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공원 교차로 일대에서 열린 공교육 회복을 위한 국회 입법 촉구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황보연 |논설위원
“‘선생님께선 대체 무엇을 했느냐’는 질문을 안 받아본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학폭이 벌어지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파악하려는 교사의 노력이 왜 가해학생에게는 낙인으로, 피해학생에게는 부당한 일로 비쳐야 합니까. 학생이 다치거나 물건을 잃어버려도 우리는 (같은) 질문을 받습니다. 대체 우리는 무엇을 하지 않은 겁니까.”
지난달 26일 국회 앞에서 열린 6차 추모집회에서 소담이 선생님(전북의 12년차 초등교사)은 이렇게 호소했다. 전국에서 모인 교사들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눈물을 훔쳤다. 두달여 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초구 초등교사도 비슷한 말을 들었을지 모른다. ‘대체 뭘 했느냐’는 학부모의 민원은 ‘아동학대 신고’로 이어져 교사를 공격하는 무기가 된다. ‘교권보호 4법’이 21일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었지만, 교사들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여긴다. 아동학대처벌법과 아동복지법 개정 없이는 달라질 것이 없다는 불안감이 크다.
아동학대 신고가 교사에게 공격 수단이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2017년 5월, 대구의 한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현장 체험학습을 위해 버스를 타고 가던 중에 심한 복통을 호소했다. 버스기사가 정차할 곳이 마땅치 않다고 하자, 담임교사는 학생을 버스 뒤편으로 데려가 비닐봉지에 용변을 보게 했다. 이 과정에서 수치심을 느낀 학생은 집으로 가겠다고 했고, 담임교사는 어머니가 데리러 오기로 한 것을 확인한 뒤 고속도로 휴게소에 내려줬다. 이후 사태는 긴박하게 흘러갔다. 학생의 어머니는 ‘아이가 약 1시간 방치됐다’고 관할 교육청에 민원을 넣었다. 담임교사는 8일 만에 직위해제 처분을 받았다. 검찰과 법원은 ‘교육을 소홀히 한 방임행위’라며 아동학대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1심에서 벌금형 800만원을 선고받고 교직을 떠나야 했던 교사는 항소심에서 선고유예 결정을 받고서야 복직할 수 있었다.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 미흡을 이유로 받기엔 가혹한 벌이었다.
2014년 제정된 아동학대처벌법은 가정폭력 위험에 처한 아동을 구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가해자의 80% 이상이 부모이고, 가정 내에서 학대를 당하더라도 은폐되는 경우가 많아, 아동학대 범죄의 처리 절차에 관한 특례를 만든 것이다. 누구든지 아동학대라는 의심만 들어도 경찰에 신고할 수 있게 했다. 교사에게도 이상 징후가 보이는 학생이 발견되면 신고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그런데 ‘교사의 태도가 못마땅하다’고 아동학대 신고를 하는 학부모들이 생겨났다. 자녀의 의사에 반하는 훈육을 문제삼거나 학교폭력이 발생했을 때 자녀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는 이유가 많았다. 아동복지법 17조는 11개의 아동학대 행위를 규정하고 있는데,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행위’가 빌미가 됐다. 포괄적 해석이 가능한 ‘정서적 학대’ 개념이 교사를 공격하는 수단으로 악용된 것이다. 실제로 최근 5년간 교사가 아동학대 혐의로 수사를 받은 1252건 가운데 경찰 종결 및 불기소 처분은 676건(53.9%)으로, 전체 아동학대 사건에서의 비중(14.9%)과 차이가 크다.
어떻게 문제를 풀어가야 할까. 교사들은 ‘정서적 학대’ 행위에서 ‘교원의 학생생활지도’를 제외해달라고 요구한다. 교육활동이 아동학대로 신고된 경우 시도교육청에 전담조직을 설치해 사례 판단을 받게 하는 방안도 논의된다. 현재는 지방자치단체가 관할하는데, 최근 대전광역시 위탁을 받은 아동보호전문기관(세이브더칠드런)이 억울하게 신고를 당한 교사에 대해 ‘정서적 학대’라는 의견을 경찰로 보냈던 사실이 드러나 공분이 일었다. 다만 교사에게만 ‘완전 면책’을 부여하기가 쉽지 않고, 아동학대 발생 장소에 따라 대응 체계를 이원화하는 것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문제다.
법으로 모든 것을 정하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 정부는 ‘정당한 교육활동’을 지켜준다고 했지만, 정작 일선 학교에선 ‘정당한’ 교육활동이 무엇인지조차 갈피를 못 잡는다. 그만큼 교사들이 위축돼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교사의 직무상 권한이 분명하게 정립되려면 교육주체 간 합의와 신뢰가 쌓여야 한다. 교사에게 ‘뭘 했느냐’고 묻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묻자. ‘공격적’ 질문 대신 ‘회복적’ 질문이 많아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교육활동 침해 여부를 판단하고 궁지에 몰린 교사를 보호하는 시스템 구축은 매우 중요하다. 학교장에게만 맡겨서 될 일이 아니다. 정부의 교권 회복 대책들이 작동하려면, 인력과 예산이 제대로 뒷받침돼야 한다.
황보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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