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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전쟁 보도로 ‘전쟁’ 치르는 언론들

등록 2023-11-02 15:35수정 2023-11-03 02:37

지난 29일(현지시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교전이 일어난 가자지구에서 커다란 포연이 일어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지난 29일(현지시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교전이 일어난 가자지구에서 커다란 포연이 일어나고 있다. AFP 연합뉴스

[코즈모폴리턴] 신기섭 | 국제뉴스팀 선임기자

“이 주장은 우리가 독자적으로 검증할 수 없었다.”

지난해 2월 말부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쟁 보도를 담당하면서 외신 기사에서 가장 많이 접한 문장이다. 전쟁 당사자들의 일방적인 주장을 전달하되, 그 주장이 객관적으로 확인된 건 아니라는 점을 독자들에게 상기시킬 때 관례적으로 쓰는 표현이다.

이 문장을 접할 때마다 두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우선 “확인되지 않은 걸 전하면서 이런 문장으로 책임을 덜어 보자는 꼼수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전쟁처럼, 일방적인 주장이 난무하는 특수 상황에서도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고심의 산물이지” 싶다. 마음이 더 기우는 쪽은 아무래도 후자다.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부터 확인하면서 “오늘은 기사를 어떻게 써야 할까” 고민한, 개인적 경험 때문이다.

지난달 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이후 전쟁 상황을 전하는 외신 기사들에도 이 문장은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렇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보도와 달리, 이 정도의 ‘객관화 장치’만으로는 논란을 피하지 못한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대립이 워낙 뿌리 깊고 미국이나 영국 등 서양 여러 나라에는 이 대립을 ‘남의 일’로 여기지 않는 이들이 많은 까닭이다. 게다가 지배층의 친이스라엘 성향도 아주 강해서, 언론이 반이스라엘 또는 반유대인 성향을 조금만 보여도 심하게 공격받는다.

요즘 서양 언론들이 받는 압박 중에는 하마스를 ‘테러리스트’로 표현하라는 압박이 있다. 영국 정치인들은 전쟁 초기부터 공영방송 비비시(BBC)가 하마스를 테러리스트로 표현하지 않는 걸 문제 삼았다. 지난달 16일 총리실 대변인은 “많은 언론 기관이 하마스를 테러리스트 집단으로 정확히 묘사하고 있다. 모든 상황에서 정확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비비시를 압박했다. 이에 비비시는 자신들의 임무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설명해 대중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맞섰다. 사실 비비시는 친이스라엘이라는 비판도 종종 받아왔다.

프랑스의 대표 통신사 아에프페(AFP)도 같은 압박을 받고 있다. 프랑스 정치권에서 이 문제가 논란이 되자, 이 통신사는 지난달 28일 이에 대한 견해를 보도자료 형태로 배포했다. 아에프페는 이 글에서 “편견 없이 사실을 보도한다는 사명에 따라, 아에프페는 직접적인 인용이나 출처가 있는 경우를 빼고는 운동이나 집단, 개인을 테러리스트로 표현하지 않는다”며 “이런 정책은 다른 국제 언론들의 편집 정책과도 일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테러리스트라는 용어는 고도로 정치적이고 감정을 자극하는 것”이라며 “많은 정부가 자국 내 저항·반대 운동을 테러리스트로 낙인찍는다. 이렇게 낙인찍힌 저항 운동이나 개인들이 국제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자국 내 주류 정치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인종차별에 맞서 싸운 인권운동가 출신의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을 대표 사례로 거론했다.

언론이 아무리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애써도 독자들에게는 한쪽으로 치우쳐 보이기 십상이다. 하지만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노력만큼은 보호해줘야 한다. 이 노력은 결국 독자들의 알 권리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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