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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혜신칼럼] ‘1억달러 내각’

등록 2008-02-27 19:36수정 2008-02-27 19:39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정혜신칼럼
이명박 정부 첫 장관 후보자 중 세 사람이 청문회를 앞두고 사퇴했다. 예견된 결과라는 대다수 의견의 한쪽에는 총선을 의식한 야당의 정략적 포석에 말려든 것이라는 일부 의견도 있다. 나는 총선과 연계짓는 일부 의견에 동의하기 어렵다. 정치권과 언론에서 ‘일부 사회 지도층 인사’라고 지칭하는 장관 후보자들에 관한 언급 뒤에 늘상 따라붙는 ‘일반 서민’이라는 말은 이런 경우엔 그 표현조차 곱게 들리지 않는다. 그때의 일반 서민이란 자기 의견 하나 내세우지 못하는, 동정이 필요한 남루한 집단인 것처럼 느껴져서다.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자. 서민이란 자신의 권한을 순한 마음으로 행정부와 정치인에게 위임한 국민의 또다른 이름이다. 일반 서민들은 총선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장관 후보자들과 청와대의 개념 없음 그 자체에 대해 고개를 갸웃거리며 주시하는 것이다. 3명이 사퇴했다고 근본적인 문제까지 덮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과 국무위원 후보들의 재산 합계가 1천억원 가깝다고 해서 나온 별칭이 ‘1억달러 내각’이고 국민의 2%만 내는 종합부동산세 납세자 비율을 현 장관 후보자들로 한정하면 80%에 이른다. 청와대 대변인의 말처럼 단순히 재산이 많다는 이유로 자격이 없다고 비난한다면 지나친 게 맞다. 하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단순히 재산이 많다는 이유로 비난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알게 된다. 밤잠을 설치며 후보자들의 검증작업을 진행한 내부자 논리가 아니라 국민의 눈으로 보면 문제가 명료해 진다. 부동산 투기의혹에 시달리다 사퇴한 후보자들은 ‘일생 바르게 살아왔는데 부도덕한 부동산 투기꾼으로 매도당하는 것은 온당하지 못하다’고 하소연한다. 교수 출신 후보자는 교수 부부가 25년 동안 30억원 모았으면 양반이라며 ‘다른 사람들을 보라’하고, 장관 후보들 중 가장 재산이 많은 연예인 출신 후보는 ‘내 재산 많다고들 하는데 배용준을 보라’고 공박한다.

그들의 처지에서 그렇게 말할 수는 있지만 국민 처지에서는 그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어렵다. 음식을 절반만 먹는 반식 요법으로 건강을 되찾은 어떤 이가 기아에 허덕이는 난민들 앞에서 반식의 효율성을 설파하는 격이다. 본인과 주위 사람들이야 놀랄 만한 효과를 봤으니 반식을 하자는 게 지극히 당연한 얘기겠지만 주린 배를 움켜쥐고 그 말을 듣는 이의 처지에서는 생뚱맞고 황당할 수밖에 없다. 능력만 있으면 됐지 재산이 뭐 그리 중요하냐는 식의 인식 또한 그런 맥락에서 갑갑하기는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1% 초상류층 내각이라는 표현에 타당한 구석이 있다면 장관 후보자들의 관심사는 더는 서민 수준의 욕구나 라이프스타일이 아니다. 충족된 욕구는 더 이상 욕구가 아니다. 자녀가 대학에 입학하고 나면 그 부모는 더 이상 복잡한 대학 입시제도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욕구 충족이 완결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콩 알레르기가 있으면서도 가족을 위해서 매일 콩이 들어간 잡곡밥을 해주는 엄마도 있다. 성숙한 인간이란 자기 욕구와는 별개로 타인의 욕구를 감지하고 인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어떤 일을 감당해 낼 수 있는 힘이 능력이라면, 당연히 고위공직자인 장관의 능력에는 도덕성뿐 아니라 나와 타인의 욕구를 구별한 수 있는 힘이 포함되어야 마땅하다. 그것은 현실감각의 기본이 되는 심리적 능력이다. 그게 있어야 능히 장관직을 감당할 수 있다. 일반 서민의 욕구를 제대로 알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서민의 욕구를 대변하고 충족시켜 주는 역할을 자임할 때 그런 능력이 정말로 있는지 의구심을 가지고 이리 저리 따져 보는 일은, 백번 온당하다.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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