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차라리 인형이었으면

등록 2023-12-07 19:12수정 2023-12-08 17:56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고 있는 가자지구에서 한 남성이 무함마드 하니 자하르로 알려진 아기 주검을 안고 소리 지르고 있다. 이스라엘 언론은 아기가 사람이 아니라 인형이라는 의혹을 제기했으나, 취재기자가 클로즈업 사진을 여러장 공개해 아이가 사람임을 밝히자 관련 기사를 내렸다. 소셜미디어 영상 갈무리
이스라엘의 공격을 받고 있는 가자지구에서 한 남성이 무함마드 하니 자하르로 알려진 아기 주검을 안고 소리 지르고 있다. 이스라엘 언론은 아기가 사람이 아니라 인형이라는 의혹을 제기했으나, 취재기자가 클로즈업 사진을 여러장 공개해 아이가 사람임을 밝히자 관련 기사를 내렸다. 소셜미디어 영상 갈무리

[코즈모폴리턴] 조기원 | 국제뉴스팀장

 이스라엘 영자신문 ‘예루살렘 포스트’는 지난 2일(현지시각)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에 “우리가 잘못된 자료에 근거한 기사를 공유했다. 문제의 기사는 우리의 편집 기준에 맞지 않아 삭제됐다”는 공지문을 올리고 기사 한건을 삭제했다. 이어서 “우리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비슷한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내부적으로 이 문제를 다룰 것이다”라고 적었다.

예루살렘 포스트가 삭제한 기사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사람이 아니라 인형을 들고 아기가 죽었다고 자작극을 벌였다는 의혹을 제기했던 글이다. 알자지라 방송은 앞선 1일 엑스에 남성 한명이 하얀 천에 싸인 숨진 아기를 안고 소리치는 영상을 올렸다. 아기의 모습은 흐리게 처리했으며, 이스라엘군 폭격으로 숨졌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예루살렘 포스트는 같은 날 흐릿하게 처리되기 전의 아기 원래 사진이 공유되고 있으며, 영상 속 아기는 “인형에 불과하다”는 기사를 올렸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원래 사진을 보면 잿빛 피부의 아기가 커다란 눈을 뜨고 있는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예루살렘 포스트는 “알자지라가 의도적으로 대중을 오도하려는 시도로 편집했는지, 아니면 제대로 조사하지 않고 영상을 공유했는지 불분명하다”고 비판적으로 보도했다. 예루살렘 포스트 보도 전 소셜미디어에서 조작으로 의심된다는 글이 돌았다.

그러나 현장에 있던 기자들의 증언과 고해상도 사진이 공개되면서 반전이 일어났다. 팔레스타인 기자는 숨진 아기의 모습을 클로즈업해서 찍은 사진 여러장을 공유했다. 이 사진기자는 인스타그램에 “이스라엘 미디어는 인형이라고 주장한다. 아니다. 그 아기는 인형이 아니다. 그 아기는 이스라엘 공습으로 숨진 인간이다”라고 적었다. 사진 이미지 공급업체에 제공된 그의 사진 아래에는 “아기 이름은 무함마드 하니 자하르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인도주의적 전투 일시 중지가 끝난 1일 이스라엘군 공습 뒤 어머니와 할아버지가 알아크사 순교자 병원에 데려왔다”는 설명이 적혀 있다.

숨진 자하르는 태어난 지 몇달 되지 않은 영아로 알려졌다. 이스라엘 소셜미디어에서 아기가 사람이 아니라 인형이라는 주장이 돌았던 까닭은, 영상 속 아기가 인형을 연상시킬 만큼 피부가 잿빛이고 너무나 경직된 모습이었기 때문인 듯하다. 이런 모습은 사후경직 때문으로 추정된다는 의견이 나온다.

6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라파흐의 병원에서 다친 사람들이 누워 있다. AP 연합뉴스
6일(현지시각)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라파흐의 병원에서 다친 사람들이 누워 있다. AP 연합뉴스

지난 10월7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전쟁이 시작된 이후 거의 날마다 참혹한 영상과 사진이 쏟아지고 있다. 양쪽의 심리전도 치열해 진실이 무엇인지 쉽사리 단정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이스라엘에서는 하마스가 어설픈 가짜 영상과 사진을 배포한다며 ‘팔리우드’(Pallywood)라 조롱하기도 한다. 지난 10월 중순에도 하마스가 숨진 소년의 모습이라며 관련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가 내렸을 때도 인형을 사람으로 위장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아에프페(AFP) 통신은 당시 주변 상황을 종합해보면 조작이라는 증거는 찾을 수 없다며 결론을 유보했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가짜인지도 흐릿한 상황에서 참혹한 희생은 두달째 계속되고 있다. 차라리 가짜뉴스였으면, 사람이 아니라 인형이었으면, 하고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garde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이번엔 “의사들이 졌다” [신영전 칼럼] 1.

이번엔 “의사들이 졌다” [신영전 칼럼]

아직 ‘한국이 싫어서’ [아침햇발] 2.

아직 ‘한국이 싫어서’ [아침햇발]

다디단 격려 :) [이주은의 유리창 너머] 3.

다디단 격려 :) [이주은의 유리창 너머]

[사설] 대통령실의 비판언론 ‘고발사주’, 당장 수사해야 4.

[사설] 대통령실의 비판언론 ‘고발사주’, 당장 수사해야

[사설] 이시바 총리, 한-일 새 출발점은 일본의 겸허한 역사인식 5.

[사설] 이시바 총리, 한-일 새 출발점은 일본의 겸허한 역사인식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