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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시엔 재판 없이 죽일 수도”…무지하고 자격 없는 김광동 위원장

등록 2023-11-01 07:00수정 2023-11-01 14:41

김광동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이 지난 10월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김광동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이 지난 10월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세상읽기] 임재성|변호사·사회학자

이 글의 목적은 하나다. ‘전시에는 재판 없이 죽일 수 있다’라는 말이 명백한 허위라는 점을 입증하는 것. 법치주의는 좌든 우든, 독재든 민주주의이든 부인할 수 없는 문명국가의 원칙이다. 독재자라도 흉내는 낸다. 그런데 국가가 재판절차 없이 국민을 죽일 수 있다는 말을, 2023년 대한민국 장관급 인사가 서슴없이 내뱉는다.

김광동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은 지난달 10일 한국전쟁 시기 민간인 학살 피해자 유족들을 만나 ‘6·25 전쟁 같은 전시하에서는 재판 등이 이뤄질 수 없으므로 적색분자와 빨갱이를 (재판 없이) 군인과 경찰이 죽일 수도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같은 달 13일 국정감사에 출석해서도 “적대세력에 가담해서 방화와 살인을 저지르는 가해자에 대해서는 당시 상황에서 즉결처분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이후 한겨레 기자의 ‘가짜뉴스 아니냐’는 질문에 “계엄법에 다 있다”고 답변했다.

김 위원장 말을 정리하면 이렇다. ①전시지만 직접적 교전 중이 아닌 상황에서 ②적 정규군은 아닌, 범죄 또는 부역행위가 의심스러운 민간인에 대해서 ③군·경이 재판 없이도 죽일 수 있다는 것. ‘죽일 수 있다’라는 것은, 그 행위가 적법하다는 뜻일 것이다. ④그가 적법하다며 근거로 든 것은 ‘재판이 열릴 수 없었다’ ‘계엄법에 규정이 있다’이다.

계엄법부터 보자. 1948년 7월17일 제정·시행된 대한민국 헌법 제22조는 재판받을 권리를 모든 국민의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다. 이 권리가 전시에 계엄이 선포되면 멈출까? 한국전쟁 시기 적용된 계엄법(법률 제69호, 1949년 11월24일 시행)에는 제13조에서 “비상계엄지역 내에서는 계엄사령관은 군사상 필요할 때에는 체포, 구금, 수색, 거주, 이전, 언론, 출판, 집회 또는 단체행동에 관하여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고 계엄시 제한할 수 있는 기본권을 열거하고 있는데, 여기에 ‘재판받을 권리’는 없다. 계엄법뿐만 아니라 제헌헌법, 한국전쟁 당시 군형사법의 기능을 한 국방경비법 그 어디에도 재판 없이 처분할 수 있다는 규정은 없다. 김 위원장님, 무슨 법 몇조 몇항인지 알려주시라.

‘재판이 열릴 수 없었기에 그랬다’는 주장도 전혀 근거가 없다. 계엄규정에서 핵심은 재판권 행사이다. 전시 등 비상상황에서 체포, 수사, 재판, 처벌은 매우 중요한 치안 활동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948년 10월 여순사건에서 첫 계엄이 선포된 이후 한국전쟁 내내 계엄하 군사법원이 각 지역에 설치되었고 민간인에 대한 재판도 이어졌다. 당시 군사재판이 절차규정을 깡그리 무시하고 불법구금과 고문 속에서 초법적 처형기구로 작동했다는 점은 공인된 사실이다. 그러나 최소한, 전시(계엄) 중에도 재판은 열렸다.

계엄하 재판 없이 사람을 죽이는 ‘즉결처분’이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다. ‘위반하는 자는 군율에 의하여 총살에 즉결’한다는 내용의 계엄 포고문도 1948년 11월께부터 확인된다. 그러나 앞서 살핀 것처럼 모두 헌법과 계엄법에 근거가 없는, 위헌적이고 위법한 관행과 포고였다. 존재했다는 것과 적법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진실화해위는 2010년 발간한 종합보고서에서 이미 한국전쟁 전후 ‘즉결처분’ 계엄포고는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과도하게 기본권을 제한하는 계엄포고들을 무효라고 보고 있다. ‘재판 없이 처형이 가능했다’, 즉 ‘적법했다’는 허위사실이다.

필자는 2016년부터 제주4·3 시기 위법한 재판을 받고 희생된 분들의 재심사건을 수행하고 있다. 그중 계엄하 군사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희생자도 있다. 사법부는 계엄이라도 적법한 수사와 재판절차가 지켜지지 않으면 국가의 책임이라고 일관되게 판단하고 있다. 제주지방법원 4·3사건 무죄 판결문 마지막이다. “만시지탄이 될지 모르나 이 재심판결로써 망인들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면서, 그 영혼들이 안식할 수 있기를, 그리고 긴긴 세월 동안 한이 쌓일 수밖에 없었던 망인들의 유족들이 위로받기를 기원합니다.” 이게 법치주의다.

국가폭력의 진실을 규명하고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국가기구의 수장으로서 절대 하면 안 되는 말을 딱 하나 꼽으라면 ‘국가가 죽일 수 있다’이다. 죽일 수 없고, 죽여서는 안 되며, 죽였다면 고개 숙이고 책임져야 한다. 무지하고 자격 없는 위원장이시여. 사퇴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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