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엔유(SNU) 팩트체크’ 누리집 첫 화면
|이종규의 저널리즘책무실] 이종규 | 저널리즘책무실장·논설위원
부끄러운 고백 먼저 해야겠다. 우리나라에 이처럼 훌륭한 팩트체크 사이트가 있다는 걸 제대로 알지 못했다. 양질의 팩트체크 콘텐츠를 6년 넘게 꾸준히 생산하는 동료 기자들이 있다는 게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가 2017년 3월부터 국내 언론사들과 함께 꾸려온 ‘에스엔유(SNU) 팩트체크’ 서비스 얘기다.
물론 서울대에 팩트체크센터가 생겼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꼼꼼히 들여다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팩트체크는 언론사들이 각자 알아서 하면 되는 일 아닌가 싶었다. 따지고 보면 모든 취재의 기본이 팩트체크 아니던가. 최근 에스엔유 팩트체크 사이트를 둘러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팩트체크 저널리즘’이라는 영역이 제대로 자리잡을 필요가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에스엔유 팩트체크는 정치인의 발언 등 공적 사안의 사실 여부를 제휴 언론사의 팩트체커(기자)들이 검증하는 플랫폼이다. 취재를 통해 ‘전혀 사실 아님’. ‘대체로 사실 아님’, ‘절반의 사실’, ‘대체로 사실’, ‘사실’ 등 5단계로 평가한다.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검증에 활용한 근거 자료도 함께 제시한다. 지금까지 모두 4765건의 팩트체크가 이뤄졌는데, 한 건당 평균 3.9개의 근거 자료가 활용됐다. 2017년 0.45개에서 올해 7.9개로 크게 늘었다. 그만큼 검증의 질이 높아졌다는 의미다.
한 사안에 대해 여러 언론사들이 교차검증을 한다는 것도 에스엔유 팩트체크의 특징이다. 이용자들이 언론사들의 검증 결과를 비교해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언론사들이 내놓은 판정 결과에 3단계 이상 차이가 날 경우 ‘논쟁 중’이라는 표시가 붙는다. 신문사와 방송사 등 32곳이 팩트체커로 참여하고 있다. 2018년 초부터는 네이버와 제휴를 맺고 이 서비스를 뉴스홈 메뉴의 하나로 제공해왔다.
내가 이 서비스에 뒤늦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순전히 정부의 ‘포털 때리기’ 덕분이다. 네이버는 지난달 25일, 6년 가까이 지속돼온 에스엔유 팩트체크 서비스를 중단한다고 밝혔다. 네이버는 “사업적인 측면에서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지만, 서비스 중단 배경에 여당의 압박이 있었을 거라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국민의힘은 그동안 네이버가 정부·여당에 불리하게 뉴스를 편향적으로 노출하고 있다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를 대며 네이버에 대한 공격 수위를 높였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네이버의 뉴스 검색 알고리즘과 관련해 사실조사에 착수한다고 밝힌 날, 네이버의 팩트체크 서비스 중단 발표가 나온 것도 공교롭다. 실제 국민의힘은 에스엔유 팩트체크 서비스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왔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팩트체크는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척결’하고자 하는 ‘가짜뉴스’에 맞설 해독제로 꼽힌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 6월 연 언론포럼의 제목이 ‘가짜뉴스 vs 팩트체크: 끝날 수 없는 전쟁’이었다. 정부·여당의 ‘가짜뉴스와의 전쟁’이 진심이라면, 언론계에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팩트체크 서비스를 불편해할 이유가 전혀 없다.
에스엔유 팩트체크에 대한 국민의힘의 반감은 뿌리 깊다. 국민의힘의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2017년 서울대 팩트체크센터를 고발하고,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좌편향’을 이유로 들었다. 올해 1월에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민의힘 간사인 박성중 의원이 ‘팩트체크를 가장해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 등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사업’에 네이버가 판을 깔아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에스엔유 팩트체크에는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국경제, 채널에이(A) 등 보수 언론사도 다수 참여하고 있다. 제휴 언론사 32곳 가운데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좌편향’ 매체는 문화방송(MBC)과 오마이뉴스 정도다. 한겨레와 경향은 들어가 있지도 않다. 정부·여당이 ‘거짓’ 판정을 받은 건수가 많다면, 그만큼 허위 발언을 많이 했다는 방증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대통령을 포함한 정부·여당에 검증이 집중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2017년 민형사 소송에서도 자유한국당이 완패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그동안 정부에 비판적인 보도에 습관적으로 ‘가짜뉴스’ 딱지를 붙여왔다. 그들의 ‘가짜뉴스’ 판별 기준은 자명하다. ‘우리 편에 유리한가 불리한가.’ 그러니 팩트체크 따위가 중요할 리 만무하다. ‘가짜뉴스’라고 쏘아붙이기만 하면 더 이상 해명은커녕 대꾸할 필요도 없으니 요술 방망이가 따로 없다.
네이버가 에스엔유 팩트체크 서비스 중단을 발표한 날, 32개 제휴 언론사 팩트체커들은 입장문을 내어 이렇게 밝혔다. “우리는 보수를 지향하지도, 진보를 지향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팩트를 지향한다. 진실에 복무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가짜뉴스’와의 전쟁?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jk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