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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 여사 명품백 의혹 ‘쿨하게’ 수사하라 [아침햇발]

등록 2023-12-14 15:54수정 2023-12-15 18:19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지난 11일 네덜란드 국빈 방문을 위해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전용기인 공군 1호기에 올라 출국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부인 김건희 여사가 지난 11일 네덜란드 국빈 방문을 위해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서 전용기인 공군 1호기에 올라 출국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춘재│논설위원 

 ‘검사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만든 건 검찰총장 시절 보여준 ‘살권수’(살아 있는 권력 수사)였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등 친문 핵심을 겨냥한 수사로 문재인 정권의 ‘내로남불’에 분노한 민심을 얻었다. 그는 2020년 11월3일 법무연수원에서 신임 부장검사들을 모아놓고 “국민이 원하는 진짜 검찰개혁은 살아 있는 권력의 비리를 눈치 보지 않고 공정하게 수사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검찰 초급 간부들의 ‘정신교육’ 강연에서 공공연하게 살권수를 강조한 검찰총장은 이전까지 없었다. 문재인 정권의 검찰개혁을 탐탁지 않게 여긴 부장검사들은 자신의 ‘보스’가 보여준 당당함에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 무리 속엔 ‘검언유착’ 의혹으로 법무연수원으로 좌천된 한동훈 검사도 있었다. 그런 검찰총장이 대통령, 최측근은 법무부 장관이 된 지금 살권수는 검찰의 기본 ‘매뉴얼’처럼 돼 있지 않을까.

‘김건희 명품백’ 의혹은 검찰이 그 매뉴얼을 잘 지키는지 검증할 좋은 기회다. 이 건은 앞서 김건희 여사와 그 일가에 관한 의혹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등은 윤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에 일어난 사건들이다. 결코 가볍게 넘길 사안은 분명 아니지만 ‘살아 있는 권력’과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은 윤 대통령이 취임한 지 4개월 만에 일어났다. 막 취임한 대통령의 권세가 하늘을 찌를 때였다. 이 무렵 김 여사는 각종 특혜 의혹에 휘말렸다. 그의 개인회사인 코바나컨텐츠를 후원했던 건축업체가 서울 용산 대통령실과 대통령 관저 인테리어 일부 공사 등을 수주한 사실이 드러나자 야당은 국정조사 으름장을 놨다. ‘명품백’ 동영상은 김 여사 관련 의혹이 나름 근거가 있음을 보여준다. 동영상에서 김 여사는 “저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 끊어지면 적극적으로 남북문제에 나설 생각”이라며 명품백을 들고 온 목사에게 “한번 크게 저랑 같이 일하자”고 제안한다.

명품백을 선물한 쪽은 김 여사가 금융위원회 인사에 개입한 정황을 목격했다고 주장한다. 명품백에 앞서 지난해 6월 샤넬 향수 세트를 전달하러 갔을 때 김 여사가 인사 청탁을 받는 장면을 목격했고, 다음번에 만날 때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것을 대비해 명품백과 ‘몰카 촬영’을 준비했다고 한다. 이 주장이 맞다면 김 여사 관련 의혹은 김영란법 위반에 그치지 않고 ‘국정 개입’ 논란으로 확대될 수 있다. 김 여사의 인사 개입 의혹은 그동안 정치권과 언론에서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검찰이 김 여사에 대한 수사에 착수해야 할 이유는 이처럼 차고 넘친다. ‘함정취재’라는 이유로 취재윤리 위반 논란이 일고 있지만, 그게 수사 개시의 장애가 안 된다는 사실은 검사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위법수집증거 배제 법칙이나 ‘독수독과’ 이론은 위법 수집의 주체가 수사기관이기 때문에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김영삼 정권의 검찰은 국정 개입 의혹이 제기된 대통령의 아들을 재수사까지 했다. ‘소문만으론 수사할 수 없다’던 검찰을 움직인 것은 김현철씨가 자주 이용하던 병원의 폐회로텔레비전에 찍힌 동영상이다. 김씨가 와이티엔(YTN) 사장 인사 문제를 누군가와 전화로 얘기하는 장면이 녹화된 영상이다. 검찰은 ‘김씨의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며 뭉갰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자, 부랴부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을 교체해 재수사를 한 끝에 ‘별건’인 조세포탈로 처벌했다. 김대중 정권의 검찰도 대통령의 세 아들을 모두 구속했다. 검사들은 검찰총장이 살권수를 언급하지 않아도 알아서 수사했다. 두 전직 대통령은 혈육을 감옥에 보내는 아픔을 감수했다. 그래야 성난 민심을 달래고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울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 앞에서 칼을 접을 때 어떤 결과를 낳게 되는지는 박근혜 정권이 잘 보여준다. 검찰이 ‘정윤회 문건’을 제대로 수사했다면 최순실의 ‘전횡’을 막을 수 있었다. 2년여 뒤 헌정사상 첫 대통령 탄핵도 없었을 것이다. 엉뚱하게 문건 유출자 처벌로 수사를 왜곡한 결과 정권은 무너지고 ‘검찰개혁’은 시대적 과제가 됐다.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이던 2019년 10월17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어느 정부가 그나마 보장했느냐’는 여당 의원의 질문에 “이명박 정부 때 대통령 형(이상득)을 구속할 때 별 관여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상당히 ‘쿨하게’ 처리했던 기억이 난다”고 답했다. 이젠 윤 대통령과 윤석열 사단이 ‘쿨한’ 모습을 보여줄 차례다.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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