대응 포기 선언”이라는 싸늘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기후변화는 이미 현실이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지난달 27일 기자회견에서 “지구 온난화가 끝나고 이제 지구가 끓어오르는 시기가 왔다”고 호소했다. 얼마나 더 두 손 놓고 지켜보고만 있을 것인가. 안타깝다.
박병수 국제뉴스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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