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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2003년 3월9일 ‘검사와의 대화’, 20년 뒤 ‘검찰 대통령’ 예고하다

등록 2023-11-21 14:25수정 2023-11-22 02:37

한국대통령제 100년 결정적 장면들_12
노 대통령과 ‘검사와의 대화’ ①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3월9일 정부서울청사 대회의실에서 평검사 대표 40명과 검찰개혁에 관한 토론회를 갖고 있다. 이 토론회는 텔레비전으로 전국에 생중계됐다. 오른편 뒷줄 맨 앞에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던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이 보인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3월9일 정부서울청사 대회의실에서 평검사 대표 40명과 검찰개혁에 관한 토론회를 갖고 있다. 이 토론회는 텔레비전으로 전국에 생중계됐다. 오른편 뒷줄 맨 앞에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던 문재인 대통령의 모습이 보인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노무현 정부 들어서 첫 번째 장관·청와대 수석비서관 워크숍이 열린 다음 날인 2003년 3월8일 아침, 강금실 법무부 장관은 노 대통령의 전화를 받은 거로 기억한다. ‘평검사들과 토론회를 할 테니 준비해달라’는 내용이었다. 3월6일 실시한 검찰 고위직 인사에 대한 검사들의 반발이 확산하는 시점이었다. 전날 워크숍에서 이 문제가 거론되긴 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한 사안이었다. 그런데 밤새 노 대통령이 혼자 고민한 끝에 결정을 내린 듯싶었다. 강 장관은 반대했다고 한다. 장관이 검사들을 만나는 건 몰라도 대통령이 직접 일선 검사들과 토론회를 여는 건 형식 면에서나 시기적으로나 바람직하지 않다는 생각에서였다고 그는 밝혔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던 문재인 대통령도 비슷한 이유로 반대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에서 그때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런 사안(검찰의 인사 반발)은 시간을 두고 내버려 두면 될 일이었다. 그냥 장관 선에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다. 대통령(노무현) 생각은 달랐다. 정면으로 돌파해 가려고 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대통령과 젊은 검사들이 검찰 개혁에 관해 공감대를 이루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고자 했다. ... 문제의 행사(검사와의 대화)가 결정될 때 나는 없었다. 장관들과 청와대 수석들이 워크숍을 하는 날이었다. 나는 워크숍에 참석하지 않고 천성산터널 때문에 1차 단식을 하고 있던 지율 스님을 설득하기 위해 부산에 와 있었다. 대통령이 전화를 했다. 그런 행사를 하면 어떻겠냐는 것이다. 행사는 좋은데 너무 급하게 하지 말고, 사전에 조율해서 하시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하지만 바로 발표하고 전격적으로 날짜를 잡았다.”

이렇게 해서 다음날인 3월9일 대통령과 일선 검사들의 토론회가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렸다. 이 대화가 의미 있는 건, 권력의 최정점인 대통령이 직제상 3급 공무원인 평검사들과 공개 토론을 벌였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란 당위성 아래엔 ‘검찰조직의 과도한 특권’이란 문제가 묘하게 뒤엉켜 있음이 토론회를 통해 물 위로 드러났다. 평검사들이 대통령을 직설적으로 공격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 전까지 정치적 요구에 머물렀던 ‘검찰개혁’은 대중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형식도 파격적이었다.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돼 온 국민이 대통령과 검사의 토론을 지켜볼 수 있었다. 국민과의 접점을 넓혔다는 점에선 대통령이 기자회견 또는 국민과의 대화를 시작했을 때와 비슷한 파장을 낳았다.

그때 검사와의 대화를 곁에서 지켜봤던 복수의 인사는 이 토론회를 ‘미스매치’라고 표현했다. 젊은 검사들과 검찰개혁의 공감대를 이룰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대통령, 진보든 보수든 정치권력은 검찰을 자기 사람으로 채워 장악하려 한다는 평검사들의 의구심은 평행선을 달렸다. 이 평행선은 좁혀지지 않고 오히려 커졌고, 끝내 검사 출신 대통령까지 출현했다. 구체적 내용은 상당히 달라졌지만, ‘검찰개혁’의 당위와 실패 원인은 20년 전 노무현 대통령과 검사들의 대화에서 어렴풋이 찾을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하기 전부터 검사들과 직접 대화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노 대통령은 ‘검사와의 대화’ 모두발언에서 이렇게 밝혔다. “제가 대통령에 처음 당선되고 난 뒤에 평검사들과 간담회를 한번 가졌으면 좋겠다, 부장검사는 부장검사대로 간담회를 한번 가졌으면 좋겠다, 이렇게 제안했던 일이 있다. 그 이유는 장차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검찰개혁, 어떻게 할 것이냐 방향도 좀 의논해 봐야겠고, 개혁을 하자면 제도의 개선과 인사가 핵심이라고 생각하는데 인사를 어떻게 할까에 관해서 도통 방향을 잡을 수가 없어서 검사들을 한번 만나봤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을 한 데에는 검사 출신인 함승희 변호사(당시 민주당 국회의원)의 조언도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함 변호사는 노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에 세 번 독대(獨對)를 했다고 한다. 당연히 검찰개혁 문제도 논의됐다. 함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노무현 당선자에게 이런 얘기를 했다. 검찰을 비롯해 국정원·경찰 등 권력기관을 멀리하시면 안된다, 특정인을 가까이하고 특정인을 활용하려 해선 안 되지만 권력기관 자체를 멀리하면 국가 운영이나 통치를 제대로 할 수가 없다, 검찰이란 조직과 기구 전체를 가까이 두고 제대로 관리해야 한다, 그런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노 당선자가 ‘아 그러면 평검사들과 툭 까놓고 대화를 한번 해볼까요?’라고 하시길래 ‘그것도 좋은 방법이겠네요’라고 대답했다.”

