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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TV 나온 그 검사 XX?”…노 대통령과 ‘같은 자리’ 요구했던 검사들

등록 2023-11-28 14:44수정 2023-11-29 02:37

한국대통령제 100년 결정적 장면들_13
노 대통령과 검사와의 대화②
2003년 3월9일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에서 한 검사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질문하고 있다. 그날 평검사들은 노 대통령에게 매우 공격적인 질문 공세를 폈고, 이로 인해 ‘버릇없이 자기주장만 편다’는 의미의 ‘검사스럽다’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2003년 3월9일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에서 한 검사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질문하고 있다. 그날 평검사들은 노 대통령에게 매우 공격적인 질문 공세를 폈고, 이로 인해 ‘버릇없이 자기주장만 편다’는 의미의 ‘검사스럽다’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2003년 3월9일은 일요일이었다. 그날 오후 2시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대회의실에서 대통령과 평검사들의 토론회(정식 명칭은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가 열렸다. 토론회 전부터 검사들은 ‘대통령에 밀려선 안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토론회장 맨 앞에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 자리를 마련하고 검사들은 양옆에 두 줄로 죽 앉도록 좌석 배치가 됐다는 얘기를 듣고는, ‘원탁으로 자리 배치를 바꿔달라’고 요구하며 잠시 버스에서 내리길 거부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검사는 40명, 전날 열린 전국평검사회의에서 기수별·검찰청별로 뽑힌 이들이었다. 이 중 10명이 대표 토론자로 나섰다. 참석 검사들은 일요일 새벽까지 질문과 발언을 조율하며 대통령과의 ‘한판 승부’에 대비했다. 토론회에 참석했던 검사는 “그때는 뭐랄까, 욕을 좀 먹더라도 우리 의견을 분명하게 대통령에게 전달하자, 우리가 가진 (검찰 중립의) 순수성을 분명하게 내보이자, 그런 생각이 컸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너무 하다 보니까 대통령과 검사를 수평적 관계로 놓게 되고, 뜻하지 않은 돌출 발언이 현장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우리가 옳다’는 생각, 검사들은 그걸 자신감 또는 자부심이라 여겼지만 막상 대통령과 토론을 실시간으로 지켜본 시민들은 검찰의 오만과 특권 의식을 강하게 느꼈다.

토론 당일 아침, 박범계 청와대 민정2비서관은 청와대 관저로 올라갔다. 검찰에서 올라온 내부 분위기를 대통령에게 보고하기 위해서였다. 박 비서관은 “검사들이 기수별로 대표를 뽑아서 밤늦게까지 대통령에게 어떤 질문과 주장을 할지 준비했고, 전체적으로 대통령의 인사권에 강하게 반발하는 분위기라고 말씀드렸다. 밀리지 않기 위해 경우에 따라서는 대통령의 약한 고리를 지적하고 모멸감을 줄 수 있다는 내부 동향이 올라왔다는 얘기도 했다. 그랬더니 노 대통령은 ‘우리 다 사법연수원 선후배인데 그렇게까지 하겠느냐. 내가 잘 리드하면서 대화를 이끌어 갈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취지로 얘기하셨다. 대통령은 그런 생각으로 토론에 임했고, 평검사들과 공감대를 넓힐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그런데 막상 토론을 시작하자 우려했던 대로 (검사들의) 발언이 죽죽 나왔다”고 말했다.

검사들의 얘기는 좀 다르다. 질문을 조율하고 인사권에 관한 요구를 다듬은 건 맞지만, 큰 논란을 부른 발언은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토론회에 참석했던 검사는 “우리가 미리 조율해서 준비한 건 에스케이(SK) 수사 외압에 관한 발언뿐이었다. 그 외에 국민적 분노를 샀던 발언은 거의 모두 돌출적으로 나온 것이었다. 나중에 ‘왜 그런 얘기를 했냐’는 지적이 내부에서도 나왔다”고 말했다.

대통령을 향한 첫 질문부터 분위기는 꼬였다. 서울지검 대표로 나온 검사가 “대통령은 토론의 달인이지만 저희는 아마추어다. 대통령께서 토론으로 제압하시겠다면 이 토론은 좀 무의미하지 않겠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제가 잔재주나 가지고 여러분을 제압하려 한다고 생각하나? 상당히 모욕감을 느낀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2003년 3월9일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전국 평검사 40명과 공개 토론을 하고 있다. 대통령 바로 옆에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앉아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2003년 3월9일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전국 평검사 40명과 공개 토론을 하고 있다. 대통령 바로 옆에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앉아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그날 토론회에서 가장 논란이 됐던 발언들은 이랬다. 한 검사가 “대통령께서는 취임하시기 전에 부산 동부지청장에게 청탁 전화를 한 적이 있다. 뇌물 사건과 관련해 잘 처리해달라는 이야기였는데, 그것이 바로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는 발언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나”라고 공세적으로 물었다. 노 대통령은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죠? 청탁 전화 아니었다”고 대답했다. 또 다른 검사는 “최근에 (노 대통령의) 형님에 관한 해프닝을 포함해서 이런 일이 주위에서 또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런 자리에서 꺼내서 굳이 대통령 낯을 깎으려고 하나. 정말 이런 식으로 토론하시겠나”라고 말했다. 에스케이(SK) 수사 외압 발언은 정치적 파장까지 불렀다. 이 질문은 ‘인사권을 검찰총장에게 넘겨야 정치적 중립을 지킬 수 있다’는 검사들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미리 준비한 것이었다. 수사에 참여한 검사가 직접 토론회에 나와 “수사 외압이 있었는데, 여당 중진 인사도 있고 정부 고위 인사도 있다. 혹자는 ‘다칠 수 있다’며 인사 보복을 시사했다”고 폭로했다. 노 대통령은 “다칠 수 있다고 말한 사람을 내게 고발해줄 수 없나”라고 물었다.

