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무기거래라면 과연 두 나라 정상이 직접 만날 필요가 있었겠는가? 더군다나 유엔 제재를 위반하는 거래인 만큼 정상회담을 통해 드러내고 과시하기보다는 꼭꼭 숨어서 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았을까? 정상회담에서 실제 무기거래가 언급되었는지 판단할 만한 자료가 부족하지만,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이 만남의 의미로는 세가지 정도를 짚어볼 수 있겠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13일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최근 김정은과 블라디미르 푸틴의 정상회담은 한국에서도 유럽에서도 세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사실 김정은과 푸틴의 만남 자체는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러시아의 한반도 외교에 ‘균형’을 잡겠다는 푸틴은 집권 초기에 이미 평양을 방문했으며, 4년 전 김정은을 만나기도 했다.
사실 두 정상의 회담보다 나를 더 놀라게 한 것은 그 회담에 대한 구미권 언론의 반응이었다. 대부분의 언론은 러시아와 북한의 ‘무기거래설’을 거의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물론 북한이 러시아와 같은 구경의 포탄을 대량 생산하고 있고, 현재 러시아에 그것이 필요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또 여태까지 북한이 무기 수출로 외화를 벌어온 점 등으로 미루어 보면 그런 거래의 개연성은 부정할 수 없다.
한데 개연성 있는 일을 마치 이미 이루어진 일처럼 간주하는 태도는 사실에 근거해야 하는 언론 보도의 테두리를 한참 벗어났다. 그리고 이 정상회담에 관해 서방 언론들은 다음과 같은 그 핵심적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단순 무기거래라면 과연 두 나라 정상이 직접 만날 필요가 있었겠는가? 더군다나 유엔 제재를 위반하는 거래인 만큼 정상회담을 통해 드러내고 과시하기보다는 꼭꼭 숨어서 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았을까? 정상회담에서 실제 무기거래가 언급되었는지 판단할 만한 자료가 부족하지만,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이 만남의 의미로는 세가지 정도를 짚어볼 수 있겠다.
가장 확실한 것은 남한에 대한 경고성 메시지였다. 한·미·일 사이 군사적 밀착의 강화가 북한에 ‘도전’으로 인식되었다면, 남한산 무기가 우회 수출을 통해 우크라이나 전장에 이미 투입됐을 가능성이나 앞으로 우크라이나에 제공될 개연성은 러시아에 현실적 위협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구체적 불만의 사유는 조금씩 다르지만, 윤석열 정권이 한-미 동맹에 맹목적으로 올인하는 것이나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공급 문제에서 미국에 맹종하는 태도 등에 관해서는 북·러가 극도로 비판적인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따라서 무기거래나 러시아의 첨단무기 기술의 북한 유출 같은 무수한 주장을 낳은 이번 회담은, 윤 정권의 외교 노선이 지금까지와 같은 식으로 지속될 경우 북·러가 공동 대응할 것이라는 예고로 해석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둘째는 일종의 ‘가치동맹’ 과시다. 가치동맹이란, 한국의 보수주의자들이 특히 한-미 관계를 일컬어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다. 한데 북한과 러시아를 각각 통치하고 있는 보수적 당 관료와 보안기관 출신 관료집단 등도 나름대로 공유하는 가치들이 있다. 한-미 사이에 공유되는 가장 중요한 가치라면 아마도 사유재산제와 사유재산을 가진 개개인이 누릴 수 있는 권리, 그리고 전체적 시스템의 안정성을 보장해주는 “큰 틀에서 시스템의 규칙에 합의하는” 여야 사이의 정기적 권력교체 정도일 것이다. 이런 가치들은 일면 시스템의 반대자들에게도 일정한 발언권을 허용해주지만, 일차적으로 재산가의 위험 부담을 줄여주는 등 “재산을 가진 개인” 본위로 규정돼 있다.
반면 서방과 역사적으로 대립하거나 ‘따라잡기’ 시도를 반복해온 주변부적 제국인 러시아나, 세계 체제 핵심부와 대립해온 탈식민 국가 북한에 핵심적 가치는 국가의 주권, 즉 시스템 자체의 생존이다. 반대자들이 설 자리가 없거나(북한) 계속 줄어드는(러시아) 것은 물론이고, 재산가들도 국가 주권의 존속을 담보해준다는 관료집단의 지배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 것이 북·러가 공유하는 시스템의 실질적 작동 규칙이자 가치다. 러시아에 미국이란 자국의 제국적 영향권을 위협하는 좀 더 힘센 경쟁자인가 하면, 북한에 미국은 체제 존속에 대한 잠재적 위협 그 자체다. 즉, 이유는 각각 약간씩 다르지만 둘 다 미국 글로벌 패권의 상대화와 자신들과 같은 비주류 행위자들에 더욱 넓은 운신의 폭을 허용하는 새로운 국제 질서의 도래를 희망한다. 김정은이 푸틴의 “성스러운 싸움”에 본인도 “같이하고자 한다”는 의지를 밝힌 것은, 단순한 외교 수사라기보다는 이런 근본적 공통 지향의 반영이라고 봐야 한다.
세번째 의미는 특히 과도하게 높은 중국 의존성을 낮추려는 시도일 것이다. 국제 제재와 남북 교역 중단으로 북한 전체 교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2022년 96.7%까지 올랐다. 이 정도면 ‘절대적 종속’에 가까운 상황이다. 중국과 북한 사이에 ‘혈맹’ 같은 정치적 수사들이 계속 오가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수사일 뿐이고 실은 ‘동상이몽’이야말로 북-중 관계의 실질을 가장 정확히 가리키는 성어일 것이다. 자국의 생존이 최우선 순위인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에 절대적 의미를 부여해왔지만, 북핵이 초래할 수 있는 지역 안보질서의 균열 그리고 이를 계기로 심화할 수 있는 미국의 개입 등을 경계하는 중국은 사실 북핵을 애당초부터 반대해왔다. 2016~2017년 북한의 핵실험 이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채택한 대북 제재 결의안들은 사실 미국과 함께 중국이 주도했고, 이로 인해 북한과 잠시 노골적 갈등을 일으키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이 지지부진해 전쟁의 늪에 빠진 러시아로서도 전례 없는 중국 의존 심화는 여러모로 버겁기만 하다. 결국 두 나라 정상이 만난 것은, 사실 남한에 대한 메시지이자 중국에 대한 메시지이기도 했고, 북·러가 공유하는 가치나 지향과 관련한 대외적 선언이기도 했다.
물론, 한·미가 대변하는 극단적 유형의 자본주의가 인류의 밝은 미래와 무관하듯이, 북·러 양국 지배자들의 가치·지향은 보편적 인류 해방이나 기후 정의 등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한데 북·러의 정치 구조가 당분간 바뀔 가능성이 없는 만큼, 북방의 이웃인 그들의 우려 사항을 적어도 무시하지 말고 외교노선을 결정할 때 함께 고려하는 것이다. 대미 맹종, 한-미 동맹 맹신, 그리고 맹목적 대북 적대가 오늘의 북-러 밀착을 초래하는 데에 큰 역할을 한 만큼 ‘윤석열 외교’에 관한 비판적 성찰과 궤도 수정이 우리에게 우선 필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