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위험 한계선 또는 행성 경계(planetary boundaries) 평가. 각 그림의 가운데 지구 모양 영역이 안전한 상태를 가리킨다. 이런 형식의 지표 평가를 처음 제시한 2009년 네이처 논문에서는 생물다양성, 기후변화, 인과 질소 순환이라는 세가지 지표가 안전 영역을 넘은 것으로 평가됐다. 새로운 화학물질과 대기 에어로졸 지표는 평가할 자료가 불충분해 빈칸으로 남겨두었다. 2023년 평가에서는 아홉가지 지표가 처음으로 모두 평가됐다. 새로운 화학물질, 민물, 토지이용(산림파괴) 지표가 안전 영역을 벗어난 것으로 새로 평가돼, 아홉 지표 중 여섯이 위험 상태임을 보여준다. 해양 산성화는 안전 경계 부근에 이르렀다. 스톡홀름복원력센터 제공
오철우 | 한밭대 강사(과학기술학)
지구 생물과 지질, 대기 시스템이 안전한 상태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한눈에 보여주는 과학자들의 평가가 최근 발표됐다. 덴마크·독일·스웨덴 등의 연구자 29명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낸 논문에서 ‘지구 위험 한계선’을 나타내는 아홉가지 지표 가운데 여섯이 안전 수준을 벗어난 것으로 평가했다.(
한겨레 9월15일치 14면) 이런 결과는 지구 위험 한계선이라는 개념이 처음 제안된 2009년 평가 때보다 더 나쁜 성적표다.
우리말로는 지구 위험 한계선으로 불리지만 직역한 본래 용어는 ‘행성 경계’(planetary boundaries)다. 인류가 생존하는 데 필요한 지구 시스템의 한계선(경계)을 선정하고 그것을 수치로 평가할 수 있게 만든 지표다. 스웨덴 스톡홀름복원력센터가 주도해 개발한 지표에는 기후변화, 생물다양성, 해양 산성화, 민물, 인과 질소 순환, 토지 이용(산림 파괴), 새로운 화학물질, 성층권 오존, 에어로졸(미세먼지) 등 아홉가지가 들어가는데, 이번 논문에선 오존층과 에어로졸, 바다 산성화를 뺀 나머지 여섯 지표가 모두 빨간불로 평가된 것이다.
지구 위험 한계선은 지표의 경계로 선정한 값이 임의적일 수 있다는 논란을 겪기도 했지만, 지금은 대체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구 행성의 환경과 기후위기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는 한계선 그림이 자주 등장한다. 무엇보다 지구를 생물, 지질과 인류가 상호작용하는 유한한 시스템으로 바라본다는 점,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지표를 한꺼번에 다룬다는 점이 장점이다.
학술검색 사이트를 검색해보면, 2009년 첫 논문이 그동안 무려 1만3900여회나 인용됐다. 이 논문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 보여주는 수치다. 또 위키피디아 자료를 보면, 2012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속가능성과 관련해 “기후변화에 맞서 싸우고 행성 경계를 존중해야” 한다고 언급한 이래 이 말은 유엔의 여러 문서에서 곧잘 사용된다.
2009년 이후 분석 틀에는 변화도 있었다. 처음엔 안전·불확실·위험이라는 세가지 상태로 지표를 평가했는데, 이번 논문부터는 평가 틀을 안전과 위험 두가지로 정리했다. 2009년에는 평가할 자료가 불충분해 화학물질과 에어로졸 지표를 빈칸으로 남겨두었지만, 이번에는 그간의 연구와 데이터를 종합해 처음으로 아홉 지표를 모두 다 채웠다.
연구진이 말하듯이 지표들은 산업화 이후, 특히 1950년대 이후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인간 활동이 지구 시스템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새로운 지질시대, 즉 인류세로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물론 경계를 넘는다고 바로 낭떠러지로 떨어진다는 건 아니다. 한 연구자는 경계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 “지구를 우리 몸으로, 행성 경계를 혈압으로 생각해보죠. 120/80 혈압이 심장마비를 의미하지 않더라도 위험이 커지므로 우리는 혈압을 낮추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지구 건강 관리에 희망적인 선례도 있다. “오존층 파괴가 1990년대에 경계를 넘었지만 (함께 노력한 덕분에) 이제 더는 경계를 넘지 않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