그날 대통령 옆엔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검사들 뒷줄엔 문재인 청와대 민정수석과 박범계 민정2비서관(문재인 정부에서 법무부 장관을 지냈다)이 배석했다. 박범계 비서관은 “문재인 수석은 원래 감정 기복을 드러내지 않는 분이라 표정 변화를 읽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당장에라도 뛰어나가 검사들과 멱살잡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참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런 문재인 수석도 나중에 자서전(‘운명’)에선 그때의 분위기를 회상하며 “목불인견(目不忍見)이었다. 오죽하면 검사스럽다는 말까지 나왔을까”라고 직설적으로 비판했다.

110분간의 격렬한 토론회를 노 대통령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노 대통령이 자신의 심경을 곧바로 내비치지는 않았던 거 같다. 강금실 법무부 장관과 박범계 민정2비서관은 “토론회 이후 대통령은 특별한 말씀이 없었던 거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사후에 출간된 자서전(‘운명이다’)에선 이렇게 솔직하게 소회를 밝혔다. “검사들의 인사에 대한 오해와 불만을 해소하는 것과 함께, 젊은 검사들이 정치적 독립의 충정을 토론하면 공감을 표시하고 필요한 약속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검사들은 처음부터 인사 문제를 이야기하고, 돌아가면서 준비해온 말만 되풀이했다. 무척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 나는 검찰 중립을 보장한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그러나 대통령이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보장하면 검찰도 부당한 특권을 스스로 내려놓지 않겠느냐는 기대는 충족되지 않았다.”

노 대통령이 말했듯이 그날 검사들 주장의 핵심은 인사권이었다. ‘법무부 장관이 가진 검사 인사제청권을 검찰총장에게 넘기라. 그래야 정치적 중립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이런 주장을 펴는 검사는 없다. 윤석열 정부의 첫 검찰 고위직 인사는 검찰총장이 공석인 가운데 이뤄졌지만, 반발은 없었다. 그날 토론에서 요구했던 것과 비교하면, 지금은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이 검사 출신이라 대통령의 인사권에 순응한다고밖엔 달리 해석하기 어렵다.

검사들은 저녁식사를 함께 하며 자체 평가를 했다. ‘대통령 청탁전화 발언’ 등을 두고 “왜 그런 질문을 했냐”는 얘기가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전체적으론 할 말을 다 했다는 분위기였다. 한 검사는 “우리가 너무 인사 문제만 집중적으로 얘기한 건 아닌가 하는 우려는 있었다. 대통령은 국정 운영을 총괄하는 사람인데, 검사들은 자기 이해가 달린 인사 문제만 물고 늘어진다는 인상을 국민에게 줬을까 봐 걱정을 하긴 했다. 하지만 내용보다 태도 때문에 국민 비난이 엄청나게 쏟아질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버릇없이 자기주장만 되풀이한다는 의미로 ‘검사스럽다’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비판 여론이 빗발쳤다. 토론회에서 대통령에게 질문했던 어느 검사는 다음 날 저녁 서울 시내에서 가족과 함께 식사하는데, 옆 테이블 손님들이 자신을 알아보곤 ‘어제 텔레비전에 나온 그 검사 XX 아니야?”라고 원색적으로 욕하는 걸 들었다. 서둘러 아내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식당을 나왔다고 한다. 그래도 토론회 발언을 이유로 인사 불이익은 없었다. 대검 대표로 토론회에 참석했던 이완규 검사(현 법제처장)는 2020년 언론 인터뷰에서 “노무현은 ‘쿨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평검사 시절이라 인사 불이익은 없었다. 하지만 (토론회 참석이) 족쇄처럼 따라다녔다”고 말했다.

‘검사와의 대화’를 통해서 정치적 중립 외에 검찰 특권과 수사권 견제의 필요성이 이슈로 떠올랐다. 대통령은 국민이 뽑고 검사는 대통령이 임명한다. ‘대통령과 검사의 대립’이란 구도 자체가 어떻게 보면 말이 되질 않는다. 20년 전 노 대통령은 ‘오해를 풀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단순히 오해라고 하기엔 검찰의 특권 의식과 정치권력 불신이 너무 강고했다. 노무현 대통령 자서전(‘운명이다’)에서 검사와의 대화를 다룬 부분의 소제목은 ‘검찰개혁의 실패’다.

그날 토론을 가까이서 지켜봤던 참여정부 핵심 인사는 “우리는 좋은 방향으로 제도를 바꾸겠다고 말하는데, 검찰은 모든 정권이 자기들을 쥐고 흔들려 한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초점이 어긋났고, 그런 구도는 문재인 정부 때도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고 그대로 이어졌다. 결국 검찰총장이 곧바로 대통령이 되는, 양쪽 모두에 매우 바람직스럽지 못한 결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1부 끝>

박찬수 l 대기자

한겨레신문사에서 워싱턴특파원과 편집국장, 논설실장을 지냈다. 청와대와 국회를 취재하며 ‘정치란 결국 권력 행사를 통해 사회를 바꾸는 것’이란 생각을 갖게 됐고, 그 점에서 어떻게 하면 권력을 제대로 올바르게 행사할 수 있을까에 관심이 많다. 청와대와 백악관의 작동 방식을 비교한 <청와대 vs 백악관>(2009년), 1986년 태동한 민족해방(NL) 사조를 다룬 <엔엘(NL) 현대사>(2017년), 한국 진보운동의 과제를 담은 <진보를 찾습니다>(2021년)를 펴냈다.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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