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국회 행안위 국정감사장에 출석한 김광동 진실화해위 위원장(가운데).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전시에는 재판없이 죽일 수 있다”는 발언을 이어왔던 김광동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 위원장이 이번에는 “즉결처분은 군법회의를 포함하는 것”이라고 엉뚱하게 말을 뒤집었다. “즉결처분 자체가 곧 재판”이라고까지 했던 그가 관련된 법적 근거를 대기 궁색해지자 스스로도 혼란에 빠진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26일 오후 열린 국회 행안위 국정감사에서 이성만(무소속) 의원이 “전시 즉결처분의 법적 근거가 무엇이냐”고 묻자 “국방경비법과 계엄법”이라고 답했다.
이 의원이 이에 대해 “1949년 11월24일 제정된 당시 계엄법 제16조에 의하면 전시 계엄하에서도 군법 회의에서 재판하게 되어있다”고 하자, 김 위원장은 “제가 말씀드린 즉결처분은 군법회의를 포함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7일 열린 진실화해위 전체위원회에서 야당 추천 위원들이 즉결처분 발언에 관해 묻자 “즉결처분 자체가 재판”이라며 “재판이 열리지 않는데 어떻게 재판을 하느냐”고 되묻기도 한 바 있다. 한데 이날 국정감사에선는 “즉결처분이 군법회의를 포함한다”고 말한 것이다. 즉결처분은 사법절차를 거치지 않은 상관의 제재를 가리키는 말이다. 진실화해위의 한 관계자는 “김광동 위원장이 즉결처분과 군법회의를 구분하지 못하고 말했다면 위원장 자격이 없을 만큼 무지한 것이고, 알면서도 그랬다면 거짓말을 하려다가 앞뒤가 안 맞게 논리가 꼬인 것”이라고 평했다.
26일 오후 열린 국회 행안위 국정감사에서 이성만(무소속) 의원이 질의하고 있다. 이성만 의원실 제공
이성만 의원은 “즉결처분이란 ‘전장을 이탈하는 군인에 대한 지휘관의 조치’를 의미한다”며 반인륜적 인권 유린 행위로 각각 진실화해위와 대법원에서 결론이 난 윤태현 소령 사건과 허지홍 대위 사건을 소개했다. 김 위원장은 ”즉결 처분으로 처벌을 받았다 하더라도 그것이 잘못된 경우에 대해서는 다 희생자로 구제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민간인에 대한 즉결처분은 ‘일부 잘못된 경우’가 아니라 모두 잘못된 것이다. 김 위원장이 법적 근거로 언급한 국방경비법과 계엄법 뿐 아니라 국가보안법과 당시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발동한 비상사태하범죄처벌에관한특별조치령(비상조치령) 등 어디에도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즉결처분을 뒷받침하는 조항은 없다.
이성만 의원은 “법적 근거를 가지고 얘기하는데 어디서 위증을 하느냐. 고발조치 당할 줄 알라”고 김 위원장을 질타한 뒤 행안위 상임위원장인 김교흥 의원에게 “김광동 위원장은 사퇴시켜야 하고 역사 앞에서 이런 사람이 위원장 된다는 게 진짜 창피하다”고 말하면서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앞서 김광동 위원장은 이달 10일 영천유족회원과의 면담, 13일 국정감사, 17일 진실화해위 제64차 전체위원회, 18일 한겨레와 만난 자리 등에서 “전시에는 민간인에 대한 즉결처분이 가능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왔다. 23일엔 진실화해위에 몸담았던 위원과 조사관, 연구자·시민 등 3460명이 성명을 내어 김 위원장의 즉결처분 발언을 비판한 바 있다.
고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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