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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혜신칼럼] 자석언론의 ‘딸랑딸랑’ 저널리즘

등록 2008-01-02 18:47수정 2008-01-03 15:11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허니문 제안’ ‘명비어천가’로 당선인 줄서기
권력 돌진하기보다 늠름·품격있는 언론되길
대선이 끝나고 지난 2주간 대한민국 언론은 대통령 당선인 관련 보도를 통해 ‘자석 언론’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언론 스스로 자석이 되어 최고권력에 들러붙기 위해 돌진하는 모습은 거대한 크기의 쇳조각과 강력한 자성을 가진 자석의 결합을 보는 듯하다. 우리 언론의 역사에서 흔히 접했던 풍경이지만 아직도 이런 자석 언론의 속성이 원형질 그대로 남아 있는 현상을 목격하는 일은 착잡하다. 최고의 발행부수를 자랑한다는 한 신문은 당선인에게 힘이 실릴 수 있도록 각 정파와 언론이 ‘허니문 기간’을 가지자고 제안한다. 친절하긴 하지만 언론이 먼저 제안할 일은 아니다. 이런 이해할 수 없는 행태들은 대선이 끝난 직후부터 지금까지 거의 모든 매체들에서 반복되고 있다.

한 방송국 노동조합은 대선이 치러진 19일과 20일 자사의 대선 관련 편성, 보도에 대해 부끄럽고 참담하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선거 이튿날까지 80% 가량을 당선인을 위한 프로그램과 대선 소식으로 도배한 것은 물론 방송 내용도 당선인에 대한 낯뜨거운 칭송으로 일관했다는 것이다. 개표율 6% 상황에서 방송 3사 중 가장 먼저 당선인을 확정지으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업무를 대신한 것은 물론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화려한 축하 이벤트를 개최했다. 선거 당일 방송이 지지자 행사인지 방송사 행사인지 분간되지 않았다는 노동조합의 질타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기자협회 등이 분석한 대선 뒤 언론보도의 흐름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당선인 줄서기’다. 대부분의 신문과 방송이 당선인에 대해 감시와 견제의 역할을 하지 못한 채 위인전식 기사나 찬사를 남발했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언론계 동업자들에게 ‘딸랑딸랑 저널리즘’에서 탈피하자고 촉구하겠는가. 어떤 할아버지가 이담에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 전설의 고향 같은 당선인의 어린 시절 일화는 기본이고, 당선인의 이름 석 자를 이용한 용비어천가식 삼행시까지 등장한다. 전국 단위의 일간지나 지상파 방송이 스스럼없이 다룬 내용들이다. 나는 그 기사들을 보며 전두환 영웅담을 담은 <황강에서 북악까지>를 떠올린다. 무엇이 다른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일시 자석은 외부 자기장을 제거하면 자성이 없어지지만 영구 자석은 일단 자성을 가지면 외부 자기장을 제거해도 장기간 자성을 보유한다고 한다. 정치나 경제 등 ‘쎈’ 권력을 향한 언론의 속성은 영구 자석에 가까워 보인다.

대선이 끝난 며칠 후 이명박 당선인은 사석에서 정동영 후보를 ‘미친 개’로 비유하는 말을 했단다. 현장 취재 기자가 내부 보고를 올렸지만 모든 언론은 침묵을 지켰다. 결국 기사를 쓰지 못한 취재 기자가 다른 언론사에 기사를 제보하는 해프닝까지 거친 후에야 한 언론사에서 이 문제를 기사화했다. 나는 자석 언론의 속성을 접할 때마다 심리적 펀더멘털이 튼실하지 못해서 상황에 따라 급격하게 흔들리는 내담자를 만나는 느낌이 든다. 그런 이들은 상황 여하에 따라 그동안의 모든 것들을 백지화하고 원점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주위사람들은 늘 불안하다. 변심은 확실한 데 변심의 시기만 상황 여하에 달린 연인과 사귀는 격이다. 그런 연인과 피치 못할 사정으로 헤어질 수 없다면 더 딱하고 고단할 수밖에 없다. 자석 언론을 대하는 국민의 처지가 바로 그렇다. 우리는 언제쯤이 되어야 상황에 휘둘리지 않는 늠름하고 품격있는 언론을 가지게 될 것인가. 다행히 시민단체나 언론 현업 단체들의 정밀한 분석에 의하면 <한겨레>와 <경향신문>이 이번 대선과 관련해 언론으로서의 그런 기품을 잘 지켰다니, 그나마 감사한 일이다.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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