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에서 고양시의 서울 편입을 촉구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다. 연합뉴스
[서울 말고] 김희주 | 양양군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
‘사실상 수도권.’
낯익은 문구를 낯선 곳에서 만나면 때로는 신선하고 때로는 당혹스럽다. 몇해 전 한 아파트 광고 전단에서 이 문구를 만났을 때는 후자였다. 이유는 해당 아파트가 지어지는 지역이 서울과 수백㎞ 떨어진 동해와 맞닿은 곳이기 때문이었다.
서울에서 광고회사에 다닐 때 바로 옆이 부동산광고팀이라 그 세계를 조금 엿볼 기회가 있었다. 사람들의 욕망을 자양분 삼는 광고업계에서도 부동산 광고는 특히 더 날것의 욕망을 자극하기 위해 허위에 가까운 과장된 수식을 취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특히 역세권 같은 ‘×세권’이 중요한 셀링 포인트여서 매력적인 거점과 얼마나 가까운지 어필하기 위해 다소 낯부끄러운 카피가 동원된다. 이런 특징을 고려하더라도, 강원도 바닷가 마을에서 ‘사실상 수도권’이라는 카피를 만나니 헛웃음이 났다.
이 기억을 떠올린 건 최근 김포시의 서울 편입 검토가 쏘아 올린 ‘메가 서울’ 이슈 때문이다. 동해 바닷가 마을에서 ‘사실상 수도권’이라는 억지를 부리는 것과, 김포를 시작으로 하남, 과천, 고양 등 줄줄이 서울 편입 논의에 뛰어든 지역들이 ‘사실상 서울’이라는 내심을 현실로 만들고 싶은 것이 가리키는 욕망은 닮았다. 총선을 앞두고 정국을 흔들기 위한 노림수이든, 글로벌 도시로서 서울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묘수이든, 단순히 부동산 가격 상승을 노리는 블러핑이든, 서울로 출퇴근하는 젊은 세대 이주자가 많은 만큼 생활구역과 행정구역을 일치시키자는 명분이든 혹은 이 중 어느 것도 이룰 수 없는 몽상이든 간에 ‘메가 서울’ 논의는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개인적으로 이 논의가 허탈했던 건 시점 때문이다. 10월30일 김기현 당시 국민의힘 대표가 ‘수도권 신도시 교통대책 간담회’에서 “당 내부에서 검토한 결과 김포를 서울에 편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히며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이틀 뒤인 11월1일 대통령 직속 지방시대위원회가 지방소멸 위기에 대응해 4대 특구를 중심으로 지방시대 정책을 추진한다며 ‘제1차 지방시대 종합계획(2023∼2027)’이 확정됐다고 밝혔다. 지방시대 담론은 개별 지방의 개발, 성장, 역량 강화로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로서 서울의 팽창에 제동을 걸지 않으면 효과가 요원한 목표다. 그런데 지방시대를 열겠다는 청사진과 ‘메가 서울’을 만들겠다는 구호가 나란히 던져졌다.
‘지방시대’니 ‘강한 로컬’이니 하는 말들이 실제 활동하는 플레이어들의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동체의 현재와 미래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최소한의 진정성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이렇듯 당당하게 엇박자 행보를 보일 수 있을까?
로컬에 대한 다양한 정의 중 개별 단위로서의 로컬이 아니라 국가를 이루는 총합으로서 로컬의 의미를 좀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로컬이 모여 국가가 존재하고 유지된다는 건 명백한 개념이지만, 실질적으로 대한민국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지금 한국의 로컬 지향은 ‘사실상 수도권’, ‘사실상 서울’의 욕망이 남긴 부스러기를 줍는 일 같다.
장남의 출세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쏟아붓는 옛적 우리 부모처럼 서울만 중심에 놓고 판단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어떤 시대 선언도 공허하고 무력할 뿐이다. 김포를 시작으로 인근 지역을 차례로 서울로 편입해 ‘메가 서울’을 만들고 나면 ‘사실상 수도권’이라고 광고하던 바닷가 마을은 나아가 ‘사실상 서울’이라고 광고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서울이 커지면서 더 가까워졌으니까. 그리고 우리는 ‘메가 서울’과 ‘사실상 서울’로 단순하게 나뉘는 나라에서 살게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