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광’인 기시다 총리는 2021년 8~9월 자민당 총재 선거 과정에서 10년째 쓰고 있다며 국민의 목소리가 담긴 ‘기시다 노트’를 공개했다. 도쿄/로이터 연합뉴스
[특파원 칼럼] 김소연
도쿄 특파원
“뭘 해도 지지율이 떨어진다”, “지지율의 바닥이 뚫린 것 같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지지율이 걷잡을 수 없이 떨어지면서 집권 여당인 자민당에서 나오는 우려의 목소리들이다. 기시다 총리 지지율은 올해 4~5월 잠시 반등했다가 6월 이후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지난 17~19일 요미우리·아사히·마이니치 3개 신문의 여론조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최저 21%, 최고도 25%에 그쳤다. 자민당이 재집권한 2012년 12월 이후 최저치다.
솔직히 한국 상황과 비교해 볼 때 기시다 총리의 20%대 지지율이 이해되지 않는 면도 있다. 일본에선 국가를 위해 복무하던 젊은 병사가 어처구니없는 일로 사망했는데도 제대로 수사가 이뤄지지 않거나, 서울 한복판에서 159명의 시민이 허망하게 희생됐지만 국가 최고지도자가 유족을 외면하는 비정상적인 일은 없기 때문이다. 한국 대통령은 최근 1년 동안 국내 언론을 대상으로 단 한번도 기자회견에 나서지 않았지만, 기시다 총리는 시도 때도 없이 언론 앞에 서서 대화한다.
그래서 일본인을 만날 때마다 ‘기시다 총리는 왜 이렇게 인기가 없냐’고 묻는다. “서민의 고통을 모른다”, “무능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믿음이 안 간다” 등 기시다 총리가 민심과 동떨어져 있다는 불만이 많았다.
결정적인 원인은 민생이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엔화 가치 하락으로 지난해부터 이어져온 물가 상승은 일본 서민들을 옥죄고 있다. 올해 1월 4.2%까지 치솟던 물가는 최근 3%대를 유지하고 있지만, ‘잃어버린 30년’ 동안 인플레이션 없이 살아온 일본인들에겐 무척 고통스러운 수치다. 임금 인상폭이 물가 상승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실질임금은 18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이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기시다 총리는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장례비용(약 162억원)을 전액 세금으로 충당한 국장으로 치르더니, 12월엔 방위비 대폭 증액을 이유로 증세를 결정했다. 국민 60% 이상이 반대했지만 일방적으로 강행했다. 올해는 한국의 주민등록증과 같은 ‘마이넘버 카드’ 오류 사태가 계속 터지고, 내각 차관급 인사들이 불미스러운 일로 잇따라 낙마하면서 민심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달 야심 차게 ‘감세 카드’까지 꺼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일본 국민 76%(아사히 조사)가 이번 감세는 ‘민생보다는 정권의 선심성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자민당 한 간부는 “어떤 정책이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기시다 총리가 싫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최근엔 기시다 총리가 자민당 지지단체 간부에게 “나쁜 일을 하지 않았는데, 왜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것일까” 하고 답답한 마음을 토로한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뭇매를 맞았다. ‘성난 민심’의 원인조차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메모광’인 기시다 총리는 2021년 8~9월 자민당 총재 선거 과정에서 10년째 쓰고 있다며 국민의 목소리가 담긴 ‘기시다 노트’를 공개한 적이 있다. 지금 기시다 총리에게는 푸념이 아니라 그 노트를 펴고 제대로 민심을 살피는 일이 시급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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