2003년 3월9일 ‘검사와의 대화’가 끝난 뒤 노무현 대통령과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참석 검사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3년 3월9일 ‘검사와의 대화’가 끝난 뒤 노무현 대통령과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참석 검사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 대통령은 검찰개혁을 위해 법무부 장관과 청와대 민정수석에 비검찰 출신 인사를 발탁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엔 민주화 운동의 오랜 동지인 문재인 변호사를, 법무부 장관엔 민변 부회장을 지낸 강금실 변호사를 기용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이야 대통령실 참모니까 그럴 수 있다 쳐도, 관행적으로 검사 출신이 맡아온 법무부 장관에 판사 출신의 46살 젊은 여성 변호사를 발탁한 건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함승희 변호사는 “노 당선자가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을 누가 하면 좋겠냐’고 물은 적이 있다. 나는 ‘장관 윤동민-총장 김학재’ 또는 ‘장관 한부환-총장 송광수’ 조합을 추천했다. 그런데 노 당선자는 장관에 대해선 별 관심을 보이질 않았다. 이미 마음속에 강금실 장관을 점찍어 놓고 있었던 듯싶다”고 말했다. 인사 검증 과정에서 강금실 장관이 검찰을 장악할 수 있겠냐는 내부 우려가 적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그래야 정치에 물든 수뇌부를 물갈이하고 검찰의 서열주의를 타파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파격적인 강금실 장관 발탁에 이어, 3월6일 공개된 검찰 고위직 인사에서 검찰총장 바로 밑 기수인 사시 13~15회 검사장들이 다수 탈락하고 사시 16~17기가 승진하자 검사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대검 중간 간부와 서울지검의 부장검사·수석검사들이 잇달아 긴급 모임을 열고 인사안을 비판했다. 조직적 반발은 서울지검을 비롯한 전국 20여개 지검과 지청의 평검사들로 퍼졌다. 이들은 밀실인사 중단과 검찰 중립성 보장을 위한 인사제도 혁신 등을 요구했다. 보수 언론에선 이를 ‘검란’(檢亂)이라 불렀고, 3월9일 노 대통령과 검사와의 대화(토론회)를 불러온 직접 계기가 됐다.

검찰 인사를 둘러싼 논란이 첨예해진 건 이를 바라보는 노 대통령과 검사들의 시각이 정반대였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검찰개혁의 당면 과제를 ‘정치적 중립’으로 봤고, 검찰 중립이 훼손된 건 권력과 검찰 수뇌부의 부적절한 유착 탓이 크다고 여겼다. 노 대통령은 “과거 시대 경험을 더 가진 사람들을 빨리빨리 위로 올리는” 방법으로 정치에 물든 검찰 상층부를 물갈이하려 했다. 그런 뒤에 대통령이 부당한 요구나 간섭을 하지 않으면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 이뤄지리라 기대했다.

검사들의 생각은 달랐다. 대규모 인적 개편은 노무현 정부 역시 과거 정부처럼 검찰을 장악하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평검사들까지 인사 반발에 동조한 데엔 의리를 중시하는 조직 특유의 문화도 작용했다. 당시 반발에 동참했던 한 검사는 “가령 요직으로 꼽히는 법무부 검찰국장을 지낸 선배가 갑자기 서울고검 차장검사로 좌천되니까 이건 너무 심하다, 내가 모셨던 선배가 모욕을 당했다, 이런 감정이 평검사들을 격분시킨 측면이 있다. 인사의 전체적인 배경과 의도를 꼼꼼히 따져볼 겨를이 그때는 없었다”고 말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목표는 같지만, 그걸 바라보는 시각은 노 대통령과 검사들 사이에 간극이 컸다. 갈등은 3월9일 대통령과 검사들의 대화에서 국민 앞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검찰개혁이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참여정부 초기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노 대통령은 검찰뿐 아니라 국정원과 국세청도 정치적으로 활용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국정원장의 대통령 주례보고를 취임하자마자 폐지했다. 검찰도 마찬가지였다. 먼저 권·검 유착에 책임 있는 검찰 수뇌부를 물갈이한 뒤 제도 개혁을 하자고 얘기했다. 인사위원회 등 제도 개혁 방안을 함께 논의하자고 했는데, 평검사들은 아예 인사권(정확히는 인사 제청권)을 검찰총장에게 넘기라고 하니 대통령이 받아들일 수 있겠나.”

팽팽한 긴장감 속에 노무현 대통령과 전국 평검사 대표 40명이 3월9일 오후 2시 정부서울청사 19층 대회의실에서 만났다. 노 대통령이 취임한 지 불과 12일 만의 일이었다.

박찬수 l 대기자

한겨레신문사에서 워싱턴특파원과 편집국장, 논설실장을 지냈다. 청와대와 국회를 취재하며 ‘정치란 결국 권력 행사를 통해 사회를 바꾸는 것’이란 생각을 갖게 됐고, 그 점에서 어떻게 하면 권력을 제대로 올바르게 행사할 수 있을까에 관심이 많다. 청와대와 백악관의 작동 방식을 비교한 <청와대 vs 백악관>(2009년), 1986년 태동한 민족해방(NL) 사조를 다룬 <엔엘(NL) 현대사>(2017년), 한국 진보운동의 과제를 담은 <진보를 찾습니다>(2021년)를 펴냈다.

pcs@hani.co.kr

* 다음 회엔 ‘노 대통령과 검사와의 대화’ 두 번째 이야기가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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