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주최한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시범사업 관련 공청회’가 열린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로얄호텔서울에서 ‘가사노예제도 시범사업’에 반대하는 단체와 개인들이 ‘기습 공청회’를 규탄하며 손팻말을 들고 행사를 지켜보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세상읽기] 장영욱 |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
지난달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에 연사로 나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우리나라의 향후 100년을 좌우할 가장 시급한 과제로 인구정책을 꼽았다. 출산 장려만으로 인구절벽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에 이민정책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이 인상적이다. “냉정히 말하면 출입국, 외국인 정책은 인류애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국익과 우리 국민의 이익을 위한 이민정책이어야 합니다.” 청중석에 앉은 기업인 수백명은 장관의 힘 있는 연설에 박수로 화답했다.
그로부터 보름 뒤, 고용노동부가 ‘외국인 가사근로자 도입 시범사업’ 연내 시행안을 발표했다. 기존 고용허가제(E-9 비자) 범위에 가사·육아서비스 업종을 추가하고, 서울지역에서 6개월 동안 시범 운영하겠다는 계획이다. 고용허가제 틀을 활용하는 만큼 이들에게는 최저임금 포함 내국인과 동일한 노동법이 적용된다. 정부 인증기관을 통해 계약한 시범사업 참여자 100여명이 연말께 한국에 들어올 예정이며, 우선 도입 국가로는 가사인력 자격증 제도가 운용되는 필리핀이 유력하다.
외국인 가사근로자를 들여오는 이유는 한 장관의 연설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국익” 때문이다. 내국인 돌봄서비스 취업자 수는 몇년째 감소 추세지만 돌봄인력 수요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노동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은 고임금의 원인이다. 통근형 가사근로자에겐 통상 최저임금의 1.5배를, 입주형은 최대 월 450만원을 줘야 한다. 2021년 기준 한국 30~40대 중위소득이 월 350만원에 못 미치니, 돌봄인력을 고용하려면 한명분 월급을 다 갖다 줘야 할 판이다. 돌봄비용이 최저임금 수준으로 낮아지면 숨통이 조금은 트이지 않을까 기대해볼 수 있겠다.
실제 외국인 가사인력 도입의 효과를 본 해외 사례들이 있다. 저임금 외국인 가사인력 고용이 싱가포르와 홍콩의 여성 노동시장 참여율을 적게는 3%, 많게는 14%까지 증가시켰다. 돌봄인력이 최저임금 미만을 받아야만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가사서비스 분야 이주노동자 유입이 그 자체로 돌봄비용을 감소시켰고, 여성, 특히 고숙련 직종 여성들이 직장 생활을 이어가는 데 도움을 줬다. 이는 남녀 사이 임금격차 감소로도 이어졌다.
다만, 외국인 가사근로자 제도 도입의 출산율 제고 효과는 분명치 않다. 홍콩과 독일의 개인 단위 자료를 분석한 논문들은 가사도우미 고용이 출산율을 높였다고 보고한다. 가사노동의 외주화로 여성이 직장을 다니면서도 육아를 포기하지 않을 개연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 단위 자료에서 같은 결과를 보여준 연구는 찾기 어렵다. 미국과 영국에서는 이민자 유입으로 양육비용이 줄었음에도 출산율은 그대로거나 감소했다. 외국인 가사근로자 제도가 정착된 홍콩(0.75명, 2021년)과 싱가포르(1.02명)의 합계출산율은 우리나라(0.81명)와 더불어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외국인 가사근로자 제도만으론 인구절벽 문제를 해결하기 역부족이라는 방증이다.
정리하자면, 외국인 가사인력 도입은 돌봄비용을 절감하여 육아기 여성 노동참여율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 이 정책 하나만 갖고 출산율을 획기적으로 올릴 순 없겠지만, 일-가정 양립을 위한 여러 정책과 연계할 수 있는 좋은 수단임은 분명하다. 한동훈 장관 지적대로, 숙련, 비숙련 직종에서의 외국인력 유입은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가사·육아서비스 업종이라고 예외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한가지는 분명히 하자. “우리의 국익”은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이주노동자들의 이익과 배치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재 많은 이주노동자가 ‘비용 절감’을 이유로 열악한 시설과 환경에서 장시간 위험한 노동을 강요받고 있다. “인류애”는 쏙 빼고, 외국인 노동자를 단순히 우리 국익을 증진하기 위한 도구로만 인식한다면 이들의 근로 및 정주 여건 개선도 요원한 일이 된다. 그 결과 발생한 사회갈등은 그 자체로 생산력을 떨어뜨리고, 장기적으로 필요한 외국인 노동력 확충을 어렵게 만든다. 그 손해는 결국 우리 사회 전체에 쌓이게 된다.
외국인 가사도우미, 받아야 한다. 대신 ‘도구’가 아닌 ‘사람’으로 받자. ‘최저임금 예외’ 같은 시도는 그만두고, 내국인 노동자와 차별 없이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 대우받도록 제도와 인식을 마련해가자. 그게 우리 국익에 부합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